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는 김정돈으로 금사(錦史)로 서예에도 능하셨고 인천 경동에서 금성상회를 하셔서 대성하셔서 아버지, 막내 고모님 등을 데려다가 서울로 공부를 시켰다.
그리고 집이 내동에 있었는데 아담한 양옥으로 2층에 서실이 있었는데 책으로 가득 했었다.
큰 형님 재경, 둘째 세경 형님이 계셨었는데 6·25 전쟁 중 행방불명이 되셨다. 셋째 우경은 나와 같은 나이로 서산 중학교를 함께 다녔고, 경복고등학교, 중앙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일보에 오래 근무했었다.
막내 기경은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지키며 고향에서 살았다. 복경 큰누님은 옛 이원사 김명엽사장의 부인으로서 여원사 운영에 큰 힘을 기울이고 계셨었다. 진명학교 출신으로 늘 활발하여 사회할동을 하셨었다. 둘째 숙경 누님은 소프라노였는데 유명한 무용가의 부인이시었다. 내가 고등학교 대학다닐 때 사촌들과 그 누님댁에 있기도 했고 어려운 때는 늘 가서 신세를 많이 졌었다.
조카 귀남이도 음악을 공부했고 소희 사촌도 그곳에 있었고 막내 순완누이도 같이들 있어서 늘 행복했었다. 둘째 누님댁은 사간동이였고, 그후 대조동에 살았는데 그 누님은 늘 깨끗하시고 우아하셨다.
과일도 배와 포도 등 아주 좋은 것으로만 사오시고는 했었다.
막내 순완누이는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숙대 국문과를 다녔다.
늘 청파 언덕 쪽에서 많이 보았고, 젊은날의 추억과 사랑이 늘 그 주변에 있었다.
언제나 순수하고 생활에 강했었는데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셋째 순경누님, 수도사범대학을 나오시고 교사를 오래하셨다.
6·25전에 인천에서 결혼하여 아들하나, 딸하나를 잘 기르시고 여전히 교육계에 계셨었다. 그 매부는 6·25때 행방불명이 되셔서 늘 외로운 삶을 사시는 듯 보였다. 딸이 간호원으로 캐나다에 있고 아들은 학교선생을 한다고 들었다. 참으로 좋으신 누님들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