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문화 중 하나는 위계질서이다. 위계질서의 사전적 의미는 관등이나 직책의 상하관계에서 마땅히 있어야 하는 차례와 순서로 풀이되며, 연공서열이란 말이 함께 연상된다. 다시 말해, 서열이 짬밥 순으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이로 구분된 단체 돌봄과 의무교육, 그리고 대학과 군대, 회사 생활로 이어지는 조직문화에 노출된 우리는 위계질서와 연공서열을 당연하게 인식하는 한편, 남을 향한 위계질서를 강조하면서도, 본인을 향한 위계질서는 불편해한다. 위계나 서열은 강력한 규율이나 원칙에 의해 오직 하나의 기준으로 매겨졌을 때는 구성원들이 쉽게 동의하고 따를 수 있다. 하지만, 다양성과 개인주의가 존중되는 현대 사회에서 수직적 위계질서와 상명하복 문화는 오히려 조직의 소통과 성과를 저해할 거라는 건 이제는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1997년 괌에서 22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한항공 여객기 사고의 원인이 기장과 부기장 사이의 군대식 위계 문화와 우리 말의 복잡한 경어체계로 인한 소통의 문제임이 밝혀진 후, 대한항공은 민간 출신 조종사 비율을 늘리고, 영어 의사소통을 표준화하여, 항공기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것은 위계질서의 단면을 보여준 유
7월 1일, 뜨거웠던 여름날의 날씨처럼 치열했던 11과목의 기말고사가 끝나고 드디어 방학이 찾아왔다. 방학은 학생에게 있어 최고의 특권이다. 27살이나 먹은 내가 방학이라고 마냥 즐거워하기에는 철없어 보이긴 하지만 신나는 이 마음을 숨길 수는 없다.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친구들도 내 방학만큼은 부러움에 몸서리친다. 내가 생각해도 약 2개월 동안의 온전한 자유시간은 부러워 할 만 하다. 친구들마다 이 소중한 방학을 즐기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연구에 뜻이 있는 친구들은 학교에서 연구활동에 매진한다. 동아리 활동이 방학에 집중되어 있는 친구들은 합숙훈련에 참여하며 동아리 활동에 최선을 다한다. 어떤 친구들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조용히 보내기도 한다. 나는 수많은 선택지 중에 여행을 선택했다. 아마도 3학년 원내생을 시작하면 이렇다 할 여름방학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없이 좁아진 내 시야에 큰 세상을 보여줘야 할 타이밍이었다. 고작 시험 한 과목, 한 문제에 좁아져 있는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야 했다. 여행은 치의학대학원 동기들과 함께 떠났다. 시험기간에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기들과 방학을 하자마자 여행이라니,
7월 초,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치협이었다. 치과의사들의 코로나19 방역활동 공로를 표창하기 위한 수여식을 열려고 하는데, 전공의 대표로 참석해 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었다. 필자는 지난 2019년부터 2년 동안 평촌에 있는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구강악안면외과에서 전공의로 수련하면서 전신 방역복을 입고 코로나 검체 체취에 참여했었다. 표창장 수여를 위해 치협에 방문했을 때, 보건복지부가 치과의 신속항원검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평소 치과의사의 진료 범위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와 관련해서 몇 자 생각을 조심스럽게 적어보려 한다. 치과의사의 진료 범위로 인한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가장 크게 이슈화된 것은 지난 2016년의 얼굴 보톡스 시술 문제다. 이때 대법원은 공개변론을 통해 치과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대법원은 얼굴 프락셀 레이저 시술에서도 치과 측 손을 들었다. 하지만 늘 치과가 승리한 것만은 아니다. 최근 치과의사의 독감 예방접종 주사가 불법으로 판결을 받았고, 그 외에도 탈모약, 체중 감소약, 발기부전 치료제 처방 논란 등도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진료범위 논란이 터질 때마다 많은 이야기가 나오
그 순간, 그 곳에 있어야만 가능한 작업이 사진입니다. 주말에야 겨우 여유로운 출사가 가능한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마음에 드는 장면을 마주하여 사진으로 담아내기는 참으로 힘듭니다. 특별한 소품을 마련하거나 좋은 조명을 갖춘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해보는 경우는 일 년에 고작 몇 번의 기회밖에 없습니다. 전문 작가들의 경우 몇 해 전부터 미리 천문을 읽고, 일기를 예측하여 최적의 촬영시간에 맞추어 그 장소에 대기합니다. 촬영 결과물에 대한 확인이 한참 후에야 가능했던 필름카메라가 디지털 카메라의 개발과 고성능화로 대체되면서, 촬영 즉시 결과물을 확인하고 필요시 곧바로 재촬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노련한 기술과 복잡한 시설 장비가 필요했던 현상과 인화의 과정 또한 생략하고, 본인이 직접 컴퓨터로 보정하고 프린트 작업까지 마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아마추어 사진가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 축복입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남들 다 찍어본다는 유명 출사지를 찾아 헤매던 입문 시절을 뒤로하고, 가까운 곳에서 피사체를 찾는 즐거움을 느껴보고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모습을 담아보자.’ 오늘 사진은 3년마다 열리는 2016
