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6번째
추억 속의 보스톤 (하)
7마일(46분59초)…9마일;1시간01분11초 15km통과시간;1시간03분28초 점점 속도가 떨어진다. 어차피 3시간30분을 목표로 했으니, 지금부턴 즐기며 뛰기로 마음먹으니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편했다. 15km를 지나니 장애인 마라토너인 김영갑 님이 걸어간다. 주변에서 얼음을 받아 목에 대주며 괜찮냐고 물어보니 배가 아프다고 한다. 2시간40분대 주자도 레이스에 실패하면 걷는 것을 실감하며 힘내라고 하며 뛰어간다. 장애인 1등을 목표로 왔는데 안타깝다.
10마일;1시간08분28초(7분5초/마일) 11마일;1시간15분44초(7분15초/마일) 12마일;1시간22분57초(7분12초/마일) 20km통과시간;1시간26분12초(13.92km/h)
20km를 지나면 대회의 하일라이트(?)인 웨슬리여대를 지나가게 된다. 이 학교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이화여대라고 할 수있는데, 미국의 사립명문으로 힐러리나 정몽준회장의 부인이 나온 학교로 꽤 유명한데, 이것보다는 2km에 이르는 길가에서 여학생들의 광적인 응원이 끝내준다고 가이드가 설명을 해줘 무척 궁금하고 설레였다.
길 중앙에 뛰기보다는 여학생들이 응원하는 길옆으로 뛰는데 응원이 장난이 아니다. 흡사 오빠부대처럼 소리를 지르고 윙크하고 손으로 키스를 보내며 난리부르스다. 아~좋다.
앞에 가던 키가 큰 백인이 갑자기 여학생들 사이로 뛰어 들더니 포옹을 하고 프렌치키스를 하는게 아닌가…부럽다…주변에서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는데, 한10m쯤 가더니 또 자기 마음에 드는 여학생한테 가서 똑같은 짓(?)을 한다. 무려 5번이나. 우리 정서상 양반이 이런 짓은 하기 뭐하고 부러워 구경만하고 뛰었다.
길가에는 우리를 보고 ‘간빠레’하며 응원하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자기들은 친근감의 표현이지만 난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I am korean"이라고 큰 소리치며 뛰어 가지만 응원하는 한인들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는데, 20km를 넘어 한 할아버지가 직접 손으로 그린 태극기를 들고 서 계시길래 ‘한국 화이팅’을 외치니 참 좋아하신다. 이런게 애국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감격스러워 코끝이 찡하다.
13마일;1시간30분20초, 하프통과시간;1시간31분06초 25km까지도 조그만 언덕을 오르내리는 코스인데, 25km지점에 가면 파워젤 코너가 있어 양옆으로 미인들이 일렬로 서서 각양각색의 파워젤을 들고 나눠준다. 이런 모습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또한 길중앙에 자원봉사자가 서서 ‘바세린’하며 바르고 가라고 외치고 길가에는 2000여명의 의사들이 나와, 조금만 주저앉아도 바로 달려나오는 모습에서 많은 걸 느꼈다.
대회중심이 아닌 참가자 중심의 대회운영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점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 대회때마다 인명사고가 나는데, 이런걸 벤치마킹하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데…
14마일;1시간37분45초(7분24초) 25km통과시간;1시간49분23초 16마일;1시간52분42초 17마일;2시간00분46초(8분03초/마일) 18마일;2시간09분05초(8분19초/마일) 30km통과시간;2시간14분10초(13.41km/h) 25~30km지점에 이르니 시차문제로 인해 머리가 갑자기 멍하고 어지러워 속도가 뚝 떨어진다.
이럴땐 주변경치를 보며 생각을 밝게 하는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주변 집들은 한폭의 그림같다. 예쁜집에 잔디가 있는 정원이 있고 그안에 바베큐 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놓았는데, 살고 싶을 정도로 부럽다. 30km를 지나면 상심의 언덕, 심장파열의 언덕(heart break hill)이 나타난다.
전날 버스를 타고 볼때는 호미곶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언덕으로 생각했는데, 뛰어보니 그 경사가 심하진 않지만 길기 때문에 뛰어가다 이젠 다 왔겠지 하고 올려다 보면, 아직도 많이 남아있어 정말 힘들었다.
