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군인이다 Episode 1진료실 컴퓨터 책상에 앉아 있노라면 매일 아침 비슷한 시트콤이 제작되는 현장을 볼 수 있다.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이 우렁찬 경례소리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온다. 의무병들이 자리를 지정해주며 “저기로 가서 앉으세요” 라면 바짝 얼어있는 그 이등병은 유니트체어가 아닌 스툴에 가서 각잡고 앉아 있는다. 이건 수련할 때 70대 이상 할머니들이 자주 하시던 건데 군대에서 또 본다. 답답한 의무병이 “어이 아저씨(병사들끼리의 비공식적인 호칭), 거기 말고 옆에 긴 의자에 앉으세요” 그러면 그 이등병은 당황해서 일어나다가 체어라이트에 부딪히고… 이제는 매일 봐서 웃기지도 앉은 장면이다. 내가 다가가면 안그래도 바짝 얼어있던 그 이등병은 다이아 셋 계급장이 다가오자 더 긴장한다. 군의관 어디가 불편해서 왔니?이등병 (두리번 거리다) …잘…못들었습니다?군의관 휴우,,, 어디가 불편해서 왔냐구?이등병 이,,, 이빨이 아파서 왔습니다. 군의관 (파노라마 스캔 후) 여기 충치가 엄청 심하거든이등병 그렇습니다. (보통이라면 “네”라고 대답하는 상황이다)군의관 신
아버지의 등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던 너무나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이 너무나 다른 의미로 다가 오는 그런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의 경험이 인생의 큰 방향을 결정짓기도 한다. 어릴 적의 나는 하고 싶은 일도 되고 싶은 일도 많은 꿈 많은 소년이었다. 당시 또래라면 습관적으로 이야기하곤 했던 장래 희망 과학자와 대통령 뿐 아니라 소설가나 기자도 되고 싶었고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 같은 멋진 고고학자 역시 되고 싶었다. 하지만 되고 싶은 것이 많았던 만큼 실제 진로를 결정할 때의 혼란스러움 역시 남들 보다 더 했었다. 인디아나 존스는 영화 속의 주인공일 뿐 실제 고고학자는 아니라는 식의 현실을 알려주는 주변의 충고 역시 그 혼란을 더하게 만들었다. 장래에 대한 결정을 위해 고민하던 와중에 그 날 왜 아버지의 병원을 찾아갔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날의 그 광경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병원 문을 들어서고 병원 간호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여느 때와 같이 진료실을 가로질러 원장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진료를 하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이었다. 어릴 적부터 수 없이 봐왔던 진료하시는 아
용띠인 나, 힘차게 솟아 오르리라 나의 청춘이 살아 움직였던 곳! 지금의 나를 키워준 곳! 나의 모교인 원광 보건대학교를 갈 때마다 가슴 속 깊이 용솟음치는 무언가가 있다. 생기발랄한 후배들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그 나이가 되어 강의실, 운동장, 벤치를 거닐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15년 전에는 없던 멋스러운 ‘테레사9’ 카페테리아에 앉아서 잠시 흘러간 시간들을 느낀다. 아메리카노가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임상가 치과위생사로서 1주일에 2번은 학생이 되어 그 시절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 속에서 나를 재발견하고 있다. 원광대학교 보건환경대학원 구강보건전공을 하고 있는 내가 수업받기 전 잠시 들렀다가는 나의 모교, 때론 교수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때론 과사무실 후배 조교선생님들을 보기도 하고 아참, 우리 조교선생님들은 연차 높은 선배가 오는게 좋지만은 않겠구나! 살짝 소심한 생각도 해본다. 낭만의 계절 가을이 가고 국가고시로 열심히 공부하는 후배들의 숨결로 가득한 도서관을 지나 오늘도 나는 대학원으로 발을 옮기고 있다. 정형화된 건물들, 앙상한 나무들도 그대로 있는데, 유리창에 비친 나는 어느덧 서른이 훌쩍 넘은 여성이 되어 있다. 마음만은 20대 발랄한
값진 경험, 그리고 새로운 시작-제13회 전국 치대·치전원 학생학술경연대회에 참가하며 2010년 8월, 선배의 권유로 제37회 APDSA(Asia Pacific Dental Students Association)에 참가하게 되었다. APDSA는 아태지역 치과대학생들의 학술·문화교류의 장이자 38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제적인 친목도모 행사로, 37회는 일본에서 개최되었다. 국제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부푼 가슴을 안고 선배들과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APDSA에는 City Tour, Cultural Night 등 여러 행사가 있지만, 메인 프로그램 중 하나는 바로 SRC(Scientific Research Competition)이다. 