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trum
‘미룸’의 미(未)학
배 지 철
부산대치과병원 보철과 전공의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서 지난 12개월간 가장 돈을 많이 번 스포츠 스타 100명을 발표하였는데 1, 2위가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매니 파퀴아오라는 복싱 선수였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지 못하는 복싱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는데, 마찬가지 이유로 5위에 테니스 스타 페더러가 이름을 올리고 있던 점도 눈길을 끌었다.
테니스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비인기 종목이지만 테니스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매력적인 스포츠이기도 하다. 나 역시 학생 때 테니스에 푹 빠져서 수업을 마치고 자주 테니스 라켓을 들고 다녔는데, 돌이켜 보면 테니스를 즐기기는 했지만, 테니스 동아리 연습이 있는 주말이면 더운 날씨, 뜨거운 태양, 과제, 시험 등 다양한 자기 합리화를 들어 연습을 미뤘었다. 대회를 할 때마다 다음번에는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성적을 내리라 다짐했지만 다음 번 대회에도 마찬가지 다짐을 하고 있다.
비단, 테니스의 경우 뿐만 아니라 영어공부도 마찬가지다. ‘이번 방학에는 꼭 영어회화를 마스터 해야지…’라고 하면서 막상 방학이 되면 TV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의미한 시간에 빠져 있다. 전공의가 되어서도 세미나 계획은 오래 전부터 나와 있지만 정작 발표 자료는 전날 밤을 새워 준비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러한 경험은 셀 수 없이 많다. 하나 하나 돌이켜 생각하다보니 인생이 ‘미룸’의 연속인 것 같이 느껴진다. 게을러도 너~무 게으른 ‘미룸’형 인간인 것이다.
‘미루는 습관, 지금 바꾸지 않으면 평생 똑같다’라는 글에서 이런 ‘미룸’의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완벽주의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일에 지나칠 정도로 높은 기대를 갖고 작은 실수에도 심하게 자책하는 사람은 실패 가능성이 높은 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외면하면서 잠시나마 긴장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일을 미루는 사람들은 말 속에 자신은 희생자라는 생각, 부담감, 권위에 대한 거부감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며 고집과 반항의 표시로 일을 미루기도 한다. 이런 자기 보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강요되어진 일이라는 느낌에서 벗어나 내가 선택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일을 끝내는 데 집중하지 말고 언제,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하느냐에 집중하고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작은 부분부터 시작한다. 완벽하게 일을 해내기 위해 더 많은 준비에 매달리기보다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불안과 걱정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일을 쉽게 시작할 수 없다. 번번히 시작할 기회를 놓치게 되고 이에 따라 실수에 대한 걱정만 쌓여가게 된다. 쉽게 시작함과 동시에 먼 미래에 일어날 보상보다는 잠깐의 휴식, 친구와의 만남 등 당장 일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보상을 함께 준비한다. 정리하자면, 시작에 집중하고, 작은 것부터 시작하며, 계속 멈추지 않고, 조금 더 빨리 시작할 걸 후회하지 말고, 정해진 일을 마칠 때마다 자신에게 보상을 하는 것이다.
보철과 전공의로서 이 시간 이후 feel(?) 받아서 다시 테니스 라켓을 잡을 수는 없지만, 내가 선택한 수련인 만큼 공부와 진료의 많은 부분에서 이제 미루지 않고, 시작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여 더 이상 회피하거나 후회하는 인생을 살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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