우주인 1호를 소련 가가린에게 빼앗긴 미국 정부는, 우주개발사업을 항공우주국(NASA)에 집중하고, 차곡차곡 따라잡기 계획을 세운다. 먼저 한 사람 우주에 보내기 작전명(名)은 머큐리, 하늘에 보내는 인류의 전령(傳令)이다. 다음 추진력을 높여 두 사람 보내기는 쌍둥이 좌(座) 제미니.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계획은, 달 궤도를 선회할 모선에 하나와 착륙함에 둘, 세 사람을 태운다. 지구를 도는 태양의 신 아폴로의 수레에는 바퀴가 셋. 스푸트니크에 쇼크를 받아서 달나라만은 반드시 우리가 먼저 가겠다던 케네디의 약속은 지켜진다(1969. 7. 20). 일견 황당한 계획에 붙인 절묘한 이름 짓기(Naming) Mercury-Gemini-Apollo는, 전 세계를 매혹시켰을 뿐 아니라, 미국 국민은 문자 그대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받아들였다(230조). 1995년의 치의신보 칼럼 ‘이름 짓기’를 다시 정리한 글이다. 과학에 문외한인 공무원 제임스 웹(최신 우주망원경 이름)의 추진력에, 칼럼니스트 칼 세이건과 영화감독 론 하워드의 헌신적인 후원에서 보듯, 전 국민이 투자를 지원해준 결과다. 1993년 대전 과학엑스포 당시 갑천 고수부지에서,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나은 이유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동물이라서? 저는 인간이 우월한 것은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해서일 뿐 기준에 따라서는 사실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종교적으로 보면야 물론 영혼을 가진 인간은 동물과 구별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기준으로 봤을 때 다른 동물보다 우월해 보일 뿐이지 사실은 다른 동물들 보다 감히 우월하다고 말해서는 안 되겠죠. 새는 인간이 평생 가질 수 없는 날개를 달고 그 어느 곳이든 날아다닐 수 있는 초능력을 가졌으며 물고기는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바다를 누비며 그 신비한 세계를 탐험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되지 않고서야 우리는 그들이 어떠한 초능력과 비밀을 가졌을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인간이 우월하다고 생각할 수 있나요? 하지만 인간은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기록을 남겼고 여전히 책을 쓰고 읽고 있습니다. 적어도 기록을
달콤함과 쌉싸래함을 동시에 품은 듯, 질투와 관용 사이에서 줄을 타는 듯, 불같은 열정과 차가운 이성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 가려는 듯, 꽃잎의 보이는 표면은 붉은색인데, 그 이면은 흰색을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 육종된 'Love'라는 이름을 가진 장미입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디지털 카메라는 사람과 동일한 방식으로 컬러를 보지 못합니다. 이미지 센서의 각 셀 앞에 빨강(R), 초록(G), 파랑(B) 중 한 가지 색상의 빛만 통과할 수 있는 필터를 배치하여, 각 셀마다 통과하는 빛의 세기만을 기록합니다. '18%의 반사율을 가진 중성회색'이라는 노출기준점을 가지고 어두운지 밝은지를 감지하여, 적정한 노출을 맞추려고 CPU는 바쁘게 노출 증감을 계산합니다. 짙은 붉은색은 노출기준점 보다 어두운 색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조리개와 노출시간을 조절하여 밝게 촬영하라고 지침을 주고, 흰색은 밝게 인식되기 때문에 기준점에 맞추기 위해 어둡게 조절을 하라고 합니다. 어둡게 인식되는 붉은색과 밝게 인식되는 흰색 사이의 노출차이로 인해서, 특히 햇살이 강렬한 날에는 둘 사이에 적정한 노출을 설정하기가 어렵습니다. 보통 붉은색 한 가지를 가진 꽃도 제대
원숭이두창(Monkeypox)은 오르토폭스바이러스속[Poxviridae과의 genus Orthopoxvirus, 외피 이중 가닥 DNA 바이러스(벽돌모양, 20면체)]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인수공통감염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올 6월 8일 법정감염병 중 제2급 감염병으로 지정고시 시행되었다. 1980년 세계적으로 공식 근절 선언된 바 있고, 두 종류의 두창 바이러스, 베리올라 메이저(Variola major)와 베리올라 마이너(Variola minor)에 의해 유발되는 천연두(Smallpox)와 유사하지만 전염성과 중증도는 천연두보다 낮은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중부 및 서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원숭이두창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고, 서부 아프리카 분기군(分岐群)과 중부 아프리카 분기군(일명 Congo Basin 분기군)의 두 개의 분기군이 확인된다고 한다. 감염 사례는 바이러스 전파 동물들이 서식하는 열대 우림 근처에서 발견된다.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의 감염은 다람쥐, 감비아밀렵쥐(Gambian poached rats), 겨울잠쥐(dormice), 여러 종의 원숭이 등 동물에서 발견되었다. 사람 간 전염은 제한적이며, 사람 간 전염 사
