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립(而立). 30세가 되어서 학문의 기초가 확립되고 마음이 도덕 위에서 움직이지 않을 만큼 확고하다는 뜻이다. 치의학전문대학원으로 입학하여 어느덧 서른이 되면서 마음을 굳건히 하기위해 요즘 나의 행복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그리고 행복을 찾아 고민하면 늘 함께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꿈’. 치의학도로서의 길을 걷게 된 나에게 꿈은 무엇이며 이 꿈은 내 행복에 얼마나 기여해 줄 수 있을까.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는 TV속 오디션 프로그램들. 너도나도 연령에 상관없이 꿈을 좇는 사람들의 땀과 진심을 담아내며 보는 이에게 감동도 선사한다. 처음 프로그램을 접하였을 때는 어린 친구들이 기특해 보이기도 하고 응원하며 보았지만, 언제부턴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함이 생겼다. 이 아이들은 어떤 계기로 저렇게 뚜렷한 꿈을 갖게 되었고, 어떤 결심이 저들을 이렇게 끓어오르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렇다. 무엇하나 명확하게 이것을 해야겠다하거나, 미친 듯이 이 한 가지에 몰두해보아야겠다는 욕구가 부족한 채 그저 학생신분으로서 할 수 있는 학업성적에 몰두하여 지내왔다. 그나마 나는 행운아였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왔기
저는 신원덴탈㈜ 영업2팀 김종화 팀장입니다. 2015년 12월 21일 새벽 6시반에 화장실에서 갑자기 심한 두통과 어지럼증 구토증세와 식은땀이 났습니다. 큰 병일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을 못하고 두통약과 와이프의 간호를 받으며 참다가 오후 동네 종합병원에 가서 MRI 촬영 후 뇌출혈 2곳이라는 판명을 받고, 전문병원인 명지성모병원 뇌혈관 전문병원으로 옮겨서 15시간 수술과 20여일간의 병실생활 후 2016년 1월 18일부터 다시 직장에 출근했습니다. 수술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후유증 없이 회복은 빠르게 좋아졌습니다. 전교통동맥 동맥류 파열에 의한 거미막밑 출혈 및 뇌실내 출혈이었으며, 한국표준질병 분류번호는 I60.2였습니다. 몇 명에게만 연락을 했는데, 많은 분들이 병문안 와주셔서 감사했으며 항상 다시 태어났다는 마음으로 생활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수술후 휴유증으로는 성대결절로 한달동안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객들이 주문할 때면 답답해 했습니다. 저는 문자로 주문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며, 친한 거래처는 매우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병실생활하면서 느낀 건 현재도 많은걸 가지고 있고 행복한데, 그것을 모르고 많은 욕심을 부리며 살았다고 생각했
지금 내 나이 사십대 중반이 되었다. 시골에서 부유하지 않은 오형제의 막내로 태어나 북적거리는 형제들 사이에서 여타 아이들처럼 자랐을 것이라 생각된다. 유년시절의 극소심한 성격에서 청소년기를 지나 활달하고 개방적인 성격으로 변화도 타인이 아닌 자신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었고 삶의 대부분이 스스로의 생각과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물론 부모님과 형제들의 울타리 안에서 보고 배우면서 자랐겠지만 흔한 “공부 좀 해라” 라는 말씀 한번 들은 적 없이 자랐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자존심, 자존감, 자신감 등 자아와 관계된 단어들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남을 의식하지 않는 편이어서, 솔직하고 직설적 화법은 친구들이나 선후배로부터 ‘독특한 친구’란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운 좋게도, 독특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필자가 지금까지의 인생의 곡선을 되짚어보면 완만한 우상향 곡선을 그린듯하다. 