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나의 클래식 벚꽃이 만개한 4월의 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차이콥스키의 ‘로코코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하던 일을 멈추고 연주에 빠져들게 한다. 한 주제로 어떻게 그렇게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것인지… 높고 낮은 첼로 선율이 부드럽고 포근하게 나를 감싸 안아줘 지쳤던 내 몸과 마음에 위안을 주고, 연주의 감동을 통해 나는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초등 꼬마 때부터 애어른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던 나는, 왠지 남달라 보이고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클래식이 좋았다. AB형의 독특한 기질이 발현된 것일까? 그 막연한 호기심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KBS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를 본 후 바로 불타오르는 클래식 사랑으로 이어졌다. 연주 관람은 음악 전공이셨던 담임선생님의 숙제였고, 그 사건을 통해 내 인생에 수많은 인연들이 생겨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음악에 첫 발을 디디게 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클래식에 관심이 생기면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었지만, 당시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이셨던 아버님의 월급으로 삼남매가 자라던 우리 집 환경으로서는 악기를 구입해 개인레슨을 받는다는 건 무리한 일이었다. 중 3때 독학으로 클래식 기타를 익혀서 연주도 했었지만,
제1546번째) 스물일곱 살 치과위생사 임상 수련기 27세, 치과위생사 3년차, 임상경력 3개월째. 이것이 저의 간단한 소개입니다.‘처음 임상하면서 느낀 점이나 에피소드’라는 주제의 글을 의뢰받고 임상에 갓 나온 새내기이면서 나이는 조금 먹은 저는 한참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은 아는 것 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고, 배울 것이 많은 제가 감히 느낀 점과 에피소드를 쓴다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사무직으로 2년을 근무하고, 임상으로 전환해 좋은 치과에(나이 먹은 새내기도 받아주신다는 감사한 치과) 취업해 근무한지 이제 3개월. 학생 때 실습복을 꺼내 입고 몇 년 만에 스케일러를 잡았을 때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환자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작은 신음에도 심장이 쿵 떨어지고 손에 땀이 차오르는 그 느낌은 2학년 때 처음 환자를 봤을 때처럼, 아니 그보다도 심했습니다. 30번대 구치부 prep assist는 왜 그리 불편한 건지, 원장님과 부원장님 진료방법이 다른 것들은 왜 그리도 헷갈리던지, 레진·bonding·cement 종류는 또 어찌나 많던지…. 뿐만 아니라 지난 몇 개월 trimming하면서 치아까지 살짝 날아간 s
제1545번째 그림과 나 (하) <지난호에 이어 계속>어느 날 나는 건강을 위해서 스포츠 댄스학원을 갔다. 운동량이 많아서 건강에 매우 좋은 줄 알고 학원을 방문했다. 잠시 머물러 관람을 했다. 언감생심 택도 없는 일이었다. 그 빠른 동작을 소화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슬그머니 학원 문을 닫고 나왔다. 진료실로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람이 해서 안 되는 일이 없는 건데…오기가 생겼다. 학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무작정 등록을 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깐. 그 뒤 나는 8개월에 걸쳐 56번코스를 완전히 마스터 했다. 동작 빠른 사람은 한 두달이면 되는 것을, 노인이 뒤늦게 춤을 배우겠다고 하는 것이 웃음거리요, 굼뜨는 동작으로 서투름을 보이는 것은 더욱 웃음거리다. 그러나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앞에서는 안되는 게 없는 것이다. 나는 인생살이가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같은 라인센스를 갖고도 경영의 성패에 차이가 난다. 문제는 자기 현실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고충에 대한 극복의지에 따라 성공과 실패로 달라지는 것이다 그림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동기동창화가 선생님한테서 동기동창 여러 명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가 중도
