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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진 월요시론] 내 몫을 찾아서

월요시론
오성진 <본지 집필위원>

 

내 몫을 찾아서

  

얼마 전, 이동통신회사에서 서비스개선 차원으로 신규가입자들에 대한 혜택을 늘린다는 보도가 있자, 기존 회원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있을 것이라는 언론의 추측보도가 있었다.


차별이라는 단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역차별이란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의 기억으로는 남녀평등사회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한 남자들에게 주던 특혜를 없애게 되면서, 남자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 시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차별이라는 단어는 그리 좋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어감도 좋지 않고, 듣는 것만으로도 언짢아지는 단어인데,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은 ‘차별화’라는 단어를 거리낌없이 사용하곤 한다. 이제는 귀에 익숙해져서 그런대로 의미를 받아들이면서 이해하고 있지만, 역시 차별은 차별이다.


역차별이라고 하면 차별에 대한 반대이기 때문에, 기분 좋아지는 단어가 되어야 논리에 맞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나 그 동안 없던 차별이 생겨서 불쾌하다는 단어가 역차별이기 때문에, 결코 유쾌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질서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상식일 것이다. 질서가 바뀌지 않고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바뀌지 않는데 변화가 일어날 수가 없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 사회, 아니 세상의 어느 곳에서도 변화는 계속 되어 왔다.


언론에서 추측보도를 한 것처럼 새로운 제도가 기존의 회원들에 대해서 역차별을 하는 것이라면, 세상은 역차별 투성이로 가득 차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2년 전쯤, 연말에 명동거리를 오랜만에 가 보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예전과는 달리 매우 썰렁했다. 많은 사람들은 오가고는 있었지만, 왠지 연말 분위기가 나질 않았다. 이어서 스키장에 가 보았는데, 그곳 역시 뭔가가 썰렁하게 느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연말의 명동거리와 겨울의 스키장은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이 가득차서 보기만해도 즐거움이 넘쳤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변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던 가운데 그 이유를 우연히 깨닫게 되었다. 음악이 사라진 것이다.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는 음악을 공공장소에서 틀 수가 없도록 법이 시행된 이후로는, 연말의 명동거리에서도, 스키장에서도 밖으로 음악을 틀어서는 안되게 된 것이다.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무전여행이라는 것이 있었다. 배낭이랄 것도 없이 옷 하나만 달랑 걸치고는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그러다가 적당한 음식점에 들어가서, “저, 무전여행 하는데 식사 될까요?” 하고 물어보면, 음식점 주인은 그리 싫어하는 기색 없이 밥 한 그릇을 차려 주는 경우가 많았다. 걸인이 구걸하는 것과는 달리, 젊은 학생들이 실험정신, 도전정신을 가지고 집을 떠나서 여행하는 것을 사회는 너그럽게 보아 주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사랑방이라는 것이 있었다. 누군가 신세를 지고자 하는 사람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베풀어주던 우리 사회의 미덕이었다. 그 시절에는 혹시 도둑이 들었다고 하더라도 인명의 피해만 없다면, 쌀 한 되 정도 훔쳐가는 것 가지고 두들겨 잡지는 않았다. 오죽 배고팠으면 그럴까 하는 인식이 있었다.


예전에 남도의 어떤 부자의 일화가 있다. 밤에 도둑이 들었는데, 부자의 아들이 그 도둑을 잡았다. 그러자 부자는 그 아들에게 호통을 치며 놓아 주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의 인심은 그랬다.


얼마 전에 개인적으로 전문적인 의학정보가 필요하여 모 학회에 잡지의 정기적인 구독을 문의하였는데, 학회에서는 회원이 아니면 구독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참 씁쓸하였다. 의학도서관에 가면 그 잡지를 구독하지 못할 것도 없고, 인터넷에는 그보다 더 좋은 정보들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데, 그토록 폐쇄적으로 하는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학회지를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하는 것이 학회의 명예를 선양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고, 나아가서는 다른 시각에서 학문을 발전시키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부를 쌓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든 각자의 고유권한이고, 사용한 후의 결과에 대해서는 각자가 상응하는 책임을 지면 된다. 이것이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의 통념이다.


만일, 자신의 조그만 생각이 사회를 바꾸는데 기여할 수 있고, 그것이 조그만 나눔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부를 쌓지 않더라도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지혜가 되지 않을까.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같이 즐길 수 없는 사람보다는, 빈 손으로 사시다 간 한경직목사님처럼 평생을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세상을 살다가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한 삶이 아닐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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