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7 (화)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제1473번째) 관계 / 이 윤 경

관       계

 

늦은 진료를 마치고 병원 동생들과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찾아서 와인빙수 한잔과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문득 내 눈 속에 액자 속 그림하나가 들어왔다.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금발소녀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그림 속 강아지의 표정이 나를 많은 생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남들이 들으면 요즘말로 ‘오버’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난 이런 작은 망상에 빠지는 걸 자주 즐긴다. 아니 어쩌면 이제는 버릇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강아지를 안은 소녀의 표정은 없었고, 강아지는 마치 우리를 향해 구원을 바라기라도 하는 듯 애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 그림 속 소녀는 강아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뭘 원하는지에 대해선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그저 강아지가 자기 것이기에 자기 만족과 위안을 느끼며 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안겨 있는 강아지가 더욱더 가엽게 느껴졌다. 그 강아지는 소녀가 주인이기에 소녀에게 안겨 있는 게 힘들어도 소녀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고, 붙들리고 붙박여 있는 것 같았다.


‘저 둘은 과연 어떤 관계일까?’라는 의문과 함께 사진 속 찰나에 포착된 소녀와 강아지의 표정을 보면서 난 과연 나와 관계 맺은 사람들에게 어떤 표정을 짓게 만드는 존재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랑 관계 맺고 있는 인연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우리 할머니… 타지에서 내가 몸고생 맘고생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 하며 내 전화만 기다리는 사람.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할머니가 가여우면서도 가끔은 아니 자주 귀찮아 전화도 자주 하지 않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죄책감. 할머니에 대한 내 감정은 묵직한 죄책감이고, 나로 인한 할머니의 표정은 걱정과 대견함, 또는 서운함이 교차되는 씁쓸한 얼굴이 아닐까 생각하니 마음이 시리다.


내 친구들… 내가 했던 말 기억하지 못하고 서너 번 반복해도 못 들었던 척 귀담아 들어준다. 그러고는 내 말이 다 끝나면 너 그 말 예전에 했던 말이야. 하고 웃으며 너스레를 떠는 사랑스런 내 친구들이다. 친구들에 대한 내 마음은 고마움, 든든함. 날 보는 친구들의 표정은 귀여움, 아님 지켜주고 싶은 마음… 정도가 아닐까 싶다. 


병원일이 힘들어 별일 아닌 일에 가끔 짜증내도 투덜거려도 묵묵히 참아주는 직장동료들이 있다. 내가 병원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도와주는 든든한 지원군들이다. 우린 서로 고마워하고, 의지하며 같은 일에 종사한다는 연대감과 정으로 힘든 일상들을 지치지 않게 지켜주고 있는 것 같다. 서로의 표정을 거울처럼 지켜보면서….


우리 깐돌이(나를 키워주는 강아지). 하루 기본 10시간을 삐치지도 않고, 꼬박 나를 기다렸다가 내가 오면 좋다고 꼬리 흔들고 안기고 나를 핥아주는 내 새끼. (놀아달라고 막 떼쓰는데 졸린다고 짜증냈던 일이 생각났다) 내가 조건 없이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대상이다.


하나하나씩 생각해 보다 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관계들이 내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고 있다. 그렇기에 내일은 할머니한테 전화도 드려 안부도 묻고, 친구들에겐 전화 걸어 무슨 고민이 없는지 내가 먼저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들어줘야겠다. 출근해서는 직장 동료들을 위해서도 뭔가를 먼저 해야겠다. 그리고 우리 깐돌이랑은 깐돌이가 좋아하는 저녁산책을 꼭 감행해야겠다. 그러고는 그 레스토랑에 가서 그림을 다시 봐야겠다. 그 때는 강아지가 웃고 있길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