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병원을 안가겠다고 하시는데 아무래도 치료비용 때문인 것 같아서, 본인이 치료비는 부담할 테니 엄마에게는 무료로 치료해주는 거라고 말해달라고….
병원에 내원하시는 환자의 연령대가 높다보니, 비용을 본인이 내지 않고 자식들이 부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대해서 환자와 보호자는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신다.
당연하다는 듯이 더 좋은 걸로 해주기를 바라는 환자들도 있고,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을 함께 가지는 이들도 계시고, 힘들게 사는 자식들에게 의지하기 어려워 치료 자체를 힘들어하시는 환자들도 계신다.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치료를 해달라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그 비용에 대해 힘겨워하는 자녀들도 있다. 개개인이 가진 상황과 사정이 모두 다르니 쉽게 판단하기도 힘들어서 아주 가끔은 가족 간의 말다툼이 벌어지는 것도 그저 보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보호자가 이런 요구를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던 터라 약간의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환자와의 약속시간, 마침 기다리는 환자가 많지 않아서 시간이 있기도 했고 처음 치료를 시작하면서 치료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 환자분과 만들어가야 할 신뢰감도 필요했기에 차분하게 말동무가 되어드리니, 기다렸다는 듯이 투정이 섞인 느낌으로 치과적인 문제나 불편함보다는 함께 살고 있는 딸에 대한 불만과 본인에게 잘해주는 조카이야기, 조카 손주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일찍 혼자가 되고 정신적인 문제도 가지고 있는 엄마를 어린 나이에 결혼한 딸이 모시고 살고 있는 형편이다. 보호자와의 통화 느낌으로 보자면 그래도 엄마에 대한 걱정과 최대한 치료를 해서 식사하시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드리고 싶은 맘이 가득한 딸이었건만, 함께 살며 그만큼 잔소리도 많이 하고 엄마의 미운 점, 고운 점 찾아내서 싸우게 되는 딸보다는 약간 멀리서 챙겨주고 관심을 보여주는 조카들이 더 예쁘고 맘에 다가왔을 걸 생각하면 어쩐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적당한 맞장구로 딸 흉도 봐드리고, 그러면서도 엄마와 딸은 원래 싸우는 거라며 그래도 착하고 예쁜 딸이라고 칭찬도 많이 해드리니 싫지 않은 표정으로 치료진행에 동의하신다. 물론 치료비가 없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대기실에서 진료예약을 잡으면서 내 칭찬도 많이 하고 만족스럽게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항상 투닥투닥 거리면서도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애쓰시는 엄마의 모습이 생각났다. 다가올 어느 날인가는 엄마와 나의 관계도 역전되고 내가 엄마를 더 챙겨드리게 되었을 때, 오늘 환자분처럼 큰딸에 대한 불만을 말하면서 밉다고 말하는데 다른 이들은 그 내용을 들으면서 웃을 수 밖에 없는 그런 모습을 가지시게 될 날이 오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이른 상상까지도 해보게 된다. 역시 웃기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괜히 맘이 싸해지기도 한다.
의치는 완성되었고, 다행히 빨리 적응을 하신건지 별다른 연락 없이 정기검진 날을 기다리고 있다. 다음 번에 오시면 치료비가 무료라는 건 거짓말이었고 따님이 어머님 생각해서 비용 내신 거라고 이실직고를 해야겠다. 이것 때문에 또 따님과 싸우게 되시는 건 설마… 아니겠지…?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황지영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 진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