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막연히 꿈을 꿨던 에베레스트 base camp 등반이 나의 버킷리스트 상단에 올라왔으나 그것을 실현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2009년 일본 북알프스에 다녀와서도 그냥 꿈이었었는데 2013년 2월 안나푸르나 base camp 트레킹의 추억과 그 때의 뿌듯함을 기억하며 내친 김에 다시 한번 더 높고 힘들다는 에베레스트 칼라파타르에 도전하기로 결정하였다.
드디어 2014년 1월 에베레스트 base camp(5364m)와 칼라파타르(5540m) 등정을 결심하니 나날의 생활이 그곳을 오르기 위한 준비였다.
그 나이에 구태어 그리 힘든 곳을 가니? 하는 주위 사람들의 염려를 뒤로 하고 에베레스트 base camp 칼라파타르 트레킹을 떠났다.
에베레스트는 티벳에서는 초오랑마(세상의 어머니), 네팔말로는 사가르마타라 부른다.
이번 등반은 15일 일정으로 8일 등산, 3일 하산으로 총 112km의 여정이다.
인천공항에서 6시간 카투만두로 비행 후 타멜거리를 구경하고 다음날 첫 비행기로 25분을 날아 백두산 높이의 루크라(2840m) 공항에 내린 것으로 산행은 시작되었다.
루크라에서부터 4시간을 걸어 팍딩(2610m) 로지에 들어 첫 밤을 지냈다.
다음날 몬조(2835m)에서 점심 후 조르살레에 있는 사마르가타 국립공원 경내로 들어 입산 신고를 하고 오르막을 오르는데 왼쪽에는 꽁데(6086m), 오른쪽에는 탐사루크(6808m)의 거대한 설산이 우리를 인도하였다. 그 후 급경사의 오르막 산길이 4시간 정도 이어져 두드 코시 강을 따라 꾸준히 고도를 높여 나갔다.
남체로 연결되는 마지막 급경사길을 힘겹게 올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장이 선다는 남체 바자르(3440m)에 도착하였을 땐 약간의 두통이 있다가 곧 사라져 버렸다.
이번 산행에서 고소 적응이 제일 중요한데 그 해결책은 첫째, 천천히 걸어야 하고 둘째, 하루 600m를 오르면 고도에 적응하기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하며 셋째, 가능하면 낮은 고도로 이동하여 자야 하고 넷째, 고소증의 증상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등이다.
남체에서 하루 휴식하면서 고소 적응을 위해 수목 한계선에 위치한 파노라마 에베레스트 view point(3800m)에 오르니 저멀리 파란 하늘 아래 낯익은 봉우리들이 도열해 있었다. 에베레스트뿐만 아니라 로체(8501m)와 눕체(7864m)같은 높고 웅장한 봉우리들과 타보체(6495m), 촐라체(6335m), 캉데카(6783m), 쿰부히라(5765m)가 우리 시야에 들어왔고, 그 오른쪽에 세계3대 미봉 중의 하나인 아마다블람(6856m)도 보였다.
여기까지 와서 하산하는 것이 에베레스트 8일 코스란다.
다시 하산하여 남체에서 숙면을 취하니 고소증은 커녕 정신이 말짱하였다.
다음날 아마다블람이 코 앞에 보이는 캉주마를 거쳐 계곡을 한참 내려 풍기텡가 마을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은 후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었고, 지그재그 산길을 따라 무거운 다리를 옮겨야 했다. 건조한 날씨 탓에 길에는 엄청난 먼지가 앞을 가렸으나 먼지 속에서도 고도 600m를 올라 텡보체(Tengboche)에 도착했다.
능선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마을 텡보체에는 규모가 큰 티벳 라마 사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곳에서 저멀리 에베레스트와 눕체, 로체를 바라보니 힘이 불끈 솟았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디보체(3820m)에 도착하여 숙박을 하였다.
밤에는 제법 추워져 lodge에서 야크 똥을 태우는 난로 주변에 모여 앉아 추위를 달랬다.
이 야크 똥도 한 푸대에 1000루피(약 1만원)의 돈을 주고 사야만 했다.
이제 출발한지 6일째. 디보체를 출발하여 윗 팡보체(3930m)에 있는 엄홍길 학교에서 잠시 쉬었다가 소마레(4100m)에서 점심을 먹고 내 생애 최고의 높이에 위치한 딩보체(4410m)에서 일박을 하였는데 약간의 두통만 있을 뿐 고소 증세는 보이지 않아 컨디션은 좋은 편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모든 일정이 나의 신기록 이였다.
3000m대에서 4000m대로 진입하였으니 또다시 고소 적응을 해야 했다. 오른쪽으로 가면 추궁으로 가면서 임자체가 보이는데 4800m정도라 모두의 찬성으로 600m가 더 높은 나갈줌 peak(5080m)으로 향했다. 빤히 보이는 봉우리가 어찌나 힘이 드는지… 멀리서 보이던 아마다블람이 바로 코 앞에 있고 왼만한 산이 눈 높이에 있어 우리의 고도를 실감하였다.
여기에 오르니 말로만 듣던 로체, 로체사르, 임자체(6189m), 마카루(8463m), 아마다블람, 캉주마, 탐사루크, 꽁데의 설산들이 파노라마를 이루고 반대편은 타부체(6367m)와 촐라체(6335m), 촐라패스, 로부체(6119m) 등이 우리를 압도하고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5000m대 산에 올라 말로만 듣던 설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니 온몸의 세포가 일어나 두려움겸 환희의 물결에 휩싸였다.
