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예찬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언제나처럼 약간의 긴장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서서히 움직이던 기체가 가속을 내며 거대한 몸통을 하늘로 들어올렸다. 드디어 이륙이다. 얼마 후 기체가 안정을 찾을 무렵 이상하게 내 두근거림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간밤의 술 때문인가? 울렁거림을 진정시키려 눈을 감았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 그렇다 내 몸은 그렇게 시간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졸업 20주년 행사장인 제주 라마다 호텔에 도착해 그리웠던 교수님들, 우리 동기들, 현 동창회장이신 허영구 선배님과의 벅찬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아! 이 감격! 이제서야 나는 기내에서의 두근거림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리운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설레임이었으리라. 4월 17일 제주 라마다 호텔은 거대한 타임머신 캡슐을 타고 온 단대치대 5기 동기들과 교수님들이 어우러진 1980년대의 안서호 교정이었다. 교수님 한분 한분이 도착하실 때마다 모든 학생들이 진정어린 인사와 덕담을 나누고 오랜만에 만난 동기끼리는 그 동안의 안부를 묻고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그 자체였다. 그중에는 간간이 봐오던 다른 동기
구강보건 정책 변화의 필요성 ‘갈관지’에는 중국 전국시대의 명의 편작(編鵲) 삼형제에 대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위나라의 왕이 당대의 유명한 의사인 편작을 불러, 의사인 편작의 삼형제 중에서 누가 가장 훌륭한 의사인가에 대해 물어보자 편작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큰형은 환자의 얼굴만 보고 병이 날것을 예상해서 원인을 제거해 줍니다. 둘째형은 환자의 병세가 미미할 때 알아채고 치료를 해줍니다. 하지만 본인은 환자의 병세가 심해져서야 치료를 해주기 때문에 세상에 명의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큰 형님이 가장 훌륭하고, 그 다음이 작은형, 본인이 가장 낮은 수준의 의사입니다.”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구강질환의 특성상, 현대의 치과의료에서도 예방이 가장 효율적이고 적극적인 치료라는 것은 여러 연구결과로 증명되어 있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질병의 원인을 조기에 제거하거나 질환의 초기 단계에서 치료를 했다가는 환자에게 과잉진료로 비난을 받게 되고, 정확한 진단을 위한 추가적인 검사와 방사선 촬영은 건보공단으로부터 삭감을 피할 수 없다. 구강건강관리의 홍보나 치과 예방치료를 위한 정책적인 준비가 타
제1538번째 어이 오 선상 작년 이맘때쯤 다리가 개통되었지만(2009년 3월 개통) 여전히 섬으로 불려지고 있는 이곳 소록도.다리 개통과 함께 한센인에 대한 편견도 극복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흡하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 봅니다. 다들 봄 꽃 구경 등 다양한 행사와 황사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 때문에 떠들썩하지만 이곳은 너무나도 조용하고 꽃향기만 봄바람에 날려 오고 있습니다. 저의 원생들은 마냥 소록도에 구경 온 사람들을 보는 낙으로 하루하루 생활을 하고 있으며, 꽃 구경은 생각지도 못 한답니다(지천으로 꽃은 피어있지만 눈들이 없거나 희미하게 보여서) 벌써 4월의 중순인데도 이곳은 바람이 매우 차갑게 불어 옷을 여며야 하는 날씨입니다. 또한, 4월까지 보일러를 켜고 자도 등짝은 사하라 사막인데 얼굴은 시베리아라는 이곳 특유의 계절이 있는 곳입니다 저에게 축의금으로 거금(3천원, 1997년)을 주시고 천국에 가신 할머니 한 분(조복근 할머니)을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보통 밖에 계시는 87세의 어느 할머니와 다를 바 없는 너무나도 평범하시고, 세상 사람들 걱정하시며, 매일 기도하고, 천국
제1537번째 연애하기(하) <1829호에 이어 계속> 옛 애인의 전화 그리고 절규 나에겐 오래된 애인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의 청춘과 열정을 불살랐던 애인이다. 그 옛 애인이 최근에 전화를 했다. 나는 설레이는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뛸 듯이 기뻤다. 두근두근하기고 하고 흥분되기도 했다.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가 되었다. 전화내용은 이러하다. 다시 한번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고 한다. 가끔은 생각나기도 하고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그 열정이 사라질 뻔하고 있었는데… 참 다행이다. 나의 젊음을 뜨겁게 했던 그 장소-연구실은 얼굴이 바뀐 상태였다. 예전에는 별관이라고 해서 기초연구동이 학교본관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행정실과 강의실과도 많이 떨어져 있어서 동선이 길었다. 멀어서 불편하기도 했지만 왕복하며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운동도 되곤하였다. 그래서 별관 연구실에 있을 땐 따로 운동이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실험연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치과재료와 생체의료공학에 관심이 많았다. 저널을 보고 실험구상을 하고 새로운 재료를 탐구하는