당시 본과 3학년이었던 이주호 선배가 한국 대표팀 중 하나로 참가했고, 3rd prize를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처음엔 정확히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 잘 몰랐지만, 실험과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를 발표하는 대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에 흥미가 생겼다. 행사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후에 연구를 시작하고 싶어서 학생 연구활동에 대해 더 알아보았다. 그렇게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 막막
나의 모짜르트 음악 10선 (하)(201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우수논문상 수여작) <1998호에 이어 계속> 4. 나의 모짜르트 음악 10선얼마 전 지인들의 모임에서 내가 모짜르트만 주로 듣는다는 것을 알고 어떤 곡을 들어야 하느냐고 문의가 와서 10곡을 선정해 보았다. 비교적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곡들을 골라보았다. 하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과 개인적인 선호에 의해서 정하였다는 것을 고백한다.<Piano Concerto>K 466 Piano Concert in D minor (No 20) 퀘헬 1번 <피아노를 위한 안단테>를 작곡한 5살 이전부터 모짜르트는 피아노를 끼고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곡들이 피아노 협주곡에 몰려있는 것 같다. 단조의 어두움을 그대로 나타내며 장중하면서도 힘있게 시작되는 1악장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죽어가는 모짜르트를 향해 집을 나갔던 부인이 황급히 돌아가는 마차 장면에서 쓰였다. 특히 ‘Romance로 연주하게 되어 있는 2악장의 단순하면서도 주옥 같은 피아노 선율은 압권이다. K 467 Piano Concerto in C
나의 모짜르트 음악 10선 (상)(201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우수논문상 수여작) 1. 모짜르트를 통해서 천재의 머리 속을 엿보다노벨상을 받은 천재과학자들의 연구나 필즈상을 받은 수학자의 이론을 우리 범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인 E=mc2 조차도 일반인들은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채널을 통하면 평범한 사람들도 천재들의 작품을 통해서 소통할 수 있을 것 같다. 모짜르트를 특히 좋아하는 나는 몇 년전 모짜르트가 5세때 작곡한 퀘휄번호 1번 <피아노를 위한 안단테>로부터 35세때 작곡한 퀘휄 626번 <라퀴엠> 까지 전곡을 한 CD점에 부탁해 구입한 적이 있다. CD를 쌓아놓으면 약 2m 정도가 되는 분량이었다. 구입하고 나서 처음에는 그 반이 미사곡과 오페라인 것을 알고는 크게 후회했다. 하지만 한번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희귀 오페라를 들어 보고 나서는 후회가 감사로 바뀌게 되었다. 난생 처음 들어 보는 모짜르트의 희귀 음악조차도 하나같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35년 밖에 안 되는 모짜르트의 삶 (Jan 27th1756~Dec5th1791)중에 이렇게 방대하고도 감동을 주는 작품을
뼈 국 (하) <지난호에 이어 계속> 그때쯤, 엄마와 할머니의 합동 작전이 시작됩니다. 장작불을 지피시고, 넓은 솥에 물을 끓이기 시작합니다. 장작불이 타는 것과 동시에 부숴진 등뼈가 된장과 함께 끓게 되면, 장작불의 연기와 열린 솥뚜껑에서 품어져 나오는 수증기에는 푹 곰삭은 된장 냄새와 등뼈 육수가 어우러져 달콤 담백한 향기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 속으로 함께 피어 오릅니다. 이 기억은 평생 못 잊을 듯합니다. ‘술익는 마을’이라는 유명한 시구가 연상이 됩니다. 어둑어둑해져 가는 검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지는 노을, 어두워져가지만 뚜렷했던 뭉게구름, 밑이 까만 솥을 데우는 빨간 장작불, 눈물 나게 매운 회색빛의 연기, 뚜껑을 열었을 때 퍼지는 하얀 뼈국의 수증기, 귀에는 타닥타닥 장작불 타는 소리와 바삐 솥뚜껑 여닫는 소리. 그리고 곰삭은 된장과 등뼈가 발산하는 달콤 매콤한 뼈국 내. 목은 벌써 입안에서 분비하는 침으로 연신 꼴깍. 집안은 서서히 어두움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는 80년대 어느 즈음의 담양말이죠. 여전히 바삐 움직이시는 엄마와 할머니. 등뼈가 된장 속에서 잘 끓게 되면 이번에는 시장에서 주어 온 파란 겉배추 잎이 들어갑니다. 일명 시래