등산 8일.
딩보체를 출발한 후 계곡 안쪽을 돌아 타부체, 촐라체, 촐라패스를 바라보며 습지를 돌아 세 시간을 꾸준히 오른 다음에 투크라(Thukla, 4620m)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마지막 신발끈을 묶고 미지의 설산 안쪽으로 오르는 너덜길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투크라에서 세르파 무덤에 이르는 오르막에서 대부분 녹초가 되었다.
박영석 대장이 먼저 간 대원들을 위해 만든 추모비에서 잠시 쉬고 발길을 재촉하였다. 추위속에 수많은 너덜지대를 지나면서 고도가 높아지니 다리가 풀리고 때론 탈진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쿰부 빙하 하단에 해당하는 모레인 지역을 지나게 되었는데 빙하 표면이 돌과 모래로 덮여 있어 빙하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로부체(4910m)로지에 들었다. 밤새 얼마나 추웠던지 침낭을 제외하고는 실내에 있는 물 티슈며 로션 등이 얼었고 놀랍게도 콧수염을 기른 동료의 수염에 호흡으로 인한 고드름이 달려 있었다.
아침에 보니 로지 앞으로 메라 피크(5820m)가 자리잡고 있었고, 그 왼쪽엔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눕체가 버티고 있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직 에베레스트와 로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로부체를 8시에 출발하였다.
쿰부 빙하를 따라 150m의 언덕을 넘어 창리빙하를 건너면 고락셉인데…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지면서 가도가도 끝이 없어 보였다. 빙하라 말하지 않았으면 모를 정도로 더럽고 흙으로 덮힌 빙하를 보다 눈을 돌아 하늘을 보니 눈 앞에 버티고 선 설산들도 꽤나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고도를 5000m로 올라서면서 걷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고, 머리가 띵해지며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천천히 걷고 심호흡을 하는 방식으로 고소 증세를 견뎌야 했다.
오전 10시30분에 드디어 마지막 숙소인 고랍셉(5170m)에 도착하니 날씨가 화창하여 점심을 간단히 하고 11시30분에 목표인 칼라파타르(5550m)를 오르기로 하였다.
칼라파타르는 검은 자갈이라는 말로 황량하게도 흙과 검은 돌로만 만들어진 자그마한(?) 산으로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선 정작 에베레스트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에베레스트를 보려면 필히 이곳을 가야하는 곳이었다.
고도를 높일수록 설산 뒤에 숨은 검은 암봉 에베레스트가 자태를 드러냈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봉우리를 이렇게 지척에서 보는 순간의 감격이라니….
작은 칼라파타를 지나니 고대하던 에베레스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더 올라 큰 칼라파타르까지 너덜지대를 오르니 풀모리(7165m)와 쿰부체(6634m) 에베레스트(8848m), 로라(6026m), 눕체 등이 우리 눈 앞에 펼쳐졌다.
서울을 떠난지 10일.
이곳을 오르기 위해 수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감격도 잠시.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고 바람도 거세져 하산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기진맥진한채 4시간만에 녹초가 되어 고랍셉으로 돌아왔다.
어찌나 바람이 쎈지 네팔의 가이드도 녹초가 되었고 모두들 지쳐 내일 에베레스트 base camp는 못 가겠다고 하였다.에베레스트는 정작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선 볼 수가 없어서 방금 칼라파타르 정상에서 에베레스트 peak와 에베레스트 base camp를 내려다 보았으니 그것으로 대치하잖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런 결정을 했을까.
여기서 보이는 base camp는 old이고 new base camp가 새로 생겼다는데… 아쉽지만 고랍셉에서 왕복 5시간 걸리는 base camp까지 나혼자 간다고 할 수도 없어서 흔쾌히 동의하고 마지막 밤을 고랍셉에서 지내고 하산하기로 하였다.
만감이 교차한다.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은 뿌듯함과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해결한 희열과 함께 달리 더욱 겸손해져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왠 일일까?
이제 페리체로 본격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8일에 걸쳐 오른 산을 3일만에 하산해야 했다.
하산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평화스러운 페리체길을 거쳐 8시간을 걸어 팽보체에서 일박을 하였다. 오늘이 지나면 에베레스트도, 로체도, 그리고 아마다블람도 보기가 쉽지 않을 터. 야크 똥도 친근감을 더한다.
다음날 풍기뎅가를 거쳐 에베레스트, 로체, 눕체, 아마다블람이 마지막으로 보이는 캉주마를 거쳐 2만5천보를 걸어 고향같은 남체에서 1박을 하였다.
느긋한 마음으로 네팔의 민속주인 똥바를 마시면서 지나온 여정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웠다.
긴장이 풀렸는지 남체에서 몬조, 팍팅을 거쳐 루크라에 이르는 마지막 2만5천보는 힘들게 걸어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트레킹은 끝이 났다.
힘이 들 때 왜 여기에 왔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네팔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순수함을 듬뿍 느끼고 눈과 마음속에 깊게 품을 수 있어 더없이 즐겁고 행복한 산행이었다.
거대한 자연의 위력과 경관을 온몸으로 체험한 것은 인생의 또다른 이정표가 될 것 같다.
이종만
이종만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