제1536번째 연애하기 (상) 요새 주변에서 후배나 친구들이 술좌석에서 묻는다. “무슨 재미로 사세요” 라고. 취기에 하는 얘기라서 그냥 흘려버리기가 대부분이다. 근데 최근에 집요하게 묻는 후배들이 늘어났다. 속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요새 경기가 좋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후배가 볼 때 내가 얼마나 심심하게 사는 선배로 보여서 그럴까? 내가 참 한심하게 보이는가 보다 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내가 선배로서 본받을 만한 것을 보여주지를 못했나하고 자책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후배였을 때에도 선배원장님들을 보면서 참 재미없고 단순하게 산다고 생각했다. 그 선배들의 삶이 다소 지루하게 보였다. 아니 어쩌면 다들 비슷 비슷하게 사는 것 처럼 보였다. 치과 진료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다양한 취미나 봉사활동 대외적 활동을 하면서 다소 다른 삶을 산다 해도 어쨌든 비슷하다. 크게 성공하거나 실패한 선배들일지라도 노후의 삶이 그저 그런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페이닥터 시절에 고민을 참 많이 하게 된다. 개업을 해서 선배들의 지나간 삶을 비슷하게 살 것인가하면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단조로운 삶을… 몇몇을 그 단조로움에
새로운 만남들… 우연치 않게 일본으로 연수를 다녀왔다.6개월이란 단기연수였지만 나에게는 즐거운 추억들과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게 된 행복한 시간이었다. 여행으로 회사업무로 일본을 몇 번 오갔던 적은 있었지만, 6개월이란 시간을 일본에서 여행이 아닌 생활을 하는 경험은 처음인지라 가기로 결정하기 까지 많은 고민을 했었지만, 앞으로 이런 기회가 나에게 또다시 찾아올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무모하지만 연수를 가기로 결정을 했다.처음 일본에 도착한 날은 정말 여행간 것처럼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막상 월요일이 되어 첫 출근을 하면서부터는 모든 것이 달랐다. 아~정말 여기서 6개월을 살아야 하는구나!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등등온갖 고민거리들이 내 머리 속으로 파고들었다.한국에서 일본어를 조금 공부하고 갔었지만 타국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참 많이 달랐다.한국 사람이 아무도 없고, 한국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곳에서 모든 생활을 일본어로 해야만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힘들었다. 정말 나도 모르게 한국이 그리워지고, 애국심이 절로 생겨났다. 그래도, 어떻게든 무사히 적응해서 잘해나가야겠다는 생각과 나로 인해 모든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좀 더 적극적으로 만나는
Relay Essay 제1534번째 섬집아기의 사모곡(思母曲) 최치원서울 최치원치과의원 원장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가면 아기가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도 라디오를 켜놓고 나홀로 운전족이 되어 한강을 넘어 출근을 하고 있는데 스피커에서는 ‘섬집아기’가 흘러나온다. 여자가수가 애잔하게 부르는 이 노래는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들어왔던 동요이지만 오늘따라 더욱 절절하게 내 마음속 깊이 파고들며 나의 눈과 마음을 감상에 젖게 한다. 동호대교위에서는 새무리가 멋진 편대를 이루어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제일 앞선 놈 뒤로 삼각자로 잰 듯 정확하게 ‘V’자를 이루는 새무리가 장관이다. 제일 앞장선 새 한 마리는 뒷새들이 편히 비행할 수 있도록 상승기류를 만들어주느라 아주 힘이 세고 영리한 리더가 이끌어간다고 한다. 과연 이 놈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많은 녀석들을 이끌고 어디로 머나먼 비행을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우리 가족을 이끌어주셨
7박 8일간의 캄보디아 봉사 김태우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 캄보디아는 1863년 프랑스의 보호국이 된 이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가 됐다. 1940년 일본에 점령되었고 일본 패전 후 1947년 5월 프랑스연합 내의 한 왕국으로 독립을 획득하였으며, 1953년 완전한 독립을 이뤘다. 1975년에 폴포트(Pol Pot)가 이끈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 시절에 잔인하고 무자비한 반대파 학살이 이루어져 150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비극을 품고 있는 나라이다. 진료를 하였던 캄퐁레잉 군청(Kompong Leng District Hall)과 뜸락꺼꼬 마을은 전기가 오후 6시에서 10시까지만 제한 공급되고 수도도 없이 빗물을 받아 샤워하고, 펌프를 해서 물을 길어 먹는 위생이 아주 열악한 동네였다. 아이들 중에도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경우는 매우 형편이 좋은 아이라 할 수 있었다. 이동식 엔진을 3대, 스케일링 1세트, 발치 1세트 등 유니트 5대를 준비해 갔지만, 전기 사정이 나빠서 모두 사용을 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발전기를 임대해서 사용하였으나 전류가 불규칙해서 인지 가져간 이동식세트는 한번도 사용 못했다.
