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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닐다 기자들의 BOOK 리뷰] ‘젊음’의 추억이 없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책과 노닐다

기자들의 BOOK 리뷰

 

‘젊음’의 추억이 없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두든두근 내 인생’ / 김애란 지음

 

나이는 열일곱, 몸은 여든살
아름이의 유쾌하고 슬픈 투병기


아버지는 자기가 여든살이 됐을 때의 얼굴을 내게서 본다. 나는 내가 서른넷이 됐을 때의 얼굴을 아버지에게서 본다.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냐고.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펑펑 울 수 있는 소설을 읽고 싶다면 추천한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책을 들었다. 


김애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열일곱 아빠, 엄마의 철없는 사랑으로 태어난 한아름. 아름이는 조로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다. 누군가의 한시간이 아름이에겐 하루와 같고, 다른 이의 한달이 아름이에게는 일년과 같다.


아빠가 자신을 낳았던 나이 열일곱살이 된 아름. 아름이에게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18살 생일을 맞는 것이다.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단순하다. 늙는 병을 가진 아름이가 부모와의 이별을 준비하며 아빠, 엄마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마지막 선물로 남긴다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아름이의 유일한 친구인 옆집 장 씨 할아버지와의 우정, 인터넷 메일을 통해 알게 된 소녀와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 등이 곁들여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크고 작은 반전과 함께.


언뜻 보면 희귀병 환자의 죽음을 다룬 진부한 소재지만 작가는 아름이란 인물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신체적인 병약함이란 결핍 속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로 인생의 의미를 얘기한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에 특유의 낙천성을 부여해 심각한 순간 예상치 못한 반응으로 웃음을 이끌어 내며 이야기를 시종 유머러스하게 이끌어 가는데, 캐릭터의 희극성이 비극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는 작법 공식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인다.  


이 소설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인 ‘젊음’의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주는데, 이는 젊음을 활용하고 개발해 내라는 숨막히는 메시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즐기라는 소박한 조언으로 다가온다. 


때론 싸우고 보기 싫은 가족이라도, 때론 아픔만 남기는 연인이라도,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친구라도 생의 마지막 순간엔 정말 단 하루라도 더 살아서 보았으면 하는 후회로 다가올 것이므로.


30대 초반의 김애란은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류작가로 어딘가 결핍이 있는 가족, 단절된 사람들 사이의 소통의 문제를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으며 재치 있는 문체로 삶의 의미를 다뤄왔다.  


최근에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는데, 그에게 최근 최연소 이상문학상을 안긴 ‘침묵의 미래’나 올해의 젊은 작가상을 받게 한 ‘물속 골리앗’ 등 조금만 찾아보면 접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단편들이 많이 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모처럼 읽기 쉽고 재미있는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준 작품으로 진료 중간 쉬는 시간에 읽기 좋을 듯하다. 다 읽은 후엔 자녀나 스탭에게 추천해도 부족함이 없을 듯.


우리는 생의 마지막 순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남길까. 아름이가 남긴 말이 궁금하다면 독서를 권한다.


전수환 기자 parisien@kd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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