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보스톤마라톤 참가기
2년 반 전 43세의 나이에 저의 마라톤은 시작되었습니다. 아내가 자신이 출전하는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10km 코스에 함께 신청해 놓고 심심하니 함께 뛰어 달라고 졸랐습니다. 이때 참가한 10km 코스는 저에게 마라톤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도전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바로 1년 후인 2001. 10. 21.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이 저의 첫 번째 마라톤 풀코스의 도전이었습니다. 1년 동안 원주 종합경기장에서 일과 후 나름대로 준비하여 참가하였으나 무척이나 힘들게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춘천댐을 지나 35km 지점부터 에너지가 소진되어 결승지점에서는 얼굴이 하얀 백지장이 되어 시체처럼 들어왔습니다. 결승선에서 만난 아내는 두려움을 억지로 참으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의자에서도 메스꺼움과 현기증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춘천마라톤대회에서 기적적으로 3시간 22분 05초의 기록을 내면서 보스톤마라톤 참가자격을 따내었습니다. 보스톤마라톤 대회는 연령별, 성별 참가자격 기록을 정해 놓고 공식국제대회에서 이 보다 빠른 기록을 보유한 자에게만 대회참가자격을 주기 때문에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있고 권위가 있는 대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2002. 4. 15. 106회 보스톤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이틀 전 토오쿄와 시카고를 거쳐 보스톤으로 향하였습니다. 이미 시카고공항에서 보스톤마라톤의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마라톤용 운동화, 얼굴과 상체는 말랐지만 튼튼한 다리에 날씬한 몸매, 햇빛에 그을린 얼굴들이 공항대기실에서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동양인이 보스톤마라톤 참가자처럼 보이는 것이 의외인 듯 옆에 앉은 미국인이 말을 걸어왔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서 보스톤마라톤은 매년 4월 3번째 월요일에 치르며, 그날은 미국독립전쟁의 불씨가 된 영국군과의 Lexington전투를 기념하는 애국기념일(Patriots" Day)로 Massachusetts주에서만 공휴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행기내와 공항대기실에서 약 24시간을 보낸 후 마침내 보스톤근교에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몸을 풀기 위해 집 근처 호수를 1시간 달렸습니다. 대회당일 새벽 일찍 잠이 깨어 창 밖을 보니 비가 뿌리고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니 빗줄기가 가늘어 졌습니다. 출발장소로 가는 도중에 간간이 가는 빗줄기가 창가에 부딪혔습니다. 도착해서 하늘을 보니 날씨는 하늘이 내려주신 선물이었습니다. 비는 그쳤고, 구름이 햇볕을 가렸고, 기온은 찹찹하였습니다. 출발지점 옆에 있는 한인교회에는 이봉주 선수를 비롯하여 각 국가에서 온 초청선수들이 대기하면서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한인교회는 경찰요원들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소개받은 한인교회의 한 장로님 덕분에 교회 안 구석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출발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출발장소는 약 16,000명의 참가자로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참가번호는 참가자 각자가 가진 기록대로 순위를 매겨 정해진 것이었고, 그 배번 순서에 따라 참가자들은 줄을 섰습니다. 배번 위치보다 앞에 서려고 하는 사람을 테러범 색출하듯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골라내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최병호 /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구강악안면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