제1532번째 보스톤 마라톤대회의 추억(하) <지난호에 이어>보스턴 마라톤의 최대 볼거리 중 하나는 하프지점인 Wellesley에 힐러리 등 미국 유명 여성인사들이 나온 Wellesley 여자 대학의 여대생들의 열광적인 응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시나 아무 생각 없이 달리고 있을 무렵 언덕 저편에서 여자들의 발광 소리가 들려 거의 하프 지점에 근접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비명과 함성을 지르며 손을 내미는 끝도 없이 늘어진 여대생들의 행렬은 정말 장관이었지만 말로만 듣던 “Kiss Me”라고 쓴 여대생은 찾을 수가 없어 사심을 버리고 계속 페이스를 유지하기로 했다. (하프: 1시간 27분 27초) 춥지만 비가 그쳐 다행히 이런 볼거리도 빠지지 않았고 거리에 시민들이 양쪽 길가를 메우며 열심히 응원을 해준 덕분에 하프지점까지는 춥고 배고픈 느낌 외에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시간적인 여유를 느끼며 달릴 수 있었지만 25km에서 35km 구간까지 수도 없이 나타나는 길고 짧은 언덕에 25km 파워젤 스테이션에서 받은 파워젤 2개를 털어 넣어도 체력이 점점 바닥나게 되었다. (30km: 2시간 5분 49초) 이게 마지막일거라고 생각했던 언덕을 힘겹게 넘었더
제1531번째) Relay Essay 보스톤 마라톤대회의 추억(상) 박 성 진강남 차병원 교수 마라톤을 시작한지 4년만에 3월 동아 마라톤에서 써브3를 달성하고 한달 후 보스톤 마라톤에 참가했던 2007년 봄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보스톤 마라톤은 약 2만5000명이 참가하는 세계 최고의 대회로 1897년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애국자의 날인 매년 4월 셋째 주 월요일에 공식 개최되는데 참가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국제 공인 마라톤 대회에서 참가자의 연령별 참가기준 시간대 내의 기록이 있어야 된다. 2007년 제111회 보스톤 마라톤 대회의 나의 배번은 3249번.내가 너무 바랬던 게 많아서 그랬는지 대회 전날부터 강풍과 폭우가 시작되어 뉴스에서는 보스톤 마라톤 역사상 최악의 조건 속에서 달리게 될 것이며 저체온증이 우려된다는 메시지가 계속 나오고 있었고 대회 출발 후까지 정말 엄청나게 비가 내렸지만 일본도 아닌 머나먼 미국까지 와서 뛰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보스톤 마라톤은 직선 코스로 결승점은 도심 중앙부에 있고 이 부근에서 가족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은 노란색 스쿨 버스를 타고 출발지인 시골 마을
제1530번째 화산몽접(和山夢蝶) (하)- KBS 1박2일 시청자투어를 다녀와서 두번째 미션이 떨어지자 모두 뛰었습니다. “멤버 불러!” “주차장으로 와!” 하면서 조용하던 리조트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시청자 80명에 촬영팀 100여명이 이리저리 고함치면서 뛰면서 조용하던 리조트를 전쟁판으로 바꾸는 상상을 해보세요. 저희 열 명중 한 명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들 그사람 욕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되려 ‘XXXX’ 하면서 오는 겁니다. 로비에서 커피 마시다가 다들 뛰길래 저도 영문도 모르고 덩달아 뛰었고, 강호동 군이 “아버님 짐 가지고 오셔야 해요” 하길래 다시 2층 숙소로 뛰어 가는데 이상하더랍니다. 다들 빈 몸인데 나는 왜 짐을 가져가야 하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속았지요, 강호동 군에게요. 여기서 한가지 충격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저희 팀 59년생 역도부 OB팀원 호칭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MC몽 군은 형님이라고 하였지만 다들 ‘아버님’ ‘선생님’ 이라고 불렀습니다. 더 대단한 호칭은, 저는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어르신’이었습니다. 저희가 이렇게 되었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충격, 충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