아마 지금 50세 전후 국민학교 출신 이상의 세대라면 학교에서 숙제처럼 암송하던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글은 박종홍, 안호상, 이인기, 유형진 등 학계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기초위원 26명과 심사위원 48명이 초안을 작성하고, 국회의 만장일치의 동의에 따라 박정희 대통령이 1968년 12월 5일 발표한, 당시의 대한민국교육의 지표를 담은 것이었다. 이후 모든 교과서 첫 장에 인쇄되어 있었고, 교실 칠판 옆에도 크게 써 붙여 있었다. 그러다가 민주화가 되고 박정희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이 정권을 갖게 되면서 이것이 군사정권의 잔재이자, 일본의 메이지 유신 당시 “교육칙어”(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제정과 유사한 목적을 가진 친일잔재라 하여 언제부터인가는 아예 교육현장에서 없어지게 된다. 그 역사가 어떠하든 필자는 신기하게도 당시 외운 국민교육헌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또렷하게 암기가 가능하다.(지금은 돌아서면 오던 길도 잃어버릴 판이지만…) 어릴 적에는 그 세세한 깊은 의미도 잘 모르고 암기하였고, 국민교육헌장이 친일 군사정권의 잔재이고 국민을 전체주의로 세뇌시키기 위한 도구였다고 언론에서 떠들 때도 그저 덤덤하게 지나갔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독일에 유
야간진료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저녁, 새로운 대화창이 만들어지면서 메시지 하나가 덩그러니 있는 핸드폰을 발견하였다. 낯익기는 하지만 익숙하지는 않은 프로필 사진. 아버지였다. ‘아버지께서 어쩐 일로 연락을 주셨지?’ 하는 생각과 함께 내용을 들여다보니, 어머니께 보내야 되는 연락을 잘못 보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다. 언제든지 오고 갈 수 있는 평범한 내용의 메시지였다. 하지만 아버지와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첫 메신저 대화였기에, 나에게 그 의미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아 그동안 단톡방을 통해서만 이야기를 나누고 따로 연락을 드린 적이 없었구나. 내가 아버지를 조금은 외롭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버지와의 옛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이셨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모습 사이로 힘들고 외로운 모습 또한 스며있었던 것 같다. 여느 때와는 달리 만취해서 집에 들어오실 때면, 나와 동생은 한껏 부푼 마음으로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런 날은 빈손으로 들어오시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와 함께 양손 가득 간식을 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어렸던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 날의 아버지는 힘들고
진료 예약표에 ‘검진’이라는 일정이 적히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구강검진은 예약표 작성 없이 막간을 이용해 수시로 진행하는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물으니 병원과 협조관계에 있는 특수학교의 장애학생 구강검진이라 시간이 소요될 수 있어 예약을 받아 진행한다고 합니다. 올 하반기부터 ‘아동구강건강 실태조사’에 조사자로 참여하며 간혹 말 안듣는 중학생의 매운 맛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터라 장애학생 검진은 또 얼마나 어려울까 걱정이 많았지만, 막상 검진이 시작되니 제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보호자와 함께 내원한 장애학생은 구강검진에 대한 협조도는 물론이거니와 구강상태와 구강관리 습관까지도 양호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직접 통계를 내본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제가 만난 비장애학생들과 비교해도 오히려 더 나은 구강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원하는 장애학생이 발달장애(지적/자폐)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아 의사소통이 어려워 보호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이들의 구강건강관리 비결이 다름아닌 보호자의 노력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칫솔질에 도움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치실, 불소용품 사용, 설탕섭취 제한에 이르기까지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