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면에서는 삐에로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기괴한 미소를 짓는 모습과 마을 치과의사의 무표정한 모습을 오버래핑 하면 멋지지 않겠수?
밝은 햇살에 눈을 떠보니 우려했던 대로 너무 늦었다. 토요일이라고 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던 게 탈이다. 서둘러 가방을 챙겨 약속 장소로 나갔다.
오늘은 동호회 정기촬영대회가 있는 날이다. 다들 큼지막한 렌즈와 삼각대를 들고 진지한 모습이다. 나는 오늘도 역시 가방 속 카메라를 꺼내기가 쑥스럽다. 내 가방에는 2년 전 진료실에서 사용하려고 구입한 3배줌의 디지털 카메라 하나만 덩그렇게 있다.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며 카메라를 꺼내는데 하필 그가 나를 알아보고 이쪽으로 걸어오며 큰 소리로 말한다.
“보건소 치과선생님, 오늘도 치과카메라 가지고 오셨어요?”
그는 처음 만날 때부터 나에게 보건소 치과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왠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나보다 다섯 살쯤 많아 보이는데도 아직 학생이라고 소개한 그는 나를 부를 때마다 귀에 거슬릴 정도로 치과에 강세를 넣어 불렀다.
소문으로 그는 장차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으며 이미 몇 편의 사회성 짙은 연극의 극본을 맡았었다고 했다.
“치과선생님, 내가 요즘 구상중인 시나리오 하나 들어 보실라우?”
그는 나의 무성의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와 장면 전환 기법에 관한 전문용어까지 섞어 가며 자기 시나리오를 열심히 이야기 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어느 작은 마을에 갑작스레 초대형 사탕 공장이 들어서고 마을 사람들은 사탕공장에서 일을 하며 활기를 띤다. 사탕 공장 주변이다 보니 사람들은 사탕을 많이 먹게 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충치가 많아졌다.
충치가 생기면 치과에서 치료하고 치료한 이는 나중에 빠지게 되는 거라고 믿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이를 치료하는 것을 숙명처럼 생각하며 아픈 이를 치료해주는 치과의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데 인색해하지 않으며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부임한 젊은 교사는 사탕 때문에 충치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려 하지만 사탕공장의 음모와 치과의사의 모호한 태도로 뜻을 이루지 못한 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 뒤에도 마을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사람들은 여전히 충치를 앓고 치과의사는 충치를 치료하며 모두가 불만 없이 살아간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삐에로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기괴한 미소를 짓는 모습과 마을 치과의사의 무표정한 모습을 오버래핑 하면 멋지지 않겠수? 치과의사 선생님.”
나는 듣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그를 향해 소리 질렀다.
“매일 엑스파일 같은 외국 드라마나 보고 베끼면서 무슨 시나리오 작가냐. 도대체 세상의 일을 모두 음모로만 몰아세우면 그만이냐. 그만이야? 도대체 나한테 무슨 감정이 있어서 괴롭히는 거냐.”
한참을 이성을 잃고 떠들어대는 데 갑자기 목이 쇤 것처럼 말이 안 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답답해하고 있는데 나를 노려보던 그가 삐에로로 변해버렸다. 나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참, 이상한 꿈이다.
심수영 / 악어미디어연구소 소장
치과개원준비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