물론, 몇번의 힘든 경우도 있었지만 결과론적으로 잘 헤쳐 나왔으니 말이다. 요즘 세대들 말로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개원 초기, 허접한 낡은 치과의원에서 실력없어 보이던, 자기주장 강하고 직설적 화법, 자부심 강한 치과의사는 환자와 트러블
“잠시 조사 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해가 서쪽으로 한참 기운 어느 여름날 오후였다. 경찰차가 집 앞에 갑자기 멈춰 서더니 남녀 경찰 두 명이 성큼 앞정원으로 들어선다. 여자는 갓 스무 살이 넘었을까 말까한 아주 앳된 소녀티가 물씬 풍기고, 남자는 40대의 몸집이 거대하고 씩씩한 생김새의 경찰이다. 푸르름이 절정을 이룬 초여름 잔디밭 위에 잘 다려 입은 카키색 제복과 붉게 물든 석양빛에 번뜩이는 은색 계급장이 사뭇 위압감을 풍겨 온다. “무슨 일이십니까?” 주민의 요청도 없이 경찰이 출동하였다는 것은 처음 당해 보는 일이라 말소리에 바짝 긴장이 느껴진다. 이곳 영국에서는 고사하고 한국에서도 접해 보지 못하던 일이다. 더욱이 내가 살던 런던 근교 ‘스테인스’라는 동네는 템즈강 상류 쪽에 위치한 조용하기 그지 없는 마을이라 일년 내내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곳이다.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강위에는 하루 종일 형형색색의 보트들이 유람을 하고 군데군데 젊은 청춘들이 카약위의 노를 젓는 곳. 그 사이사이를 몸집이 꽤 큰 백조들과 새끼들이 함께 떼를 지어 어디론가 유유히 헤엄쳐 가기도하는 그런 평화스런 곳이다. 집 앞쪽으로는 커다란 잔디밭이 딸린 앞 정원
사실 나는 케이크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제일 좋아한다. 그래서 앙금설기 떡케이크 아이템을 제안 받았을 때 글쎄 별로…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미루다 문득 생각나 블로그를 뒤져 앙금설기 떡 케이크를 찾아보니 전에 알던 떡 케이크와 다른 파스텔톤의 꽃장식이 너무 이쁜,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케이크이었다. 이걸 직접 만든다고? 하룻저녁에 할 수 있을까?… 흠…원데이 클래스도 있네. 그래 한번 만들어 보는거야 우리도 눈의 호사를 한번 누려 보는 거야. 마침 어린이날 어버이날도 다가오고! 의미도 있네 있어! 만들며 수다도 떨고 얼마나 재밌을 거야. 그렇게 시작된 앙금설기 떡케이크 만들기. 1부는 설기떡 만들기로 쌀가루, 물, 설탕, 소금 배합비율과 부드럽고 촉촉하게 찌는 방법을 강의 및 시연으로 보여주고 2부는 백앙금과 식용색소를 섞은 생크림(앙금으로 만들면 팔이 아파 다음날 진료에 지장을 줄수 있으므로 좀 더 부드럽게 만든)으로 설기 떡 위에 올릴 꽃을 만들기 위해 동영상과 그룹 및 개인지도가 세분의 강사님과 함께 진행됐다. 역시 치과의사들은 손재주가 있다. 라넌큘러스와 카네이션 두 가지 꽃을 만들어 설기 떡 위에 올리고 빈자리에 푸른 색 잎을 짜넣고 가장자리
1998년에 개봉한 영화 ‘트루먼쇼’를 처음 시청하고 난 뒤 긴 여운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초등학생이였던 필자가 이따금씩 공상하곤 했던 내용이였기 때문이였을까. 