제1544번째 그림과 나 (상) 창밖에 싸락눈이 내린다. 입춘이 지나고 내일모레면 구정이 돌아오는데 아직도 겨울날씨는 차갑고 쌀쌀하다. 세월은 정말 빠르다. 뒤돌아보면 엄청나게 먼 길을 돌아와 버린 느낌이다. 저무는 고갯마루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가. 현실에 질척거리며 따라 오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훌쩍 떠밀려 와 버린것이다. 나는 숨을 쉬고 있는 것인가? 내 심장은 뛰고 있는 것인가? 아직도 나는 향기를 갖고 있는 것인가? 청춘은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가 갖고 있는 마음이라 했다. 희망, 꿈, 용기와 도전정신 이런 것이 있으면 그는 청춘인 것이다. 나이가 10대라하더라도 가슴속에 그런 게 없으면 그는 늙은이인것이다. 나에게는 내 나름의 위안이 있다. 내 인생에서 나와 함께 해온 그림은 내 꿈과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해준 유일한 나의 위안이요, 행복이었다. 나의 어렸을 적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치과의사란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지금까지 치과의사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살아왔다. 후회는 없다. 화가가 되면 배고플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선택의 길이 달라졌지만 내 가슴속에는 항상
제1543번째 ‘아이아스’는 이렇게 말했다(하)-전생 이야기 <지난호에 이어 계속>그대의 죄를 징치하는 날. 전에 없이 차가운 표정으로 그대의 스승이 말했다.걱정하지 마라, 이건 너의 죄를 묻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요즘 가장 명망 높은 무사이자 시인이자 닌자인 그대를 모시고 한 수 가르침을 받기 위한 자리니라. 여기 당대 최고의 닌자와 유학자들이 와 계신다. 오늘 그대의 검, 닌술, 시를 평가할 것이다. 단 한가지라도 수습의 단계가 넘었다는 것이 인정된다면 그대는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물론 다시 도장을 열어도 좋고 이름을 바꾸고 떠돌면서 혹세무민을 하는 것도 그대의 자유다. 단 세가지 모두 수습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 문파의 뜻에 따라야 한다. 먼저 그대 앞에 벼루와 붓이 놓여졌다. 어떤 것이든 자신 있는 시 한수만 쓰면 되는 상황. 이전의 그대라면 일필휘지로 젊은이의 기개를, 사랑의 서러움을, 세상의 아름다움을 써 나갔을 테고 수습 이상의 평가는 너무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그대의 눈은 세파에 찌들어 탁해져 있었고 그대의 가슴은 굳어있었다. 무거운 팔로 간신히 운율만 맞춘 그대의 시를 읽어 내려가자 글자를 아는 모든 이들은 박장대소 했다
제1542번째 ‘아이아스’는 이렇게 말했다(상)-전생 이야기 기뻐하라. 가련한 자여. 오늘은 그대에게 그토록 그대가 알고 싶어 하던 것 중 하나를 이야기 해주러 아이아스가 왔다. 가르쳐 주지 않으면 호기심에 좀이 쑤셔서, 이야기 하고 나면 더 알기 위해 어차피 일상에 성실할 수 없는 그대의 모습에 이제 아이아스도 지쳤다. 차라리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해 주리라. 학문에 대한 탐구열이 아닌 어린 아이의 단순한 호기심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다그쳐 봐야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기에 그대가 알아서 깨닫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 어처구니없이 많고 많은 그대의 호기심 거리 중 오늘 아이아스가 해 줄 이야기는 그대의 전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가지만 약속 한다면 더 이상의 서론 없이 얘기로 넘어 가겠다. 일단 이야기가 시작 되면 그 어떤 가슴 아픈 일이 있더라도 그대는 절대 귀를 막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그대에게 주는 아이아스의 유일한 숙제이다. 그대는 전생에 일본에 살았다. 무도관에서 인증한 자격이 있는 무사이자 시인, 닌자 이기도 했다. 그 어떤 주군도 섬기지 않고 특별한 소유도 꿈꾸지 않는 떠돌이 무사, 그것이 전생의 그대였다. 어려서부터
방글라데시 의료 봉사를 마치며 종종 TV, 잡지에 기부를 하거나,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면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 이야기인듯 무심코 넘어가곤 했다.그런 나에게 전남대 치과대학를 다니면서 들어만 봤던 BMA 방글라데시 의료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의과 순회진료, 치과 순회진료, 문화 사역, Cleft 수술팀 등 4가지 팀으로 참여하는 BMA 방글라데시 의료봉사팀 중 Cleft 수술팀의 일환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수술팀 일환으로 cleft 수술, 방글라데시 치과대학 임플랜트 세미나 준비를 하면서 들기 시작한 봉사에 대한 설렘은 2월 11일 싱가포르로 떠나는 비행기안에서 낯선 곳에 대한 걱정과 봉사에 대한 기대로 변해 있었다. 11일 밤 싱가포르를 통해 방글라데시서 수도인 다카 공항에 도착, 숙소인 꼴람똘라병원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 후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있을 수술 준비를 하고 밤 늦게 잠자리에 들면서 뭔가 모를 뿌듯함에 빠져들었다. 의과 순회진료, 치과 순회진료, 문화 사역이 한국 대사관, 교회, 현지인 마을에서 한국인과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직접 만나 진료를 시행했으며 또한 여러 의료봉사팀 중 유일하게 한국 대
