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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1번째) 충치에서 우주까지(상)/ 부제-할매와 하숙집 그리고 변소

충치에서 우주까지(상)
                    부제-할매와 하숙집 그리고 변소

 

 

요즘 내가 아침식사를 하는 곳은 주로 안방 화장실이다.
처는 화장실 문 앞에 아침을 차린다. 밥상까지는 아니나 쟁반에다 큰 컵으로 과일주스 하나, 미숫가루 아님 콘 스프를 건네준다. 가끔 달걀프라이나 베이컨, 김치도 조금 곁들일 수 있다.
이는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정착된, 간편하고도 빠른 나의 아침 메뉴로써 십 수 년 동안 별 손색이 없었다.
항시 늦게까지 마셔대는 탓에 침대에서 일어나도 한동안 껄끄러운 내 목과, 술꾼치곤 꽤나 까다로운 입맛, 곧 출근하여 환자를 봐야한다는 제한된 조건아래서도 말이다.
처가 몇 번씩 재촉하여 샤워기 앞에 서기 전까지는 쟁반을 무릎에 놓고 문 앞 탁자에 있는 내 애독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Richard. Dawkins-까지 펼친 다음 식사를 하면서 내 볼일을 본다. 느긋이….

 

한참 옛날에,
광주 서석동의 우리 하숙집이 이사를 가게 됐다.
원래 조선대 정문근처에 있었는데 하숙을 치는 할매가 집세 싼 데를 찾다 찾다가 법원 쪽으로 한번 옮겨보게 된 거다.
하숙생들은 저마다 제 방이나 조금 넓어질까 기대를 하고 갔는데 아니올씨다 였다. 집모양은 ㄷ자 형태로 옛집과 비슷한데 그 ㄷ자 끝에 화장실이 딱 하나 밖에 없었다. 이전에 우리끼리 6,7명 있을 때도 빠듯했었는데 이 집에는 원래 살고 있던 다른 식구들도 몇 명 있었다. 그러니 식구가 늘어난 새집은 아침 일보기가 서로 간에 거의 전투(?)수준이었다.
게다가 이 집 변소는 쪼그려 앉아야 하는, 전통적인 ‘푸세식’이었는데(1970년대만 해도 아직 수세식이 귀했다.)


용케 순서를 차지해 아침에 한번 앉아볼라치면 엉덩이가 불안할 정도로 아래가 언제나 꽈악 차 있었다.
똘똘한 치대생이던 난 할매한테 저걸 왜 제때 좀 푸지 않느냐 했더니 그럴 필요가 없단다. 항상 그 수위에? 머물러 있고 더 이상 올라오진 않는단다. 또 변소 옆에는(그러니까 ㄷ자 중간쯤) 이집 식구 모두가 세수, 빨래 그리고 밥 짓는 데 요긴하게 쓰는 우물이 떠억! 놓여 있었다.

 

 우리들이 그 이전 집에 살 때,
멀리 있던 모친이 모처럼 하숙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어디 마실을 갔던지 하숙집 할매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부지런한 우리 모친은, 오후에 아들이랑 하숙생들이 돌아오면 어차피 먹어야 할 저녁을 지을 요량으로 하숙집 부엌에 들어갔다. 백열등 하나만 있어서 본래 낮에도 어두운 부엌이었는데 손때가 꼬질꼬질 묻은 찬장을 기어코 열어 본 모친은 기겁을 했다. 찬장 칸 사이, 변변히 담긴 것도 없는 그릇과 양재기들 뒤편에서 열심히 뭘 찾아먹고 있던 놈(?)을 본 거다. 인기척에 별로 놀라지도 않고 그놈의 긴 꼬리가 슬슬 사라지는 걸 보곤 우리 모친은 그랬다.


‘그릇마다 먹을 거라곤 쥐뿔도 없고 행주질은 도대체 언제 해봤는지…. 정말 지옥 같더라.’
모친은 고개를 절절 흔들었지만 할매는 식사 때마다 신기하게 밥과 국, 몇 가지 찬들을 꼬박꼬박 만들어 내었고 내가 있던 몇 년 동안만도 수십 명의 하숙생들을 끄떡없이 먹여냈다. (나를 포함한 치대생과, 의대생, 상대생, 법대생, 공대생, 체대생, 전문대생, 고등학생까지, 입학철에는 당일치기 대학수험생까지도 ….)


 우리 식구 중 할매 밥을 거의 먹지 않는(?)한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이 집 바깥주인 할배였다.
냄새나고 지저분하기 때문에 그는 하숙생들이 잘 볼 수 없는 부엌 옆의 골방에서 혼자 지냈다. 자길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할매한테 툭하면 쌍ㅅ자를 쓰며 별 힘도 없는 주먹을 휘두르는 일 외엔 할배가 평소에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숙생중 그의 맨 얼굴을 본 사람이 없었는데 하루 24시간 내내 젖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벌건 코와 어눌한 행동거지, 흰 머리에 벙거지 하나 쓴 것까지 배우 성룡이 주연했던 ‘취권’의 무술사부와 외양은 똑 같았다. 하루에 한 끼 눈곱만큼 먹는 밥도 꼭 막걸리나 소주에 말아먹어야만 그는 소화를 시킬 수 있었다. 할매는 그가 평생 마신 술로 창자가 녹아버려서(?)그렇다고 했다.

 

어느 날 새벽,
전날 어디 가서 잘 얻어먹고 온 할배가 웬일인지 정신을 잃고 마당 수돗가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보고 놀란  하숙생들이 할배를 안방으로 옮겨 놨다. 그는 처음에는 가느다란 숨이 남아 있었다. 할배는 결국 조용해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똑바로 누운 할배의 벌린 입에 할매가 찬물을 들이부은 뒤부터였다.
잔주름 많은 눈가를 눈물로 질척거리며 할매는 그랬다.
‘ 이렇게 하믄 몇 번씩이나 퍼뜩 깨어 났었는디?…. ’


 할매도 쓰러진 적이 있었다.
하숙집 대문 앞집과 연결된 얇은 슬레이트 지붕에 애호박이 몇 개씩이나 열렸다. 궁한 대로 반찬거리 할 욕심에 지붕에 올랐다가 약한 부분이 부서지면서 할매가 머리부터 떨어진 거였다.
이번에 정말 놀란 하숙생들은 안방이 아니라, 시내의 잘 나간다는 외과병원으로(왕고참 치대생 우 선배님이 잘 안다는) 할매를 모셨다. 그것도 비싼 택시로… 나중에 알았는데 할매를 급히 들쳐 업고 나오느라 우리들 중 아무도 택시비를 챙겨 나온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할매는 머리를 몇 바늘 꿰맨 뒤 말끔히 털고 일어났고 문제의 호박은 결국 우리의 반찬으로 올라왔다.
 <다음호에 계속>
 

허 영 돈

진해 허영돈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