영화를 본 후 며칠간은 하늘에서 갑자기 조명장치가 떨어지지는 않을지 시도때도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숨겨진 곳에 카메라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물건들과 괜한 눈싸움을 하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웃음이 나오는 순간들이지만, 그 어린나이에도 내가 볼수 없는 누군가가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생각은 역시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더 크면서 접한 조지 오웰의 ‘1984’나 ‘메트릭스’ 같은 작품들은 “나”와 내가 속한 “세상”의 관계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게 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상상 속에나 있을 법했던 영화와 소설 같은 일들이 눈앞에 펼쳐진 세상과 큰 차이가 없음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사실 인터넷과 같은 통신수단의 혁신적인 발전과 보급은 그들이 그저 통신수단만이 아닌 일상생활의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게 하였다. 그 중 Social Network Service (SNS)의 비약적인 성장은 개인의 일상이 더 이상 개인의 영역을 넘어 공공의 영역으로 공개될수 있도록 하였고, 실
이제껏 남이 차려준 밥상에 숟갈만 들고 식사를 했는데 이제 직접 음식을 조리해서 다 같이 먹으려니 조금 힘이 들었습니다. 해외봉사 이야기입니다. 모두 갖춰진 곳에서 몸만 가서 봉사할 때와 진료 장비와 약품들을 스스로 갖추고 진료를 하려니 몇 배는 더 힘이 듭니다. 세관을 통과하려니 커다란 장비에 문제를 제기하고 당연한 듯 돈을 요구합니다. 당신네 사람들을 위해 진료봉사를 왔다 해도 막무가내, 진료허가서를 보여주고 현지어에 능통한 봉사자가 강력하게 항의를 해서 겨우 통과를 하였습니다. 이제 배를 타고 3시간을 가야하고 항구에 도착하면 차로 30분을 더 가야 합니다. 비행의 피로와 배 멀미로 고생을 하고 나서야 드디어 도착입니다. 기계에 익숙하지 않는 저에겐 이동식 유니트 체어와 콤프레서를 조립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여러 봉사자가 힘을 합쳐 이제 진료 준비를 다 갖췄습니다. 첫 환자를 보는 것은 설레임입니다. 환자를 볼 수 있음에 감사의 마음을 가지며 이제 진료를 시작합니다. 제 병원에서는 사랑니 하나 발치하면 힘이 들어 휴식을 취해야만 다음 환자를 볼 수 있는데 이곳에 오면 초인적인 힘이 생겨 어려운 발치를 쉬지 않고 해댑니다. 구강외과 전문의에게 의
지난 2월 인륜지대사라 불리는 큰 행사를 치르고 여행을 다녀왔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 중 하나가 신혼여행이었는데, 진작에 ‘신혼여행은 꼭 멀리, 유럽으로 가자!’ 라고 결정하여 큰 고민은 없었다. 물론 연애기간이 길어 고급 숙박시설의 휴양지는 따분할 것 같았고, 결혼 후 출산, 육아 등에 시달리다 보면 장거리여행은 한동안 불가하다는 결혼 선배님들의 말씀도 한몫했다. 마음은 1년간 유럽 전 지역 자유여행이었지만, 현실은 8박 10일 스위스, 이탈리아 2국가였던 서유럽 맛보기를 간접적으로나마 함께 나누려 한다. 스위스에 도착한 첫 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장시간 비행으로 많이 피곤했지만 하나라도 더 보겠다는 일념하에 정말 열심히 돌아다녔다. 리마트강을 따라 취리히 구시가지부터, 루체른의 카펠교, 빈사의 사자상 등. 특히 강가를 따라 조금씩 다르게 생긴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스위스하면 있는 그대로의 자연경관이지 않을까. 다음 날 알프스 산봉우리의 하나인 쉴트호른으로 향했다.(쉴트호른은 해발 2970m의 높이로 1969년 007 여왕 폐하 대작전의 주요 촬영지로 알려져있다.) 지그재그 형태로 생긴
