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를 떠올리면 20년이 더 지났음에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 당시의 나는 완전한 왼손잡이였기 때문에 처음 연필을 잡고 글을 쓸 때 왼손으로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어린 나의 손등을 때리며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게 만드셨다. 그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지만 부모님은 끝내 내가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게 만드셨고, 글씨 쓰는 것을 오른손으로 바꾼 이후에 내가 왼손잡이라서 겪는 불편함은 사소한 수준이었다. 밥 먹는 것, 양치질 하는 것, 가위질 등은 왼손으로 해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고등학교 수험생활을 마치고 진학할 과를 선택할 때 나는 내가 손재주가 있고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치과대학 생활에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원서를 썼다. 다행히도 합격할 수 있었다. 신입생이 된 나는 평소에 기타를 치고 싶었기 때문에 밴드부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왼손잡이라서 해야 하는 고민과 다시 만났다. 기타라는 악기는 오른손 기타와 왼손 기타로 나뉘어 있었고, 결정을 해야 했다. 나는 많은 고민 끝에 오른손 기타로 정했다. 악기를 구하기 쉽고 종류가 훨씬 다양한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오른손으로 기타를 치면서 한계는 금방 찾아 왔고 2년간 여러 노력을
아놀드 쇤베르크, 20세기 음악의 선두주자로 무조음악의 지평을 연 작곡가이다. 새로운 그의 음악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불러일으켰으나 추종자도 있었는데, 작곡가 알반베르크와 안톤 베베른이 대표적이다. 쇤베르크는 결코 순탄한 생애를 살지 못했다. 나치 시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프러시아 예술 아카데미의 작곡과 마스터 클래스 교수직을 잃었고, 미국으로 망명한 뒤에 다시 교수직을 얻긴 했지만 그리 큰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주요작품으로 현악6중주곡 ‘정화된 밤’, 연가곡 ‘달에 홀린 피에로’, 오페라 ‘모세와 아론’ 등이 있다.쇤베르크는 숫자 ‘13’의 공포증을 갖고 있었다. 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난 탓에 주변에서 수많은 놀림을 받아 강박증을 가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는 자신이 언젠가 13일에 죽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의 모든 악보의 13페이지는 12B로 대체되었고, 지인이 오페라 ‘모세와 아론’의 제목의 알파벳 개수가 13이 된다는 말을 하자 ‘Moses und Aaron’에서 ‘Moses und Aron’으로 수정한다. 그는 76세의 나이로 13일의 금요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7+6=13을 항상 두려워해서 늘 버릇처럼 76세에 죽을 것이라 입버릇처럼
지난해 10월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 탐사를 위해 대마도를 비롯한 하얼빈 등을 여행했다. 특별히 중국에서는 안중근의사의 행적을 더듬으며 사서하는 부자 양반집 아들의 고행을 따라하게됐다. 하얼빈역은 1909년 10월 26일 조선의 원흉이자 동양평화를 파괴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코레야 우라(대한국 만세)”를 외친 곳이다. 내가 아는 것은 교과서적 내용 이것 뿐이었다.거사현장을 보려면 장춘에서 기차를 타야 하얼빈의 제일 플랫트폼에 도착할 수 있다.현장에는 바닥에 저격 장소 표시로 삼각형이, 피격자의 위치에는 4각형의 표시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방문 예정지는 대련시 형무국, 관동주법원, 여순감옥, 공동묘지, 731부대 방문 등이었지만 많은 일정 가운데 이곳 방문은 이번 여행의 핵심이었다.현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어두움이었다. 그러나 가슴은 설레이기 시작했다. 4시간의 기차여행에서 내려 긴 지하도를 지나 현장에 접근하려는 순간 중국 공안원의 강력한 제지로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로 시도를 했으나 중국 외사과의 허가 없이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최근 일본의 거센 항의로 한국인의 출입을 각별히 단속한다는 것이다. 결국 역 구내이지만 또 하나
누구나 공유하는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어렸을 적 숙제로 일기를 썼던 경험.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일기는 밀리기 마련이었다. 일기는 그 시절 가장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중학교에 올라갈 즈음 다들 일기에서 손을 놓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어렸을 적 일기를 보며 재미를 느낀 적이 있었다. 그제서야 일기를 써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일기를 써보기 시작했다. ‘언젠가 다시 읽어보면 분명 재밌을거야’란 생각으로 꾸준히 일기를 썼다. 