동기예찬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언제나처럼 약간의 긴장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서서히 움직이던 기체가 가속을 내며 거대한 몸통을 하늘로 들어올렸다. 드디어 이륙이다. 얼마 후 기체가 안정을 찾을 무렵 이상하게 내 두근거림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간밤의 술 때문인가? 울렁거림을 진정시키려 눈을 감았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 그렇다 내 몸은 그렇게 시간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졸업 20주년 행사장인 제주 라마다 호텔에 도착해 그리웠던 교수님들, 우리 동기들, 현 동창회장이신 허영구 선배님과의 벅찬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아! 이 감격! 이제서야 나는 기내에서의 두근거림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리운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설레임이었으리라. 4월 17일 제주 라마다 호텔은 거대한 타임머신 캡슐을 타고 온 단대치대 5기 동기들과 교수님들이 어우러진 1980년대의 안서호 교정이었다. 교수님 한분 한분이 도착하실 때마다 모든 학생들이 진정어린 인사와 덕담을 나누고 오랜만에 만난 동기끼리는 그 동안의 안부를 묻고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그 자체였다. 그중에는 간간이 봐오던 다른 동기
구강보건 정책 변화의 필요성 ‘갈관지’에는 중국 전국시대의 명의 편작(編鵲) 삼형제에 대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위나라의 왕이 당대의 유명한 의사인 편작을 불러, 의사인 편작의 삼형제 중에서 누가 가장 훌륭한 의사인가에 대해 물어보자 편작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큰형은 환자의 얼굴만 보고 병이 날것을 예상해서 원인을 제거해 줍니다. 둘째형은 환자의 병세가 미미할 때 알아채고 치료를 해줍니다. 하지만 본인은 환자의 병세가 심해져서야 치료를 해주기 때문에 세상에 명의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큰 형님이 가장 훌륭하고, 그 다음이 작은형, 본인이 가장 낮은 수준의 의사입니다.”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구강질환의 특성상, 현대의 치과의료에서도 예방이 가장 효율적이고 적극적인 치료라는 것은 여러 연구결과로 증명되어 있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질병의 원인을 조기에 제거하거나 질환의 초기 단계에서 치료를 했다가는 환자에게 과잉진료로 비난을 받게 되고, 정확한 진단을 위한 추가적인 검사와 방사선 촬영은 건보공단으로부터 삭감을 피할 수 없다. 구강건강관리의 홍보나 치과 예방치료를 위한 정책적인 준비가 타
제1538번째 어이 오 선상 작년 이맘때쯤 다리가 개통되었지만(2009년 3월 개통) 여전히 섬으로 불려지고 있는 이곳 소록도.다리 개통과 함께 한센인에 대한 편견도 극복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흡하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 봅니다. 다들 봄 꽃 구경 등 다양한 행사와 황사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 때문에 떠들썩하지만 이곳은 너무나도 조용하고 꽃향기만 봄바람에 날려 오고 있습니다. 저의 원생들은 마냥 소록도에 구경 온 사람들을 보는 낙으로 하루하루 생활을 하고 있으며, 꽃 구경은 생각지도 못 한답니다(지천으로 꽃은 피어있지만 눈들이 없거나 희미하게 보여서) 벌써 4월의 중순인데도 이곳은 바람이 매우 차갑게 불어 옷을 여며야 하는 날씨입니다. 또한, 4월까지 보일러를 켜고 자도 등짝은 사하라 사막인데 얼굴은 시베리아라는 이곳 특유의 계절이 있는 곳입니다 저에게 축의금으로 거금(3천원, 1997년)을 주시고 천국에 가신 할머니 한 분(조복근 할머니)을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보통 밖에 계시는 87세의 어느 할머니와 다를 바 없는 너무나도 평범하시고, 세상 사람들 걱정하시며, 매일 기도하고, 천국
제1537번째 연애하기(하) <1829호에 이어 계속> 옛 애인의 전화 그리고 절규 나에겐 오래된 애인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의 청춘과 열정을 불살랐던 애인이다. 그 옛 애인이 최근에 전화를 했다. 나는 설레이는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뛸 듯이 기뻤다. 두근두근하기고 하고 흥분되기도 했다.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가 되었다. 전화내용은 이러하다. 다시 한번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고 한다. 가끔은 생각나기도 하고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그 열정이 사라질 뻔하고 있었는데… 참 다행이다. 나의 젊음을 뜨겁게 했던 그 장소-연구실은 얼굴이 바뀐 상태였다. 예전에는 별관이라고 해서 기초연구동이 학교본관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행정실과 강의실과도 많이 떨어져 있어서 동선이 길었다. 멀어서 불편하기도 했지만 왕복하며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운동도 되곤하였다. 그래서 별관 연구실에 있을 땐 따로 운동이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실험연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치과재료와 생체의료공학에 관심이 많았다. 저널을 보고 실험구상을 하고 새로운 재료를 탐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