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석(원광)·박상진(경희)·박찬운(전북)교수 정년퇴임
한두석 원광치대 구강해부학과 교수, 박상진 경희대 치의학전문대학원 보존과 교수, 박찬운 전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보철과 교수가 지난 8월 말일자로 정년을 맞아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한두석 교수는 68년에 전북대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81년부터 원광치대 교수로 재직했다. 수의과 출신이나 약 30년간 치대에 적을 두고 대한구강해부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박상진 교수는 69년에 서울치대를 졸업하고 77년부터 32년간 경희치대에 재직했으며, 경희치대 학장, 대한치과보존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박찬운 교수는 75년에 서울치대를 졸업하고 80년부터 전북치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전북치대 제5~6대 학장을 지내고, 대한치과턱관절기능교합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구강해부 등 기초의학 큰 관심 가져야”
한두석
원광치대 구강해부학과 교수
“원광대학교 치과대학의 교수로 재직한 29년의 세월동안 많은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학교 측과 동료 교수님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구강해부학을 평생 가르쳐온 교육자로서 임상과 연계되는 주요 기초학문에 더 많은 후학들이 지원해 주길 바란다.”
지난 1981년 원광치대의 개교와 함께 구강해부학과에서 근 30여년간 기초학문을 가르친 한두석 교수는 지난달 23일 전주시내에 위치한 코아호텔에서 근사한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치과의사가 아닌 수의사 출신인 한 교수는 기초의학에 대한 지원자가 부족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치의학의 기반학문이 되는 구강해부학의 발전과 학생교육을 위해 젊은 날을 다 바쳤다.
특히 한 교수는 대한구강해부학회의 회장을 역임하며 대외적인 학술활동의 선봉에 서서 활약하기도 했으며, 원광대학교 연구교류처 처장 및 산학협력단 단장 등으로 활약하며 학교행정가의 면모를 뽐내기도 했다.
원광치대의 예과 과장을 오래도록 연임하기도 한 한 교수는 “대한구강해부학회를 이끌며 다른 관련학회와 연계해 다양한 학술연구를 추진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퇴임을 하면서 바람이 하나 있다면 더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구강해부학과 같은 기초의학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이런 바람을 담아 퇴직과 함께 평생의 연구업적을 집대성한 ‘구강해부학 교실사’를 발간하기도 했다.
한 교수는 “지금도 원광치대 초창기 졸업생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을 만큼 원광치대는 내 인생에 많은 추억과 도움을 줬다. 치의신보를 통해 치과계를 많이 공부했던 기억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며 “퇴임 후에도 명예교수로 활동하며 나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위해 힘아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수환 기자 parisien@kda.or.kr
“치의학 발전위해 치협·치대 공조”
박상진
경희치대 보존과 교수
“교육이란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를 키워내는 중요한 분야입니다. 정부는 국가의 장래를 꼼꼼히 따져보고 교육정책을 구상하고 치협도 치과대학들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지난달 31일자로 33년 동안 몸담았던 정든 학교를 떠나는 박상진 경희치대 교수는 학자이자 교육자로서 한국교육과 치과계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소신과 의견을 밝혔다.
박 교수는 경희치대 임상강사부터 시작해 경희치대병원 교학과장, 보존과장, 학과장 등 경희치대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박 교수는 80년대 시대의 암울함을 씻어내 보려는 학생들의 외침을 듣고 함께 고민했을 때를 잊지 못한다.
박 교수는 “당시 군사정권시절 사회의 부조리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설득하고 그들을 다시 교실로 보내는 것이 교학과장의 일이었다”며 교육자로서 정치적인 중립을 지키면서 학생들과 밤새도록 시대를 안주로 술잔을 기울이고 학생들과 토론했던 기억을 비록 당시는 괴로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라고 회상한다.
“그렇게 제자들과 밤늦게 술 마시면 학생들이 돈이 어딨나? 계산은 다 교수이자 스승인 내 몫이었다”며 “지금도 그때를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제자를 만나면 교육자로서의 기쁨을 느낀다”며 박 교수는 흐뭇해했다.
또 박 교수는 2004년에 치의학전문대학원에 대한 운영 노하우가 없던 시절 경희대 치전원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이 보람이라고 밝혔다. 현재 경희대 치전원의 초창기 교육 커리큘럼 등 중요한 부분을 박 교수의 책임 하에 완성한 것.
“오랜 시간 동안 교편을 잡아왔지만 교육부의 교육정책이 참 부족하다. 치협과 대학이 공조해 더욱 발전된 한국의 교육과 치의학의 발전에 노력해 달라”고 박 교수는 당부했다.
정일해 기자 jih@kda.or.kr
“미래 준비…임상·연구 노력 경주해야”
박찬운
전북치대 보철과 교수
“젊어서 열심히 나무를 심고 가꿔야만 노후에 쉴 수 있는 그늘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임상과 연구에 성과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기를 당부합니다.”
지난 8월 말로 정년퇴임을 맞이한 박찬운 전북대 치전원 보철과 교수는 이같이 당부의 말을 남겼다.
박 교수는 “항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 준비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며 “자기가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대처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준비하자.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그런 자만이 노후를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국민소득 1000불대의 1965년도에 치과대학에 입학해 지금 국민소득 2만불 시대에 은퇴를 맞이하게 됐다”며 “치과계도 소득발전 만큼이나 큰 변화가 있었고 현재는 치과대학 11개교, 치과의사 2만명 시대를 맞이한 엄청난 양적 팽창을 가져왔다. 사회에서도 우리 치과의사의 위상이 크게 향상된 상태에서 은퇴를 맞이하게 돼 아주 뿌듯하고 자랑스럽다”고 퇴임 소감을 밝혔다.
박 교수는 또 “개학 초 학생들과 어울려 MT에 함께 가고, 운동도 같이하고, 뒷풀이도 함께 했던 젊은 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며 “우리학교 출신들이 전국 각지에서 성공적인 개원의로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주위 치과의사들로부터 칭찬을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끼고 자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1990년 치과의사 국시에 많은 학생들이 탈락해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일, 치과병원 독립을 위해 지방 국립대학 교수들이 경북대에 모여서 함께 투쟁했던 일 등이 공직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은퇴 후에는 건강을 챙기면서 그간 못한 여행을 즐기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받은 주변 사람의 은혜에 대해 보답하고 싶다”며 “가족들에게도 적지만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안정미 기자 jmahn@k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