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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0)흑인 할머니(?)/최창수

그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던 걸로 나의 뇌리엔 남아있다. 불교 학생회에서 시행된 의료봉사 활동(의·치대 합동 의료봉사활동)에 무엇인지도, 어떻게 하는 게 의료봉사인지도 모른 채 선배의 반 강요에 이끌려 참가하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기억속엔 두 가지가 참 인상 깊었던 것 같다. 그 하나는 깊은 밤 선배와 같이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가게에 음식을 구하러 달빛과 별빛을 의지하며 걷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며 가며 많은 대화를 선배와 나눴던, 몹시도 추웠던 시골길이 참 인상 깊다. 또 하나는 지금 생각하면 어설픈 기장비하에 시행되었던 의료봉사에 왜 그리도 많은 이웃 주민들이 찾아 주었는지. 또 치료 후에 우리에게까지 고맙다는 말들이 왜 그다지도 정감이 넘쳤던지….


개업을 한 이후에도 동료들과 같이 의료봉사 활동을 하면서 유난히도 기억 속에 진하게 남아있는 얼굴이 있는데, 2007년 봄 경남 산청군 오부면에서 시행된 노인잔치의 일환으로 무료틀니시술을 해성봉사단(지금은 With Together라는 N.G.O.로 바뀜)에서 하루동안 시행을 했을 때 일이다. 우리 봉사팀은 치과의사, 치기공사, 치과대학생들로 구성된 십여명의 봉사팀으로 일반치과진료 및 무료틀니시술을 했는데, 그 날 진료를 받은 70대 중반의 한 할머니를 잊을 수가 없다. 40대부터 치아를 잃어버리기 시작해 50대쯤엔 상·하악 모든 치아가 상실된 무치악상태로 약 30여년동안 생활을 하신 할머니였다.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키가 150cm쯤이 될까 말까 한 자그마한 체구에 햇볕에 그을렸다기엔 너무 새까만 피부, 특히 얼굴이 유난히도 까만 편이었다. 부산에서 오전 7시쯤 출발하였지만 10시가 넘어서야 간이 진료실에 도착할 쯤, 많은 주민들이 진료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서둘러 진료를 시작했지만, 그 할머니는 정오쯤 인상채득이 시작돼 상·하악 완전틀니를 완성하는데 가장 늦게까지 진료가 진행됐다.
주민들이 행사를 마치고 모두 돌아간 텅 빈 복지회관에  치기공사 세분만이 남아 그 할머니의 진료를 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무치악 상태였기에 여러모로 틀니제작이 힘겨웠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우리도 지치고 할머니도 저녁을 먹지 못한 상태로 몹시도 힘들어 하셨지만 평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틀니가 만들어진다는 기대에 잘 버텨주고 있었다. 드디어 밤 10시가 넘어 틀니가 완성 됐는데 간이 진료실 방안에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이 한 번에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준비해갔던 재료가 한가지였기에 틀니의 치아색깔이 너무 밝아 할머니가 틀니를 끼고선 거울을 보며 어설프게 다물며 웃는 모습이 마치 흑인이 환하게 웃는 형상이었기에, 다들 신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나의 손을 꼭 잡아 주었던 할머니의 얼굴이 마치 지금도 내 앞에 서 계신 것 같다.


어쩌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치과대학에 진학하면서 이제 오십에 접어든 지금까지 치과의사들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마음이 따뜻하다. 모든 다른 일에 서툴고 어설프지만 지금껏 하고 있는 이 일이 어떤 때는 육체적으로, 간간이는 환자와의 의사소통이 잘 되질 않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하지만 천직인양 묵묵히 걷고 있는데 나를 치과의사로서 아니 한 개인으로서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의료봉사다.
치과대학 2학년 때부터 어설프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지금까지 몸에 베어져 다른 모든 이들과 더불어 사는 삶인 것 같다.


우리네 삶의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어쩌면 먹는 욕구해결측면에선 큰 부분일 수 있으며 그 일부를 우리 치과의사들이 도와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나의 기능을 나눠가질 수 있다는 게 행복이다. 모든 이들이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치과의사들이 더욱 더 사회저변 도움의 손길에 참여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