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마음 풀고 싶으면
종묘를 찾아라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싶으면 종묘를 찾아라. 시끌벅적한 서울 종로거리를 헤매다가 정문에 들어서면 마치 딴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적막하다. 한적한 오솔길을 걷다가 정전을 바라보면 그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하기도 하고 단조로운 건축구조에 절제의 미를 배우게 된다.
사극을 보면 임금이 잘못을 저지를 때 신하들은 ‘종묘사직’을 생각하라는 대사가 종종 등장한다.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하고 국가적인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조선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가장 먼저 지은 건물이 종묘로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신 것이 종묘의 시작이다.
정전(국보 제227호)은 조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모신 유교 사당으로 동시대 단일 건축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동서 길이가 109m에 이르니 100m 달리기 트랙보다 더 길다. 이는 신위수가 늘어날수록 건물을 옆으로 증축한 결과다. 만약 조선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았다면 건물은 더 길어졌을 것이다. 담장 안에는 나무 한그루도 없다. 일체의 화려함과 장식을 배제하고 꼭 필요한 건물만 있어 단정한 유교의 기품을 느끼게 된다. 가장 오른 쪽 첫 번째 칸에 태조의 신위가 모셔져 있으며 그 뒤로 태종, 세종, 세조가 뒤를 잇는다. 마지막 19칸은 조선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공간이다. 남북으로 귀신이 드나드는 신로가 월대 가운데를 가로 지르고 있고 급경사의 지붕은 하늘로 향한 무한함을 상징한다. 건축의 기본은 반복과 대칭이다. 무한하게 반복되는 기둥의 배열은 끊임없는 왕위의 영속성을 말해준다. 박석은 바깥으로 살짝 경사를 두어 물이 고이는 일이 없게 했다. 독특한 건축양식과 유교사상이 가미되었기에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2001년에는 ‘종묘제례 및 제례악’이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정전과 마주하고 있는 건물은 공신당이다. 역대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왕과 신하의 신실이 한 울타리에 있어 죽어서도 임금을 모시는 영광을 얻게 된다. 왕이 늘어날수록 공신들도 늘어나 창건 때는 3칸에 불과했으나 9칸으로 늘렸다가 지금은 16칸의 긴 건물이 되었다. 하 륜, 한명회, 신숙주, 이원익, 김상헌, 남구만, 김만중, 송시열 등 조선 역사의 큰 획을 그은 공신 83분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종묘대제를 지낼 때 공신들 제사도 함께 지내게 되는데 왕과 달리 공신의 제사상은 무척이나 소박하다. 신하제사까지 챙기는 모습이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영녕전(보물 821호)은 세종 3년(1421) 정전에 모셨던 태조의 4대조와 왕비의 신주를 모시기 위한 별전이다. 세종 때 정종이 승하하자 정전 감실에 신위를 모실 공간이 모자라 중국 송나라 때 따로 별묘(別廟)를 세웠던 예를 채택하여 건물을 짓게 된 것이다. 영녕전은 건물과 묘정의 규모에서도 정전보다 작게 하여 두 건물 상호간의 위계를 보여준다. 특이한 것은 가운데 태조의 4대조를 모신 네 칸을 그 좌우의 협실 여섯 칸보다 높게 하여 위계를 달리하고 있다. 그만큼 뿌리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좌우 협실에는 정전에 모시지 않은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셨다. 문종, 단종 등 비교적 재위기간이 짧은 임금을 모시고 있는데 처음엔 정전에 모셨다가 이곳으로 옮긴 왕이 있다. 정전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지, 들어올 임금님은 늘어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영녕전 구역은 공신당이 없기 때문에 임금이 영녕전으로 옮겨지면 공신당의 신위는 가족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종원/대한민국 숨겨진 여행지 100 저자
■ 여행 팁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 옛 의식 그대로 종묘대제가 재현 봉행되고 있다. 종묘는 09:20~17:00까지 하루 9차례 문화재해설사와 함께 관람을 해야 한다. 1회 관람객은 최대 300명으로 제한하며 종묘홈페이지(http://jm.cha.go.kr 02-765-0195)에 사전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다. 단 토요일은 예약하지 않고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관람요금은 성인 1,000원, 학생 무료다. 지하철 종로 3가역에서 도보 5분 거리(1호선-11번, 3호선-8번, 5호선-8번 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