뼈 국 (상) 사람 많은 서울에 산 지 벌써 10여년이 넘어 갑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 의식주이지요. 워낙에 소인(小人)이다 보니, 전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게 식(食)인 거 같습니다. 먹는 즐거움 말이죠! 결혼해서 고향 멀리 나와 살고, 맞벌이 하는 사정이라, 입맛 까다로운 나도 이런 맛 저런 맛에 길들여지게 되고, 예전의 그 맛이 그리울 때가 참 많습니다. 맛은 요리가 불러낸 변덕쟁이 애인입니다. 같은 양념을 써도, 똑같은 사람이 만들어도, 시기와 날씨, 분위기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죠. 심지어 같이 먹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똑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맛있게, 즐겁게, 고맙게, 깨끗하게, 준비한 사람을 칭찬하며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천하의 일품요리를 맛없게, 우울하게, 같이 먹는 사람이 더 이상 숟가락을 들게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사람도 있지요. 서울에 살면서, 허기져서 우연히 들어간 집이 유명한 맛집인 경우도 있었고, 유명세 따라 주말이면 힘들게 찾아간 집도 여러 집이 되는군요. 정말 유명한 집이더라도 내 입맛에 안 맞는 경우도 허다해서 다시는 가지 않는 집이 있는가 하면, 철따라 분위기 따라 한 두 시간의 정체
나의 친구, 박 타대오(정숙) 수녀! 본인이 가난했기에 누구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잘 알고 그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친구는 학창시절(전남대학교 치과대학 6회 졸업)에 책 세일즈를 해서 학비를 벌기위해, 1년간 휴학을 할 정도로 어렵고 힘들게 치과대학을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졸업 후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경제적인 기여를 해야 하는 의무감과 압박감에 힘들어 했지만 가족들을 설득하여 결국 수도자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쳤을지 감히 짐작해 봅니다. 가난하고, 늙고, 병드신 부모님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 친구의 발길은 얼마나 힘들고 무거웠을지 감히 상상이 안갑니다. 어쩌면 주의에선 모질고 무책임 하다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친구가 품은 그 큰 희망은 꺾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품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바뀔 수 있듯이 친구는 항상 마음에 사랑을 품고 살아갔기에 친구의 삶은 사랑으로 일구어지고 온전히 내어주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힘들고 외로운 좁은 문으로 들어선 친구는 수도자로서의 본연의 길인 구도의 길과 틈틈이 꽃동네 치과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한발 더 깊이 봉사하도록 부르심
초겨울의 일기 2 요 며칠간은 겨울비가 내렸다.아침마다아직은 일어나지 않아도 되겠거니 생각하며어두운 창문을 보며 뒤척이다보면매번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동지가 가까운가보다.주차장에서 자동차문을 열기 전에바라보는 먼산을 뿌연 회색기운이 감싸고 도는 게아직 빗기운이 완전히 물러서지 않고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차창에 물방울들을 닦고물기에 젖어 유난히 검은 아스팔트길을 달려가면유난히 공기냄새가 좋은 이런 날이 난 참 좋다.도로에 많은 차가 달려도아무소리도 들려오지 않고문득 이대로 길이 날 이끄는 대로길 끝난 곳까지 한가로이 달려가보고 싶은난 이런 겨울비 내리는 날이 참 좋다.무념의 길 끄트머리에 서서생각조차없이 비를 그으며다시 먼곳을 바라보게 되는 상상을 해본다.무념, 무상의 그 곳. 초겨울의 일기 3 올 겨울은 겨울답지않게 포근하리란 일기예보입니다.응급실과 수술실에서 눈이오건 비가오건잠도 자지 못한 채 열서너 시간씩 수술을 하고 나와폭식을 일삼는 뚱뚱이 젊은 의사들과질병과 힘든 싸움을 지탱하는 많은 사람들과호스피스병원의 자원봉사자들과누구라도 찾아와주길 기다리고 있는 고아원과 양로원의 아이들과 노인들과차가운 바닥에 누워 웅크리고 쪽잠을 자는
초겨울의 일기 1 뭐든지 확실하고 선명하게 보이는 게좋은 것만도 아닌 것 같다.때론 흐린 하늘이 물먹은 화선지 마냥 드리우고안경에 김이 서려있지도 않은데비내리는 창밖이 어른거리는 오늘 아침이 좋은 이유가 그렇다.시동을 끈채 윈도우 브러시를 작동시키지 않고바라보는 바다가,안개낀 늦가을의 낙엽 밟히는 거리와그 속을 걸어가는 한 실루에트가,물안개 피는 아침강가와 소슬한 바람이,비를 맞으며 말없이 웃고 서있던 사내가,김서린 샤워커튼이,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은은히 퍼지는 햇살과홀로 고개숙인 여인의 미사포가좋았던 이유는 그런 것이다.어떤 것에든 신비스러운 감추임이 남아야아름답단 생각을 한다.늘 투명한 유리문을 통해 누군지 확인하고 문을 여는 우리는간유리로 만든 문 앞에 누군가 와서 초인종을 누를때 느낄 수 있는아름다운 기대와 설레임을 갖지 못한다.비가 내리고감추일 무엇도 없어 허전한 나는망연히감은 머리를 말리지 않은채초겨울의 안개낀 강가를 서성이고 싶다. 강경찬 전주 예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