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련한 옛 추억 속에 묻혀 버린 지 오래지만 나에게도 한 때 인생에 대해 방황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담배연기 자욱한 허름한 지하 찻집에 앉아 ‘솔베지 송’을 들으면서 긴 시간 고독에 잠겨보기도 했고, 코스모스가 만발한 가을의 들길을 홀로 거닐며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곱씹어보기도 하였다.
흰 눈이 장독대 위로 소복히 내려앉은 추운 겨울엔 자취하는 친구 방에 모여 앉아 막걸리로 몸을 녹이면서 나름대로의 인생론을 펼치며 밤 깊어 가는 줄 몰랐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씨익 웃음이 나오지만.
‘제까짓 애들이 인생을 얼마나 살았다고....’
인생이란 ?
가수 최희준의 ‘하숙생’이 한창 유행할 즈음의 소년시절에 있어서의 인생이란 ‘나그네 길’이었고 안병욱 선생님의 수필을 탐닉 하면서는 ‘오늘이란 깃발을 매달고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되었다가 다시 ‘연극 무대’로 슬며시 바뀌기도 하였다.
이렇듯 수시로 바뀌어가던 나의 인생관이 지금까지 변함 없이 지속되어오는 계기가 있었다. 그건 어느 한 여학생의 편지를 받고 부터이다. 주변에서 문학소녀라고 불리우던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나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으로 자주 만날 수 있지만 우린 곧 잘 글을 주고받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서로가 문학을 좋아한다는 까닭도 있었지만 글이란 게 직접 대화(對話)에서는 느끼거나 표현할 수 없는 야릇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녀로부터 평소와는 달리 꽤 두툼한 편지를 건네 받았다. 모두 열 장의 긴 장 문(長文)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지금 그 내용을 아무리 떠올려 보려고 노력해도 기억 저 편에서 맴돌 뿐 생각나질 않는다. 단지 분명한 것은 열 장의 편지에는 매 장을 넘길 때마다 숫자대신 한 자씩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글자들은 한 자 한 자 모여서 인.생.은.고.달.픈.먼.길.여.행.이라는 한 문장을 이루었다.
‘인생은 고달픈 먼 길 여행’
눈이 크고 하얀 목이 유난히도 길어 마치 어린 꽃사슴을 연상케 하는 그녀가 왜 하필 인생의 여행길이 고달프다고 표현했을까?
그 당시 나의 하숙방 책상위 벽에 늘 단골로 자리 잡은 게 있었는데 푸시킨의 시 ‘삶’과 ‘Boys, be ambitious!’란 글귀였다. 난 외로울 때나 피곤하고 지친 날이면 그 글을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늘 되내이곤 했었다.
‘현재의 생활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 지라도 오색 무지개 빛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날을 위하여 오늘을 열심히 살겠노라. 그러노라면 언젠가는 성공(?)하여 지나간 오늘을 추억할 때가 있으리라. 광화야! 용기를 가져라 야망을 가져라."
나는 교육자의 집안에 태어나서 위로 2년 터울의 두 형님과 아래로 다섯 동생과 함께 자랐다. 무엇 한가진들 풍족한 게 있었겠는가? 나의 주머니는 늘 비어 있었고 나는 그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남보다 더 절약하며 더 바삐 뛰어 다녀야만 했다. 그렇지만 마음만은 항상 즐겁고 희망에 넘쳐 있었다.
세월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하여 아들 딸 키우며 늦게나마 못 다한 공부에 다시 매진도 해보았다. 지금은 소위 남들은 선망의 대상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지고 좋은 아파트에 세계인이 선호한다는 차도 소유하며 적어도 외적으로는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마음은 그 가난했던 시절보다 더 고달픈 건 왜 일까?
성경 시편에 보면 다윗은 인생을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시편103;15)
이토록 부질없는 우리네 인생.
웃으면서 걸어도 고달픈 이 길을 무슨 미련이 많아서, 인생이 얼마나 길기에 아집과 분노 아귀다툼으로 그토록 발버둥을 치는가?
무슨 불만과 욕구가 그리도 많아 허둥대면서 가시밭 그 길을 맨발로 내 닫는가?
‘인생은 고달픈 먼 길 여행’
연륜의 나이테가 늘어갈수록 모든 게 잊혀져 가고 사라져 가지만 이 열 글자만은 더욱 선명하게 내 가슴속에 깊이 와 닿는다.
이제 비로소 철이 드는 걸까? 그 소녀가 오래 전 터득한 인생의 의미를 이제야 깊이 깨닫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