목적이 생기고 나니 일기쓰는 것이 귀찮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일기가 조금씩 다시 밀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름 오기가 있어서 지나간 날이라도 최대한 빠트리지 않으려고 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땐 그날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나 영수증,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참고했다. 하지만 나중에 일기를 훑어보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밀린 일기는 일기다운 일기가 아니었다. 밀렸던 날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만 적혀있었고 거기에는 내 생각이나 감정이, 과장 좀 보태면 영혼이 담겨있지 않았다. 사실 밀린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컴퓨터로 일기를 쓰기
“원장님 응사 보세요?”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요즘 대세라네요. 한번 보니 빠져드는데, 같은 시기는 아니지만 옛 기억을 떠올리는 매력이 있다.IMPRESSION의 역사도 20년을 넘었는데, 응답하라 IMPRESSION!에피소드가 많지만, 그중 우도출사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15~6년 전 초겨울 고문이신 임철중 전 치협 의장님과, 장수일 회장님 등 10여 회원이 함께 우도에서 숙박하기로 하고, 소섬바라기에 여정을 풀었습니다. 지금은 번화해 졌지만 당시는 소박한 시골 풍경이었습니다.소섬바라기에서 놀다가 저녁시간이 되어 항구 쪽의 식당으로 갔는데 이미 어두워져서인지 (당시 우도의 밤은 칠흑 같았음), 일행의 차 불빛이 비춰지자 좀 전까지 켜져 있던 식당 불빛을 꺼 버리는 게 아닌가? 순간 당황되어 그중 안에서 불빛이 새 나오고 있는 식당을 찾아가니 한 팀이 식사를 하고 있어, 식사를 부탁하니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 하는 주인장과의 입씨름 중, 식사 중이었던 우도경비대장의 도움으로 간신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메뉴는 미식가이신 두 선배님께서 결정해 주셨는데, 내 생애 처음으로 다금바리를 맛보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입에서 녹는 식감과 뽀얏게 우러난 지리
11월초 미국 New Orleans에서 열린 American Dental Association(ADA)의 Annual meeting에 한국 치과대학 학생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초청받았다. Dentsply는 매년 전세계에서 치과대학 학생을 대상으로 전국 치의학 학술대회를 후원하며,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팀의 대표에게는 ADA학회에 참가하여 포스터를 발표할 수 있는 영광스런 기회가 주어진다. 우리 팀은 작년 국내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덕분에 올해 미국에서 열리는 치과학회 중 가장 큰 행사를 다녀오게 되었다. Dentsply와 ADA가 후원하는 SCADA(The Student Clinician Research Program of the ADA) program은 1959년 처음 생겼으며, 올해로 54년의 전통을 자랑할 만큼 오래된 행사이다. 우리 팀의 연구를 전 세계의 모든 치과의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각 국의 치과대학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저희는 매우 뜻 깊은, once in a life time과 같은 경험을 하고 돌아올 수 있었고 이를 간단히 소개하려 한다.ADA는 New Orleans Convention Center에서 201
“교장선생님. 겨우 1년 반만에 제 아들을 이렇게 신사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영국 런던 근교에 있는 칼디코트 초등학교 교장에게 큰 아들 졸업식 날 내가 감사 인사를 건넸다.“뭘요. ‘폴(Paul)’은 우리 학교 들어올 때 이미 신사였었는 걸요.”교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양쪽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하였다.십여년 전 어렸을 때부터 나의 큰 아들은 이렇듯 멋진 아이였다.그 아이가 커서 대학에 들어가고 방학을 맞아 한국에 돌아 왔다. 이번 월요일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고 오늘이 그러니까 토요일이니 온지 벌써 닷새째다. 하지만 도착한 날 공항에서 나에게 도착했다고 한 번 전화를 한 후 그 다음부터는 깜깜 무소식이다. 물론 바쁜 일정을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재영 한인 과학자 협회에서 추천을 받아 청년과학자 포럼에 참가 중이라는 사실을 내가 잘 안다.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가 주최하여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로 외국에 거주하는 한인 청년 과학도들에게 왕복 항공권과 숙식을 제공하고 고국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으로 4박 5일동안 예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되므로 그다지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이다. 집에도 못 들리고 공항에서 직접 코엑스 컨벤션센터로 직행할
