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서의 하룻밤
(2) 서산 계암고택(김기현가옥)
충청남도 서산.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지역으로 말투부터 정겨움을 준다. 가야산의 산세가 내포지역으로 흐르고 이윽고 바다로 흘러내리는 듯한 곳에 계암고택(溪巖古宅, 김기현가옥)이 자리하고 있다. 산들은 낮고 인심은 후덕한 경주김씨(일명 한다리 김씨) 집성촌이다.
정겨운 충청도
아늑한 곳에서 휴식을
이들은 600년전 이곳을 세거지로 삼았다. 고택과 맞붙은 옆에는 조선 영조대왕의 마지막 비(妃)였던 정순왕후의 생가가 있다. 이곳은 독립운동가였던 애국지사 김용환선생(고택의 주인인 김기현선생의 5촌 당숙)의 본가이기도 하다.
백림 김용환선생은 이곳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다 절강성 항주에서 순국했다. 그의 묘비가 보훈처 답사반에 의해 2003년 절강성 고탕산에 발견돼 유해가 그해 12월 국립현충원으로 돌아왔다. 묘비는 현재 그의 본가 앞마당에 세워져 있다.
계암고택의 선조였던 김홍경은 영의정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김한신은 국혼으로 화순옹주를 부인으로 맞이한 부마였다. 그의 조카뻘 되는 김한구의 딸이 정순왕후가 되면서 다시 국혼을 맺는다. 그후 정승이 37명이나 배출되었으며 학자로 추사 김정희도 이곳 출신이다. 조선 철종시대에는 김도희가 좌의정을 역임하며 가문의 명예를 높이기도 한 명문가다.
한다리 김씨가 융성했던 시기에는 기와집이 즐비했으나 현재는 계암고택이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199호로 지정되어 정순왕후 생가는 시도기념물 제68호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계암고택은 한때는 비어 있었으나 고택 활성화 차원에서 개방하고 있다.
안내서에는 고택의 건립연대를 19세기 중반으로 추정하지만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일설에는 효종왕으로부터 하사 받은 집으로 문신 김홍욱이 노부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내려준 목조의 기와집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최소한 이 고택이 지어진 시기는 효종왕 재위 때인 1649~59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필자의 생각도 이 시기로 본다. 더불어 이 고택은 정순왕후 생가와 이어진 한 건물로 추측한다.
계암고택의 구조는 전통적인 양반가옥 구조로 안채는 ‘ㅁ’자로 지어졌고 여기에 사랑채가 이어져 있다. 사랑채 뒤편에는 초당(초가집)이 3칸 규모로 지어져 있는데 조선시대 일반 평민의 가옥구조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고택 소유자 김기현선생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1면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