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 (하) 마추픽추(Machu Picchu)‘나이 든 봉우리’를 찾아가기로 했다/너무 유명하니 인사함 하는 것도 살아가는 맛이라 생각했다/즉, 네가 중요한 핵심이었단 말이다/400년간 쉬고 있던 너를 만나러 가는 길/‘성스러운 계곡’ 우르밤바 강을 따라 하늘이 보이는 기차를 타고 가야 했다/사실은 해발 2800에서 2400으로 내려가는 길/열대우림을 뚫는 길은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가는 길/사리사리하게 가지 않고는 보여주지 않는 길/영험한 곳은 모두 그랬다/현기증을 느끼게 한 후에야 보여주는 공중도시는/구름이 까치처럼 왔다 갔다 했다/사라진 비밀의 도시, 그곳엔 이방인인 관광객들이 부산만 떨고 있고/그 신비로움에 쌓인 깎아서 만든 절벽도시는 사라짐을 예견했다/아무도 모르게 궁금증을 낳고선 징기스칸*처럼 비밀을 간직하고/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아니 잠시 비켜서 있을지도 모른다/또 다른 세상에서도 역시 인간은 잔해를 남기고 갈 뿐/미라로 남는 인간은 그저 선반용 제물일 뿐/마추픽추에는 영(靈)가득 추락하는 아슬아슬함이 가득.(*그룹 징기스칸의 노래 마추픽추도 있다.) 12월 29일 수요일, 우르밤바에서 버스로 7시간 아래로 이동,
1-1-11 (상) 딸아이가 잠시 머물고 있는 텍사스, Tutor에게 전화해서 이번 방학에 겸사겸사(兼事兼事)해서 페루를 갔다 오려고 한다니깐, 네? 잘 모르겠다는 듯 “페루요?” 하면서 “아~아! 퍼루! 그런데 거기는 왜요?” 라고 한다. 난 속으로 “왜요”는 “일본 담요”이거든요 하고픈 것을 참고, 여차저차하여 떠나게 되었으니 딸 좀 LAX로 오게 도와주십사 부탁했다. 나로서도 큰 결심을 한 것이다. 직업상 겨울방학이 대목인데 그것도 일주일이상 병원을 비우고 먼 남미로 간다는 것이 영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한동안 못 본 딸아이 본다고 생각하여 미국에 있는 여행사를 통해 일단 신청서를 넣고 기다렸다. 모객이 안 되면 취소될 수도 있으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서 LA까지 비행기 삯은 개인부담으로 하고 출발 몇 주 전에야 우리가족 넷과 미국 시민권자 여섯, 총 10명이 간다는 연락을 받고선 추운 겨울 한국을 떠나 비수기 우기인 페루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한국서 LA까지 10시간(LA서 한국은 12시간), LA서 수도 리마(Lima)까지 8시간 30분, 리마서 쿠스코(Cusco)까지 1시간 30분 비행시간, 그리고 기다리
내 나이 편지 한 장을 받았다.분명 나에게 보낸 편지는 맞는데 보낸 사람이 누군지 통 알수가 없다.“김중현, 김중석이가 누구지?”편지 내용을 보니“삼가 아뢰옵니다. 저희를 낳아주시고 가없이 사랑으로 길러주신 아버님(김 청字 환字)의 고희를 맞아 어머님(최 경자 애자)을 모시고 저희들이 작은 정성을 모아 축하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오늘날까지 저희 부모님과 두터운 정을 키워 오신 어르신들과 친척 분들을 모시고자 하오니 기쁨을 나눠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아하! 청환이 형 고희연 초청장이구나. 중현이와 중석이가 청환이 형 아들들이구나. 지금까지 무심히 지냈으니 청환이 형 아들 이름을 알 턱이 있겠는가? 벌써 청환이 형이 고희네! 일흔 살이라는 거 아니어? 그렇지, 청환이 형이 나보다 다섯 살 많으니 고희가 맞기는 맞네.그러고 보니 내 나이도 예순 다섯 살이네. 허참, 앞으로 오년만 지나면 나도 고희네.청환이 형 고희연 초청장을 앞에 놓고 지난날의 내 나이를 돌이켜 본다.이유는 모르겠으나 스물여덟 살까지 난 늘 이랬다.“언제 난 사, 오십을 지나 환갑이 되지?”“왜 사람들은 나를 매냥 애 취급을 하는지 모르겠어?”“나이 스물여덟이면 어른인데
윈드서핑과 스키 저는 여러 가지 레저 스포츠를 즐기지만 그 중에도 여름에는 윈드서핑을 주로 하고, 겨울에는 스키를 즐깁니다. 두 가지 스포츠를 하면 아주 큰 장점이 있습니다. 비시즌이 없어진다는 것이지요. 스키를 열심히 타는 마니아들은 스키시즌이 끝나면 공황상태에 빠진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 시즌에 스키장에 50번 갔습니다. 예년에 70~80번 가던 것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것이지요. 저 보다 열심히 타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봄이 되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게 되어 허탈감이 생기게 되고 다음 시즌이 오기만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름에도 실내 스키장에 가서 열심히 스키를 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름에 까지 스키를 탄다는 것은 좀 오버가 아닐까요? 과일도 제철 과일이 맛이 있듯이 레저 스포츠도 제철에 즐기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윈드서핑은 3월부터 11월 까지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윈드서핑에 미친 몇몇 사람은 한강이 얼지 않으면 겨울에도 타는 사람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11월 말에 시즌을 끝냅니다. 우리 클럽에서는 11월에 제주도 윈드서핑 원정을 가는 것으로 시즌을 끝냅니다. 스키 시즌은 11