조금씩 조금씩은 내 좌우명이다. 말 그대로 무엇이든지 한 번에 크게 덤비지 않고 실천해 나가다 보면 나중엔 크든 작든간에 결과가 있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할 때 그 실천 가능성이 희박하다거나 턱없이 안된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면, 처음부터 그 계획을 접어 버리기 십중팔구다. 그러나 나중은 생각도 않고 무엇인가를 조금씩 실천하다 보면 조금씩이 모여 상당한 성취를 이루고 점차 그 속도가 빨라지며 목표가 가까워지고 결국은 좋은 성과를 이루게 마련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티끌모아 태산’ 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말이다. 한번에 어떻게 천리길을 갈수 있으며 어떻게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들 수 있겠느냐! 한걸음을 떼면서 그 먼 길을 다 갈수 있다고 생각 할 수도 없고, 티끌을 모아서 어느 세월에 태산이 되겠는가! 그러나 그 시작은 결국 그 목표의 절반을 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작은 반이다’라는 말이 그 말이다. 진리다. 하다보면 그 시작은 미미하지만 결국 그 성과는 장대하게 된다. 실제로 매일 아침 일어나 집 앞마당에 돌멩이를 하나씩 던져 보아라. 그 돌멩이들은 날이 갈수록 모아져서 세월이 흐르면서 돌무덤을 만들고 결국 나
지난 겨울 휴가 때, 아내와 함께 체코 프라하로 여행을 떠났다. 13시간 가량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프라하는 어두컴컴한 저녁이었다. 우선 공항에 있는 통신사에서 유심칩을 구매하고, 공항버스표를 끊어서 예약한 호텔로 출발하였다. 너무 피곤했기에 첫 날은 짐을 풀고, 바로 숙면에 취했다. 숙소에서 간단히 조식을 먹은 뒤, 여행사에서 프라하 시내를 구경시켜주는 투어를 따라다니면서 설명을 들었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시작하여 무하 박물관, 비타 성당, 까를교 등을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으니까 재미있었다. 얀 네포묵 성인의 이야기, 비타의 이야기 등을 듣고 나서 전시물을 보니까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체코도 겨울이라서 엄청 추웠었는데, 10시간 가량 가이드를 따라다니느라 힘들었지만, 여행 가이드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둘째 날은 자유여행이었다. 이번에는 둘이서만 프라하를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구시가지 광장에 다시 들렀다가 변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동상도 보고, 유대인 지구도 둘러보았다. 다리를 지나 카프카 박물관에도 가보았고, 유명하다는 음식들도 먹어보았다. 핫윙이 유명하대서 먹어봤는데, 우리나라 치킨이 더 맛있었던 것 같고, 족발 비
꺼지지 않는 조명탄, 수십 명의 치인들의 업적, 인생관, 철학을 쓴 논픽션, 그랜드 캐니언 천연 같은 대담집‘나는 사람이 좋다’를 낸 저자 이병태를, 나는 잘 안다. 내가 영어의 몸으로 있을 때, 어느 눈 오는 날 나를 찾아준 유일한 후배다. 그는 내가 국회의원 현직에 있을 때는 나에게 치근대거나 알랑거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원거리에서 자유롭도록 해주었다. 수도육군병원에서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편제가 바뀌는 시기에 군대생활을 함께 했고 서울종로구에서 지근거리를 두고 개원하기도 했다. 지금은 대한치과의사문인회(Korean Dentists Pen Club)에서 매월 마주 앉아 책과 글을 읽고 듣곤 한다. 만나면 ‘앵두’ 또는 ‘요로캐’라는 별명을 가진 그의 부인 안부도 꼭 물어본다. 이병태는 1976년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번역본이지만 ‘사서삼경’을 탐독했고 기념으로 ‘치과보철기공학’을 출간하여 치의학 전공서적 저술 및 출간에 횃불을 들었다. 1977년 1월에 월간치과연구를 창간하고 치과의사 잘 살기 운동으로 서울에 ‘치과의사신용협동조합’설립에 선봉장이 되기도 했다. ‘나는 사람이 좋다’는 전부 월간치과연구에 게재됐던 것이다. 별도로 구성된 정순경, 이한수, 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