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 ‘조강지처 클럽"의 구세주… 지금껏 이렇게 구씨가 각광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다들 막장 드라마다 뭐다 하기는 하지만 참 재미는 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굳이 시류를 따라 글의 제목을 ‘구명소"로 정한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나는 이따금씩 지난 일기를 들여다 보곤 한다. 중 2 때부터 일기를 써 왔는데 어느덧 서가 한 편을 차지할 만큼 양이 꽤 되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일기 열람권이 있어서 고 1인 큰 아이는 고 1 때까지, 그리고 중 3인 둘째는 중 3 때까지 아빠가 쓴 일기를 읽어볼 수 있다. 아내는 언제나 몰래 내 일기를 읽기에 열외로 인정하기로 했다.
어느 날, 지난 일기를 읽는데 25년 전에 썼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본과 2학년 채플 시간에 어느 목사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있었단다.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연못에 사람이 빠진 것을 보고는 목숨 걸고 헤엄쳐 들어가 그 사람을 구해 냈단다.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찬사를 보냈고 그는 그 연못에서 몇 사람을 더 구출했다. 그럴 때마다 더 많은 주위의 찬사가 쏟아졌고 매스컴의 집중조명을 받아 그는 일약 스타가 되어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이에 고무된 그 사람은 아예 그 연못가에 ‘구명소"(求命所)라는 건물을 짓고 모터보트를 구입했으며 자기 밑으로 사람 몇을 더 고용해 사람을 구하게 하고 자기는 가끔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며 인기관리를 하며 살았단다.
두 갈래 길 앞에서 망설이던 프로스트와 같은 심정으로 치과대학을 졸업한지 벌써 22년.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 역시 이미 많은 선배들이, 동료가 지나간 길이었겠지. 제8의 전성기라는 3년간의 공보의 시절을 지나 개업. 6년간의 개원의 생활 이후 2년간의 미국 유학. 말과 행동, 사고방식이 모두 다른 미국에서의 수련의 생활은 나와 내 가족 모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 이후 다시 개원하여 이제 11년 차. 그 동안 내 곁에는 아내가 생겼고 두 아이가 생겼고 흰 머리가 늘어났으며 부모님은 이제 노인이 되셨다.
지난 20여 년간의 치과의사 생활을 반성해 본다. 그 동안 최선을 다하였는가? 나는 지금 처음의 그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나의 진료는 여전히 성실한가? 사회활동이 늘어가고 영향력이 커지면서 혹 나는 나만의 ‘구명소"를 여기 저기 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현재 나의 삶은 위선적이지 않고 진실한가? 이제 치과의사로서의 삶의 후반부를 맞이하며 과연 나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위대함이란 슈퍼맨처럼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계속하기는 쉽지 않은 일을 오랜 세월 한결같이 해오는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43년간 소록도에서 묵묵히 나환자를 돌보다 언론에 알려지기 싫다며 조용히 자신의 나라인 네덜란드로 돌아간 마리안느 수녀와 마가렛 수녀가 그랬고, 50년이 넘도록 성실하게 일주일에 두 번씩 외래교수로서 수련의를 가르치며 ‘언제나 학생에게서 배우고 있는 자네의 선생으로부터" 라는 답장을 보내 주셨던 유펜 교정과의 Dr. Sklaroff가 그랬다. 나 역시 찬사를 듣고 싶었고 화려한 스타가 되고 싶었다. 주위로부터의 칭찬과 부러움의 눈길은 참으로 달콤해 보였다. 그러나 그런 화려함보다는 비록 큰 사회의 작은 영역에 있는 조그만 개인이지만 지금의 내 역할을 성실히 그리고 끝까지 한다면 나 역시 위대함의 일부를 구성할 수 있지는 않을까?
아빠의 일기를 읽으면서 재미있어 하기도 하고 신기해 하기도 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장면을 그려 본다. 이 다음 마흔일곱살 된 아들이 아빠가 마흔일곱에 썼던 일기를 보며 ‘나 역시 아빠처럼 나만의 구명소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반성해 본다.
오늘은 화요일. 조금 바쁜 날이다. 7시 15분에는 아내와 함께 구은재가 나오는 ‘아내의 유혹"을 봐야 하고, 저녁 먹고 조금 쉬었다가 10시부터는 아이들과 구준표의 ‘꽃보다 남자"를 봐야 한다. 늦지 않게 들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