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정착 조건과 개선방향 점검 (하)
·14개 지부서 17개 안건 상정 최대 이슈
·치협 ‘탄력적 소수정예’ 등 대안 제시
·신중한 접근·합의 통한 한목소리 절실
오는 25일 개최될 치협 제58차 정기대의원총회를 앞두고 치과계는 ‘치과의사전문의제도(이하 전문의제도)’의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문의제도 개선책에 대한 안건은 치협을 비롯한 14개 지부에서 총 17개의 안건을 상정해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8% 소수정예 전문의 배출이라는 대전제를 위해 기득권을 포기했던 기존 치과의사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경남, 광주, 대전 등 7개 지부에서 “소수정예가 어렵다면 희망하는 전 회원에게 전문의 자격 취득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경기·전북지부는 ‘구강외과’ 단일과로 전문의제도를 재편하자는 안을 내놨다.
또 치과계의 합의가 가능하고 실현가능한 대안에 무게를 두고 의료전달체계 확립, 수련병원 지정기준 강화 등을 제시한 안이 치협, 서울, 인천, 공직지부 등에서 일제히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문의제도와 관련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 온 경남지부는 “의료광고의 대폭 허용으로 사실상 전문과목 표방을 막을 수도 없고, 보험수가 현실화 이전에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추진하면서 기존 개원의를 포함한 전 회원에게 자격 취득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
경기지부는 “전 과목 시행을 원칙으로 함으로써 전문의가 과잉 배출되고 있다”며 “10개 전문과목 중 2~3차 진료기관에서의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고 유지되는 구강외과만 전문의 과정으로 존속시키는 한편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전문의제도 전체의 틀을 바꾸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 하에 치과계 전체가 합의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수련병원 지정기준 강화를 이뤄 전문의로 인한 개원가의 피해를 줄이고 전공의부터 감축해 나가자는 안이 서울, 인천, 공직지부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됐다.
“치과계 전체의 양보와 합의를 바탕으로 한 전문의제도 개선안이 도출돼야 치협이 대외적으로 힘을 갖고 복지부와 타협과 협상을 통한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 서울지부는 치과병원 설립기준에 적용돼 있는 특혜를 없애는 것을 포함한 수련병원 지정기준 강화를 주문하고, 전문과목 수와 명칭을 조정하자는 등의 안을 내놓았다.
한편 치협은 “정부 및 국회 등과 긴밀하게 협의해 실현가능한 방안을 모색한 결과”라는 전제로 ▲의료전달체계 확립 ▲탄력적 소수정예(중장기적 소수배출 기준 제시) ▲수련치과병원 지정기준 강화 등의 안을 제시했다. 전문의제도개선특별위원회를 운영하며 현 상황에서 필요하고, 향후 전문의제도의 안착을 위해 필요한 대안을 모색해온 결과를 바탕으로 했다는 설명이다.
전문의제도 개선책과 관련해 다양한 논의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올해 총회의 결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1~2차 전문의시험을 통해 배출된 전문의는 이미 500명에 육박하고 있고 1~2년 더 제자리걸음을 하다 보면 전문의 수는 1천명을 훌쩍 넘을 것이다. 압력단체로 작용하게 되는 시점에서는 치과계 전체를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기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기존 치과의사들의 정서를 반영해 강경책을 선택할 것인지, 현 시점에서 가장 실현가능성이 높은 대안을 갖고 치과계가 힘을 모아나갈 것인지 치과계가 다시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전문의제도 도입 10년, 한의협은 여전히 오리무중
전문의제도 개선책이 중요성을 더해가는 상황에서 10년째 내홍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의 상황은 치과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의사전문의제도는 지난 1999년 도입 이후 2008년까지 총 1520명의 전문의를 배출하고 있다. 한의협도 소수정예 전문의 배출, 의료전달체계 구축이라는 큰 틀의 합의를 이루고 기존 한의사들이 일체의 기득권을 포기한 상태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2002년 복지부가 전문의 교육을 담당하는 ‘부교수 이상의 전속지도전문의’에게 전문의 자격을 부여하면서 내부 갈등이 심화됐고 ▲전문의 시험 중지 ▲부교수급 이상에게 전문의 자격 부여 중지 등을 결의하게 된다.
한의협은 8개 전문과목에 개원의들의 특례를 인정할 것, 신설 전문과목(가정한의과 등)을 추가하자는 등의 안이 제기되면서 매년 대의원총회에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개원가, 공직, 전공의, 학생 등 각계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특히 올해는 대의원총회를 1주일 앞둔 시점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관련 전문의 관련 공청회마저 한의대생들의 점거농성으로 불발되는 등 파행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현재 치과계의 최대 화두로 부각되고 있는 전문의 자격 전면 개방안에 대한 한의협의 사례도 눈길을 끈다. 복지부는 한의사전문의 도입 당시 개원 6년 이상, 또는 300시간 이상의 연수를 받은 기존의 한의사에게 전문의 응시자격을 줄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6년 미만 경력의 한의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특례규정을 포기했다.
이후 논의에서 복지부는 기존의 8개 전문과목에 기존 개원의들이 응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가정의과와 유사한 ‘(가칭)가정한의과’ 등 별도의 신규과목을 만들고 일정 조건을 갖춘 개원의에게만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재 ‘전문의 전면 개방’을 주장하는 치과계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기존 임의수련을 거친 치과의사로 대상을 제한하거나, ‘(가칭)가정치의’ 등으로 통합 흡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치과계의 경우 보철, 교정 등 인기과가 확연히 구분되는 상황에서 임의수련 당시 보철과를 수련하고도 ‘(가칭)가정치의’ 자격을 취득하는 데 만족할 수 있을지, 임의수련을 받지 못했거나 필요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치과의사들에게는 전문의 수만 늘릴 뿐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점도 신중히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2차에 걸친 전문의시험을 통해 ‘졸업생의 8%’라는 대전제가 지켜지기 힘들다는 것은 이미 확인됐다. 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도를 없애거나 중지하는 것은 ‘밥그릇 싸움’으로만 비춰질 수 있고 국민적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올바른 전문의제도가 안착되기 위해 ‘소수정예’가 필요하다면 가능한 방안을 마련하고 치과계가 합의를 통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할 시점이다. 치과계 전체의 합의가 이뤄진 안이어야만 대정부, 대국민을 상대로 한 타협, 개선책 마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부의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정부 단체나 국민들에게 올바른 전문의제도의 당위성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혜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한의협 관계자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봐야 할 시점이다.
김용재 기자 yonggari45@k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