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이렇게 마음껏 ‘여자 성토 대회’를 계속하는 동안 웬일인지 아내들은 너그러운 큰누이 같은 얼굴들을 하고서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지난 12월은 바빴다. 초보 스키어가 얼떨결에 리프트를 타고 맨 꼭대기 제일 어려운 코스에서 제 힘으로 조절할 수도 없이 빠른 속도에 휩쓸리듯, 그렇게 한달을 보냈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무슨 무슨 모임들, 다신 못 만날 사람들처럼 12월이 가지 전에 한 번 봐야지 하면서 열심히 만났다.
조금씩 나이가 드는 것인지 이젠 예전처럼 무시무시한 폭탄주를 먹는 그룹도 없어지고 3차, 4차하면서 고래고래 악을 쓰는 그룹도 사라졌다. 몇몇 모임에는 예의상 참석했고, 몇몇 모임에는 사교상 참석했고, 그리고 몇몇 모임은 나 역시 즐거워서 참석했다.
그 가운데 부부가 함께 모이는 자리의 화젯거리는 역시 조금은 생활적인 것이 되게 마련일까? 우연히 화제가 ‘여자들이란, 쯧쯧쯧......’하는 데로 빠졌는데, 아! 그날의 그 ‘여자성토 대회(聲討大會)’ 만큼 남자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준 모임도 없었던 것이다. 먼저 A가 입을 열었다.
“마누라가 자기 머리 자를 때가 안 됐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뭐 지금도 괜찮아 보인다고 해줬지. 그 똑 같은 질문을 밤마다 일주일을 하더니 어느 날 나가서 머리를 자르고 들어와서는 그 날 밤부터 후회를 하는 거야. 여보, 나 아무래도 괜히 잘랐죠? 하면서. 이상하지, 여자들은?”
B가 얼른 이어받았다.
“더 이상한 건 눈 화장하는데 뭘 그리 바르고 또 바르고 하는지, 한 시간이 걸려요. 그런 다음에 외출할 때 보면 그 위에 척 선글라스를 쓰는거라. 그럴걸 뭐하러 화장은 한담. 이상하지, 여자들은?”
“그뿐인가?”
C가 거들었다.
“옷 한 벌 사주려고 같이 옷가게에 갔는데 새 옷을 입어보는 사람이 왜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는 안 보고 머리를 쓸어올리나. 자세히 보니까 대부분의 여자들이 다 그러데. 그러고서 그 옷을 사면다행이게? 실컷 입어보고 뒤집어보고 한 다음에는 안 사고 그냥 나와요.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아. 다른 집에 가서 또 똑같은 과정을 대여섯 집 더 한 다음에 다시 맨처음 그 집으로 가자고 할 때는 어떻고?”
D도, E도 동감을 표했다. 이때 F가 나섰다.
“그럴 때 화내는 남자는 말짱 헛일 한 거야. 돈 쓰고 시간쓰고 고맙단 소리도 못 듣는 거지. 그나마 뭐라도 한 가지 사가지고 들어오면 괜찮아. 결국 못 샀을 때 어휴, 그 뒷감당을 잘해야지. 자기가 못 골라서 못 샀으면서 괜히 화를 내요.”
이때 다시 A가 등장했다.“여자가 괜히 화낼 때 있잖아. 이때를 잘 넘겨야 한다구. 제일 바보 같은 질문이 뭔 줄 알아? 당신 왜 그래? 뭣 때문에 화난 거야? 이랬다가는 하루 갈 게 이틀 간다 이 말씀이야. 여자들은 속으로 흥! 내가 왜 화났는지조차 모른다 이거죠? 하고 더 토라진다고 무슨 책에선가 읽었어.”
좌중의 G가 얼른 알려주었다.“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아닌가! 내가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가는 위대한 법칙이 있는데 그건 여자가 당신 맘대로 해요! 하고 말할 때 정말 내 맘대로 했다가는 진짜 큰일이 난다는 것일세. 하여간 이상하지, 여자들은?”
“그래도 어쩌겠나. 우리가 세상에서 같이 살 상대는 여자뿐인걸. 그렇다고 남자랑 함께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여자들은 정말 이상해. 얼마 전에 어디 놀러가서 찍은 사진을 보는데 마누라가 끊임없이 불평을 하는 거야. 어떤 건 자기 얼굴이 실물보다 더 못 나왔고, 또 어떤 건 실물보다 더 나이 들게 나왔고, 어떤 건 더 뚱뚱하게 나왔다나. 아니, 사진이란 게 있는 그 대로 보이는 거 아닌가?”
남자들이 이렇게 마음껏 ‘여자 성토 대회’를 계속하는 동안 웬일인지 아내들은 너그러운 큰누이 같은 얼굴들을 하고서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어떤 핍박을 받을 줄도 모른 채 남자들은 일단 스트레스를 푼 기분이었다. 불쌍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이니라! 남성 동지 여러분! 올 한 해도 잘 시작해 봅시다!
김범수 / UCLA 치과과정수료
현재 LA에서 개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