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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수필(867)>
시민R(上)
이상은 / 이상은 치과의원원장

나의 일생의 많은 시간이 역할 준비의 시간 바보단 세계를 위해 사는게 내운명
나는 시민 R 이다. 그것도 아주 선량하고 모범적인 시민이고 이 세계엔 없어서는 안됐었다. 내가 이런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나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죽을 때가 가깝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 있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난 운반 일을 했다. O2를 받아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곤 했는데 항상 다른 셀을 만났다. 젊은 셀, 늙은 셀. 어떻게 아느냐하면 내가 O2를 건네줄 때 빨려 들어가듯 쉽게 받아들이면 그게 젊다는 증거다. 그들은 O2가 많이 필요해서 우리 친구들은 몰려다녔었다. 친구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우리는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생겨났고 우리가 태어난 곳은 지금처럼 자유로운 곳이 아니었다. 폐쇄된 공간 그리고 기름 냄새 풍기는 일종의 공장이었다. 우리들은 거기서 일생동안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되고 또 몸매를 가꿔야했다. 내 속에 있는 아집과 탐욕들이 점점 제거되었다. 급기야는 자아를 버리고 오직 이 세계를 위해서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을 해낼 수 있게 우리는 철저히 바뀌어진 거다. 강물의 급류와 완만한 물결에 순응하도록 몸매도 고쳐졌다. 난 처음 변화된 내 모습에 흠칫 놀라곤 했다. 아집과 개성이 홀랑 빠져버리고 달걀 귀신같은 모습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박제를 만들듯이 내 몸 속에는 어떤 물질이 꽉 들어차 버렸는데 임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나중엔 그걸 어떻게 쓰는 건지 알았지만 처음에는 몰랐다. 나의 일생의 많은 시간이 준비를 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준비의 시간이 끝났을 때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나의 할 일을 본능적으로 알게되었다. 나보단 세계만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게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니 어딘지 모르게 서글픔이 있었다. 그래도 하나 위안이 되는 건 나와 똑같은 일을 하는 내 친구들이 있다는 거다. 내가 만들어진 곳에서 처음 강물로 나왔을 때 환희는 잊을 수 없다. 답답하고 움직일 수 없는 공간, 혹독한 단련의 시간을 넘어서 난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 아름다운 강이었다. 다정다감하고 따뜻했다. 게다가 울려 퍼지고 있는 그 경이롭고 웅장한 음악은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아름다운 강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흘러갔다. 그 힘은 경이로운 음악에 맞춰 폭발적으로 강물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훈련된 몸동작으로 강물에 몸을 맡기고선 임무수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강에서 시내로 결국은 아주 좁은 선착장 같은 곳에 이르러 우리는 첫 경험을 했다. 이 세계에서 볼 수 없었던 천상의 아름다움을 지닌 O2 여러 개가 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우린 서로의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고 웃었다. 참으로 경이로웠다. 내 일이란 이런 거였구나! 우리들의 몸은 환희로 붉어졌는데, 그녀의 모습도 참 보기 좋았다. 우린 이 세계에서 가선 안될 금지된 장소가 있다는 걸 단련기간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저편에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아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우리가 젊었을 때 동경했던 외계를 잠시나마 본적이 있었는 데, 우리 동료중 하나가 밖으로 나갔으나 더 이상 살 수 가 없었다. 이 아름다운 세계에서 보호받지 못한 그는 싸늘한 외계에서 말라죽어 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다가온 복구반은 외계로 뚫린 구멍을 차단했다. 엄청난 속도로, 눈 깜작할 사이에 외계로 향한 문은 차단되었다. 우리는 외계를 동경했었다. 멋진 신세계 이렇게 어둡지 않은 세계 더 자유롭고 되고 싶은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세계라고, 그러나 현실은 아니었다. 그 틈 사이로 아름다운 빛을 언뜻 보았지만 그 곳은 춥고 우리가 살 수 없는 곳이었다. 그곳은 신의 세계이자 우리와는 맞지 않는 세계였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