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창문 너머로 멀리 남산이 있었다.
수업 중에 잠깐 딴생각과 함께 바라보기도 하고, 원하지 않던 자율학습을 하며 시선을 창문으로 향할 때도 있었다.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면 가끔 케이블카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장면을 볼 수도 있었는데 그럼 뭔가 괜히 운이 좋다고 느끼기도 했다.
용산의 높은 지대에 위치한 학교에서 그리고 3층에 위치한 3학년 교실에서 남산을 바라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창가에 자리 잡고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창밖 풍경의 제일 먼 곳에 남산이 있었으니까. 지금처럼 남산가는 길에 우뚝 솟은 주상복합 건물도 없었고, 뿌옇게 서울 하늘을 흐려놓는 황사도 매연도 적었던 그 때.
눈이 머리가 맘이 지칠 때…고개를 돌려 아주 멀어 보이는 남산과 그 배경이 되는 하늘을 바라보면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늦은 자율학습시간 서울타워에 불이 켜지고… 남산에 오렌지 빛 불들이 하나 둘씩 반짝일 시간까지 같은 창으로 남산을 볼 수 있었다.
평일이나 주말 가끔 필요한 책을 위해 남산 도서관을 찾기도 했다.
오래된 책들로 가득 찬 도서관에서 책 냄새와 조용한 침묵 속에서 책을 찾고 또 빌리기도 해서 가방 무겁게 내려오는 길에 내려다보이던 서울 시내의 모습은 뭔가 묘한 느낌을 주었다. 항상 작은 집에서, 학교에서 작은 책상을 마주하며 좁은 반경에서 살아가던 지친 학생에게 그 곳은 낯선 곳이었고 또 너무 커서 내 자신을 더 작게 느끼게 만들면서도 또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곳이었다.
그래서 그 너머 해가 지는 모습에 한참동안 노을을 보고 서있었던 것 같다. 1분 1초가 아깝다고 세뇌 당했던 고등학생이었지만, 한동안 무언가 다른 남산의 공기로 심호흡을 하며 석양과 물들어가는 시내를 계속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시간을 함께한 남산은 졸업과 함께 멀어지고 말았다. 학교 창을 통해 남산의 모습을 보는 일도 없어지고, 도서관도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그러다 늦은 결혼과 함께 남산을 다시 만났다.
27층의 아파트 복도에 서면 저기 가까이에 남산이 보인다. 그날 그날의 서울에 맞추어, 어느 날은 선명한 녹색으로, 또 어느 날은 안개 속에 어스름하게, 비속에 파묻히는 날도 있고, 늦은 퇴근 날이면 서울타워의 화려한 반짝임으로 덮히기도 한다. 가끔 직장일로 집안일로 또 다른 무언가의 일로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면 아파트 복도에 나와 심호흡을 들이킨다. 그 때보다 난 더 어른이 되었지만 세상은 더 커진 것만 같고 그 속에서의 나는 더 작아졌다.
그래도 20년이란 시간을 훌쩍 넘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은 참 괜찮은 일이다. 너무 빨리 변해가는 서울에서 이제 내가 오랜 시간 살았던 집도, 다니던 학교건물, 작은 가게들 그 어느 것도 남아있지 않기에… 변하지 않는 공간과 장소가 있다는 것은 은근히 위로가 된다. 그런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너무 소박한 맘일 수 밖에 없는 나에게는.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황지영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 진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