모두들 걷고 있어 같이 걸어가고 싶지만 보스톤에 와서 걷고 싶지는 않아 악으로 깡으로 이를 악물고 뛰어 올라갔다.
한참 가다보니 100회의 유니폼이 있어 보니 동욱이다…걷고있었다. 뒤에서 어깨동무를 해주며 “동욱아 가자" 했더니 “형 서브-3는 물건너 갔으니 형이랑 같이 갈래요" 한다. 등을 밀며 “넌 100회의 대표인데, 서브-3는 못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며 억지로 등을 밀었다. 힘들지만 뛰어가는 동욱이의 등을 보니 든든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곳에서 신기록을 세울려고 열심히 연습했는데, 좌절하는 모습에서 많이 안타깝다. 그렇지만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동욱이의 멋진 성공을 기대한다.
너무 더워 온몸에 물을 뿌려보지만 1km만 가면 금방 말라 뛸때마다 주변의 물만 눈에 띠니 흡사 물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같다. 그중에 진짜 오아시스는 아이들 손에 들려진 아주 얇은 쭈쭈바인데 그맛이 진짜 끝내준다. 거기에 비타민C까지 들어 있어 먹으니 힘이나고 정신이 번쩍든다.
19마일;2시간17분04초 20마일;2시간25분29초 21마일;2시간34분04초 35km통과시간;2시간39분40초
이제부터는 보스톤 시내로 들어선다. 다운타운가를 향해 달려가니 응원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 주위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럽다. 이곳에서 멋진 추억을 하나 만들고 싶어 비행기가 좌우로 날듯 양손을 벌려 위 아래로 흔들며 갔더니 난리가 아닐 정도로 호응이 좋다. 이런 것들이 선수와 관중들의 하나된 모습이 아닐까 한다.
이제 마지막 언덕인 보스톤 레드삭스 구장을 지나는 언덕만 넘으면 되는데, 이 구장은 김병현 선수가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고 선수생활을 했던 곳으로 건물 외관이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고 외야펜스 상단에 커다란 코카콜라 모양이 있는게 특이했다.
드디어 마지막 언덕을 넘고 중심가로 접어드니 엄청난 사람들로 인해 힘이 난다. copley square를 지나 드디어 저 앞에 골인 지점이 보인다.
마지막 힘을 다해 드디어 골인…
23마일;2시간50분01초 24마일;2시간58분04초(8분03초) 25마일;3시간05분(6분56초) 40km;3시간06분17초 42.195km;3시간16분07초(건타임;3시간17분19초)
전체순위;977등, 성별순위;915등, 연대별순위;647등
성적은 크게 생각하고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잘 달렸고 마라토너라면 누구나 한번쯤 달리고 싶어하는 보스톤대회을 무사히 완주했다는게 너무나 감개무량하다. 온몸에 젖산이 쌓여 근육에 경련이 오고 왼쪽 가슴에 통증이 왔지만 골인 지점에서 기다려 준 사랑하는 로사를 보니 눈가에 눈물이 핑돈다. 골인 후에는 완전히 선수들을 위한 잔치 분위기다.
골인지점에는 일반인은 들어 올 수 없게 라인을 쳐놓고, 완주자들만이 그 넓은 광장을 사용하는데 발판이 있어 발을 올려 놓으면 자원봉사자들이 전자칩을 손수 풀어주고 골인지점 옆에 휠체어가 택시승강장처럼 쭉 늘어서 있다가, 완주자가 조금이라도 아파하면 즉시 와서 싣고 가는 모습, 그리고 저체온증에 대비해 완주자들에게 일일이 비닐 옷을 입혀주고, 넓은 광장안에는 사과부터 요플레, 던킨도넛, 물, 이온음료 등을 잔뜩 쌓아놓고 마음껏 먹으며 피로를 풀수 있도록 해 놓았다.
또한 자원봉사자들이 “good job" 하며 등을 두드려주고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등 진정한 영웅처럼 대해주니 오히려 몸둘바를 모르겠다. 비록 몸은 지치고 힘들었지만 완주 후에 바라본 보스톤의 하늘은 너무나 맑고 깨끗함 그 자체였다.
인생의 오랜 여정속에 내가 원하던 자그마한 꿈을 이루었다는 자긍심과 뿌듯함으로 눈가를 타고 흐르는 눈물이 가슴속 깊숙히 따스하게 흐르고 있었다.
김창욱
가브리엘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