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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6)소록도, 마음의 강을 건너다(하)/이화선

 한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병동에 들어선 순간부터 중앙 간호사 스테이션 앞에 앉아 계셨는데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던 내가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하는 걸 보시더니 대뜸 나를 잡아끌고 한 병실로 들어가셨다. 그곳은 할머니 병동이었는데 할아버지의 배우자가 계신다고 했다. 할머니는 양 팔이 없으셨는데 할아버지는 나에게 꼭 식사를 함께 해달라고 부탁하신다. 나는 그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꼭 그러겠노라고 약속드렸다.


요즘 세상에 병든 아내를 매일 보러와 주는 남편이 있다는 게 꼭 소설에서 읽었던 것 같은 따듯함이 있어서 몇 번이고 약속드렸다. 내가 살던 바다 건너 세상에는 건강한 사람들이 서로가 싫다고 버리고 떠나간다. 하지만 이 분들께는 남들이 꺼려하는 질병이라는 벽을 넘어서는 사람다움이 있었다. 그 때부터 나는 할머니의 식사 도우미가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이가 없으셔서 밥을 국에 말아서 드시는데 한 수저를 넣어드리면 반수저가 흐르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천천히 씹으시게 하면서 골고루 드시게 노력했다. 그러면서 의치를 왜 사용하지 않으시냐고 간호사 분들께 묻자 만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신다. 그 순간 머쓱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예전에 치과대학에서 실습처럼 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의치가 나오지 않고 관리도 되지 않아서 지금은 그런 시도조차 없다고 한다. 미래의 치과의사로서 좀 더 구체적인 방안들을 생각하게 된다. 어느 정도의 식사를 위해서라도 적절한 치과치료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은 다시 여러 환자분들에게 손님 대접을 받았다. 한 할아버지께서는 과자 심부름을 시키시더니 같이 나눠먹자고 하시고 어떤 할아버지께서는 휠체어 산책을 나갔다가 코코아 한 잔을 사주셨다. 계속 여러 분들의 정성을 받다보니 친조부님을 만난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이런 느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병동에서 일하던 오빠들까지도 마음에서 우러나서 다가가기 시작했고 면도나 손톱정리까지 해드리고 있었다. 마지막 봉사를 마치면서 식사를 도와드렸던 할머니께서 내게 언제 다시 오냐고 물어보셨다. 망설임 없이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웃으시면서 잘 가라고 하신다. 옆 병상의 할머니께서 가면서 먹으라며 사과도 챙겨주시고 악수도 잊지 않으셨다.


 떠나오는 배 속에서 지난 3일이 생각났다. 이방인이었던 내가 그들의 세상에 들어가 반가운 손님이자 친구가 되고 하나의 세상 속에서 지내게 된다는 것은 참 따뜻한 일이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마음의 바다를 넘어서자 새로운 세상 속에서 치과의사로서의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할 또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한 번이라도 와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만나볼 수 없는 마음 따뜻한 분들이 소록도에서 마음을 가꾸면서 살고 계셨다.


 이제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할 때이다. 작은 정성이 모여서 전동 칫솔이나 구강청정제 등의 기본 구강관리 용품을 전해 드릴 수 있게 하고 작은 관심이 모여서 한센인에게 밥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행복을 줄 수 있다. 또한 단순히 삶을 연장 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보건복지가족부의 재정적인 지원 또한 필요할 것이다. 치과대학 차원의 봉사와 이미 사회에 나가계신 치과의사 선배님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신다면 우리사회의 의료소외계층이 좀 더 좋은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나 또한 그랬듯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 마음속의 닫아 두었던 바다를 건널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