인턴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일하게 되었던 구강내과, 그 다음으로 구강외과를 거쳐 인턴생활의 오아시스라고 하는 종합 진료실에 오게 되었다.종합 진료실에는 인턴의 자리인 안쪽 방사선촬영실에 ‘생각의 함정’, ‘닥터스 씽킹’이라는 두 권의 책이 있다. 다른 과에서 여러 인턴동기들과 함께 일하다가, 혼자서 일하게 된 이곳에서 초반 며칠간의 묵언수행을 뒤로 하고, 틈틈이 생각의 함정이라는 책을 꺼내어 읽었다. 가끔 생각이 많아질 때면 머리가 아플 정도인 나에게 생각의 함정이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온 것은 대체로 내 생각의 결과로 이루어진 선택들일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럴 때 마다 돌발적인 상황에서 감정이나 감각에 의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최대한 변수를 고려해서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 싶을 것이다.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는 하지만, 최선의 판단을 내리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이 책을 읽으며 천재라고 불리는 에디슨을 비롯해, 케네디, 호치민 등의 지도자들도 범했던 인지함정의 오류에 대한 일화들을 보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에서 인지함정에 빠
11월초 미국 New Orleans에서 열린 American Dental Association(ADA)의 Annual meeting에 한국 치과대학 학생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초청받았다. Dentsply는 매년 전세계에서 치과대학 학생을 대상으로 전국 치의학 학술대회를 후원하며,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팀의 대표에게는 ADA학회에 참가하여 포스터를 발표할 수 있는 영광스런 기회가 주어진다. 우리 팀은 작년 국내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덕분에 올해 미국에서 열리는 치과학회 중 가장 큰 행사를 다녀오게 되었다. Dentsply와 ADA가 후원하는 SCADA(The Student Clinician Research Program of the ADA) program은 1959년 처음 생겼으며, 올해로 54년의 전통을 자랑할 만큼 오래된 행사이다. 우리 팀의 연구를 전 세계의 모든 치과의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각 국의 치과대학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저희는 매우 뜻 깊은, once in a life time과 같은 경험을 하고 돌아올 수 있었고 이를 간단히 소개하려 한다.ADA는 New Orleans Convention Center에서 201
회색빛 바구니가 달려 있고 변속기어가 없으며 검은색 각진 플라스틱 손잡이와 빛바랜 회색안장 그리고 앞바퀴와의 마찰력으로 전기를 만들어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빈티지(vintage) 스타일의 다홍색 자전거. 우리 아버지가 생전에 타시던 자전거이다.아버지의 유품이라 생각하니 녹이 슬어 있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는데도 왠지 친근하다작년 추석명절에 일이다. 추석이면 으레 온가족이 한상 가득 차려서 먹고 마시며 밥상을 치우는게 일이다. 추석특선영화도 재미없고 집안에 있기엔 볕이 너무 좋아서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엄마! 집에 혹시 탈만한 자전거 없어요?” 송편을 빚으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타시던 자전거가 헛간에 있다고 하신다. ‘아버지가 타시던 자전거가 남아 있었나?’ 기억을 더듬으며 헛간에 가보니 여기저기 녹슬고 거미줄이 잔뜩 진을 치고 있는 자전거가 한 대 웅크리고 있다. 헛간 터줏대감인 누렁이는 외부인의 방문이 마뜩잖은지 연신 짖어댄다. ‘이게 주인집 막내도련님을 몰라보고. ’자전거를 꺼내 마당에 세워 놓으니 9년간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아버지가 쓰셨던 물건에 대해서 관심을 갖거나 찾으려 애써 본적이
미소를 만드는 치과의 창 밖에는 겨울이 한창입니다. 모과나무에 가득 매어 달린 풍요의 가을을 만끽하기도 전에 혹독한 겨울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11월이 되자 누구보다 부지런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돌입한 미소를 만드는 치과에 서설처럼 첫눈이 내렸습니다. 겨울과 눈 그리고 season’ greeting. 날카로운 계절 속에 사랑과 축복의 상징을 배치한 목적을 누군가는 모순과 균열을 열망하여 이룬 자만의 극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춥고 강퍅한 계절을 맞는 우리 모두가 열심히 혹한을 견디도록 허락된 선물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괜찬타…. 괜찬타…괜찬타….괜찬타….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산도 산도 청산도 안기어 드는 소리”라고 노래한 시인 서정주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이되어 옵니다. 세상사 시름을 모두 덮으며 내리는 눈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그것은 그저 사는 일이 고단함을 뒤꼍으로 물리겠다는 회피의 의미가 아니라 궁지에 몰린 삶에게도 괜찮다고 손 내밀 수 있는 신실한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날리는 눈발 속에서 묵묵히 치과 통로의 눈을 쓸어 길을 내는 우리 치과 식구들의 어떤 마음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사람들이 보통 치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