제1628번째 카리스마 (Charisma) 이 단어의 어원이 된 그리스어 카리스(Charis)는 ‘은총"이나 "신이 내린 선물"을 뜻한다. 그냥 우리 식으로 쉽게 말하면 “쟤 쨩이야”라는 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대중을 탄복시켜 스스로 꼬리를 내리게 만드는 초인적인 자질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수년 전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원에서 계절학기 수업을 받는 선생님들을 따라 가서, 음악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관현악단과 함께 협연하기 하는 모습, 지휘하는 모습도 보았다. 지휘자의 지휘봉 끝을 따라 흐르는 선율이 마치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선율을 그린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런 모습을 넋 잃고 보았다.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전공 악기에 관계없이 결국엔 지휘자로 타이틀을 바꾸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휘봉의 움직임에 따라 단원들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멜로디가 마치 전쟁터에서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 같았다. 무대에 서기 전까지 단원들은 지휘자와 함께 많은 시간 혹독한 연습을 하면서 지휘자가 의도했던 대로 소리를 그려 간다. 단아한 선율이 장내에
‘사랑 챔버’선율 온누리에… 저는 1986년에 연세치대를 졸업하고 20여년 째 서울 은평구에서 개원하고 있는 배현경 원장입니다. 제가 감히 서울여자치과의사회 정기총회 및 특별공연에 선 것은 저의 특별한 큰 아들 이정익이와 우리 ‘온누리 사랑 챔버’를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정익이는 올해 만 23살이고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아이인데다가, 발달장애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기에 그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엄마의 노력으로 유능한 선생님께 특수교육 열심히 시켜 입학시키면 정상 아동들보다 처지더라도 일반학교 과정을 따라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문제점이었습니다. 제 아들의 장애를 제 자신이 인정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감출 수 있으면 감추고 싶었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했습니다. 정익이는 보통 아이들이 지키는 규칙과 학습을 당연히 따라가지 못했고, 엉뚱한 곳(예를 들어 우연히 옆을 지나가는 아이나 주차시켜 놓은 자동차)에 화풀이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수 학급이 없는 일반 학교로 보낸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동안은 담임선생님께 호출 전화가 올까봐 학기 중에는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고, 방학이 되면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
금산사의 ‘도란도란’ 템플스테이 <하> <1919호에 이어 계속> 마지막으로 또 한 젊은 스님. 사실 난 누구신지 잘 모른다. 크지 않은 방안에 침대와 컴퓨터까지 있어 좀 옹색한 느낌이다. 가구가 절집에 어색한 느낌이 들어 물어 보니 허리가 좋지 않아 침대를 사용한다고 한다.방, 방바닥은… 타령은 이제 그만하자. 재밌는 것은 내려 갈수록 방은 점점 작아지고 차가워진다는 사실.반대로 우리에게 해 줄 말씀은 더 많아진다. 공부를 많이 하신 분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총명(聰明)한 초등학교 3년생처럼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사실 잘 듣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총명하다’에서 총(聰)은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이라 한다. 하지만 나에겐 이 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그래서 환자를 치료할 때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듣기는커녕 시작도 하기 전에 진단을 내리는 버릇이 있다.귀를 밝게 하자. 올해부터.총명해지자. 지금부터.전문 지식인 일수록, 많이 알수록, 가르치는 사람일수록 더 필요한 덕목이지만 더 실행하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도끼 자루를 잡아 본다. 아궁이에 불을 때기위하여 장작을 패야 한단다.한두 번 해보니 도끼질에 대해 전부 다 알 것
제1625번째 금산사의 ‘도란도란’ 템플스테이 <상> 새벽 3시.이제는 자야 할 시간이다. 집에서라면…하지만 이곳 금산사(寺)의 오전 3시, 하루의 시작이다. 아련히 들려오는 목탁 소리에 이어 같은 방에 머무르는 도반들의 휴대폰 알람소리도 여기저기서 막 터져 나온다. 오늘은 4박 5일 일정의 전북 김제 금산사의 ‘도(徒)란도(道)란 구들방에서 쉬어가는 템플스테이"의 마지막 날. 장작을 때어 뜨겁게 달군 절집 구들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세속을 버리고 놀다 가라는 뜻으로 마련한 행사이다. 일어나야하나 말아야하나. 아무도 강요하지는 않는다. 닷새 전 들어오던 날부터 몸이 으스스 하더니 내내 몸살을 앓아 새벽 예불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새벽 행사에는 참석을 못한 터라 더 갈등이 인다. 마음 한구석의 비겁함이 몸 어디엔가 머무르고 있던 게으름과 또 다시 손잡으려 한다. 하지만 호기심이 결국은 망설임을 이긴다. 어둠 속에서 옷을 잔뜩 껴입고 방문을 나선다. 내가 맨 마지막이다. 흰 눈이 온 경내를 덮어서 책이라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밖은 환하다. 법당 안엔 스님 몇 분과 우리 일행뿐이다. 옆 사람 하는 대로 부처상에 대고
제1624번째 ‘자 장 면’ 교직을 남들은 방학이 있어 좋겠다고 들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방학이 더 바쁜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빨리 개학을 하면 좋겠다 싶지요.방학이 좋은 것은 아침 드라마를 좀 편히 보고 출근한다는 이 점 뿐인 것 같아요.개학을 하면 짜여진 일상 속에 들어갑니다. 강의가 있는 날은 강의 없는 시간이 차분 할 수 있고 방학처럼 뭔지 모르게 붕 떠 있는 일상은 아니지요. 개강을 앞두고 마음이 분주했는지 아니면 못난 마음이 속앓이를 한 덕분인지 나이든 몸이 이기지 못하고 며칠을 휘청거렸습니다.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하여 요 며칠은 좀 이른 귀가를 하여 함께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딸아이와 하루 종일 TV를 보며 빈둥거리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주기도 하면서요. 남편이 외출한 휴일, 우리끼리 밥을 시켜 먹자고 결론지었습니다. 마침 TV에서 국수 먹는 장면이 방영되어 ‘자장면’이 먹고 싶어졌습니다.아니 정확히 ‘간자장’이요. 유난히 편식과 입맛이 까다로운지라 몇 가지 양보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간자장입니다. 중국집에 전화를 하고 얼마 뒤 요리가 도착하였습니다. 배달원이 뭔가 난감한 표정을 짓더군요. 이유인
제1623번째 입 영 여 행 “아빠, 대학교 1학년 마치고 군대 갔다 와야겠어요.”아들 입에서 벌써 군대 이야기가 나온다. 그만큼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말이겠지? 휴우….이러다가 몇 해 지나면 장가가고 곧바로 할아버지 말 나오는 건 아닌지…“군대라~~ 음 다녀 와야지.” 어떤 때는 가끔 지금도 군인 아저씨란 표현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데 아들이 입영이라니… 입영 날짜를 2주 정도 앞두고 아들과 뭘 할까 생각하는데 아내가 아이하고 군대 가기전에 말 좀 많이 하란다. 그래 그동안 병원에 회사에 정신없이 사느라 아들하고 깊은 대화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작심하고 술, 안주 준비하고 아들을 불러 앉혔다. 무슨 말을 하지? 군대이야기? 솔직히 군대 생활이라고는 영천 3사관학교와 군의 학교 통틀어서 3개월이 전부인데 딱히 군대란 이런거다 라고 별로 할 말도 없다. 애써 화산 유격장 이야기를 부풀려 해보지만 별로 먹혀 들지 않는 눈치다. 여자 친구 이야기? 미래이야기? 좀 어색하다. 아들과의 진지한 대화가 어색하다니… 내가 이런 아버지가 되어있었구나… 일단 술만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취해서 골아 떨어졌다. 여행을 가자! 마침 구정 연휴가 있
제1622번째 깊게 자리잡은 필리핀 봉사체험 문득 본과 3학년 때 떠났던 러시아 의료봉사활동이 생각이 납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선배 선생님들을 따라 덜컥 따라나섰던 그 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까다로운 입국심사 때 등 뒤에서 흘러내렸던 식은땀 한줄기, 4평 정도의 조악한 공간 속에서 낡은 핸드피스를 들고 열심히 진료하시던 선배님들, 그리고 그 옆에 잔뜩 긴장한 채 어설픈 원내생 포즈로 석션을 잡고 서있던 저, 아무리 번호표를 쥐어주며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해도 문 옆에 다닥다닥 서서 기다리던 아이들…당시에는 너무나 힘이 들어서 머릿속이 새하앴는데 지금은 이렇게나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역시 그날의 경험이 피가 되고 살이 되기는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선배 치과의사 선생님들을 따라 다시 한번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필리핀의 나보타스시였습니다. 필리핀에 입국한 첫날, 나보타스의 해상판자촌을 견학하게 됐습니다. 비가 온 것도 아닌데 시멘트 바닥이 흙탕물로 흥건합니다. 저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운동화에 흙탕물이 튈까봐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그러다 해상판자촌으로 이어지는 좁고 기다란 통로를 보고는 그만 아연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