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의 본업은 학술활동을 통한 해당 학문의 발전이다. 치과계에도 치의학회 산하에 30여 개 이상의 인준 학회가 있고, 인준을 준비 중인 학회도 있으며 학회로의 발전을 준비 중인 연구회도 다수 있다. 학회는 학술대회와 학회지 발간으로 대표되는 학술활동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며 해당 학문을 대표하는 플랫폼으로서 외부의 자문에 응하고 관련 산업과 소통하는 창구가 되며 관련 해외 학회와 교류의 통로가 된다. 즉, 학회는 이와 같은 학술 활동을 통해 이미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실천성을 강조한 의미의 “사회적 가치 혹은 사회 공헌”의 측면에서 학회의 역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사회는 시민단체만이 아닌 기업이나 대학도 그 본연의 역할을 넘어선 사회 공헌의 역할을 당연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활동을 홍보의 차원을 넘어선 본연의 역할을 확대, 발전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학에서 사회 공헌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통해 전공지식 구현과정을 교육할 뿐만 아니라 남을 섬기고 협력하는 리더십을 교육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령사회 및 초고령 사회의 대비를 위해 최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커뮤니티 케어 사업”에 학회와 지
참으로 우리나라는 놀라운 나라다. IMF 사태가 일어났을 때도, 놀라운 속도로 문제를 해결했고, 이번과 같은 범세계적인 위기 속에서도 세계가 놀라게 할 정도로 신속하게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아마 이것은 우리를 특징짓고 있는 몇 개의 키워드 중의 하나인 “빨리빨리”라는 성격 덕분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서두른다는 것은 부족함을 감수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어려움에 봉착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멋지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차피 어려운 상황이므로 현재의 상황보다는 나아질 수 있다는 바람 덕분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움에 대한 강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성취를 위한 조급함 덕분이었다. “빨리빨리”라는 우리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의 하나가 사람들의 조급함을 해소하는데 제격인 인터넷과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경제는 순환이 빠를수록 그 성장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욕구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서, 그것을 필요로 하는 곳에 연결 시키기만 하면 경제의 규모는 커진다. 그런 점에서 IT 강국이라는 사실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키워줄 것이 분명
대덕 치과(박병기)는 지역에서 어떤 Position인가? 대덕 치과(박병기)를 지역에서 어떻게 Positioning 할 것인가? 고민을 하였던가? 고민하고 있는가? 2016년 초 치과 앞 980세대의 주공 아파트가 2019 광주 세계 수영대회 선수촌으로 선정되었다. 건축된 지 40년이 넘는 저층 주공 연립아파트였기에 치과를 개원하고 10년이 지나서부터는 재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타지인들이 주로 소유하고 있다. 2019년 7월, 8월 수영대회 기간 선수촌으로 활용하고 대회를 마치면 6개월 정도의 리모델링을 거쳐 2020년 4월부터 1650세대가 입주한다. 지역에는 2개 치과가 서로 공존하고 있었다. 내 치과는 지역에서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하신 분들이 주 고객을 이루고 있다. 옆 치과는 주공 아파트 주민들이 주 고객을 이루고 있다.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되자 동네는 인적이 끊기며 빈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2016년 10월이 지나 아파트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이주를 시작 하자 옆 치과는 폐업을 하였다. 내 치과는 1993년부터 개업하여 기존 구환이 있어서 환자 수는 크게 줄지 않기에 2020년까지 버티기로 하였다. 2017년 1월 동료 치과원장의 권유로 P
올 봄은 미디어가 COVID-19와 일련의 선거들에 관련하여 너무도 빠짐없이 전해준 사실일지 모를 사실들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와 여론을 듣고 읽느라 바빴던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그 어느 때보다 世事에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았었나 싶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를 넘어 ‘내가 옳다! 너는 그릇되다!’를 서슴지 않고, 사실의 판단에 대한 기준도 애매모호하거나 심지어는 기준이 아예 없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말과 글들도 부지기수였다. 우리는 그 많은 말과 글들을 듣고 읽으며 떠올리고 머물렀다 사라진 생각들로 이 봄을 보내고 있다. 각자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떠나간 생각들은 다 사라져버린 듯해도 실은 그것으로 소멸된 것이 아니라, 그 흔적과 메아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또다시 다른 듯한 같은 말과 새로운 듯한 새롭지 않은 글을 열심히 만들고 이어가는 중이리라. 무릇 말이 생각이고, 또 그 생각의 주인들을 하나하나 존중해야 하겠지만, 너무나 많은 이들의 생각과 말들을 동시에 ‘무대’에 올리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이고 인간성이 존중되는 공동체의 목적지로 향해 가는 방법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1990년대 초 Information Overload 라는 신조
요즘 매일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다. 우리 병원 옆에 헬스장과 골프 연습장은 계속 휴업하고 있다. 우리도 쉬고는 싶지만 여러 여건상 쉽지가 않다. 코로나로 인하여 정부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2m 이상의 간격을 유지하라고 당부한다. 마스크 끼고, 페이스 쉴드도 쓰고, 환자들 체온을 재고, 코로나는 운명에 맡기고 조심스럽게 진료를 하고 있다. 하물며 코로나 환자들을 직접 담당하시는 의료진들은 얼마나 수고하실까. 이분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필자의 가훈인 ‘전화위복’에 의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의 “자극과 반응에는 공간(gap)이 있다”는 말이 기억된다. 자극은 같아도 반응은 누군가한테 다르다. 우리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의 위대함’으로 이성적으로 잘 대처하기를 기대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나 자신의 공부, 우리 가족과의 소통, 환경오염의 완화, 철저한 개인위생으로 독감의 감소 등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속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지난 30년 동안 세계가 너무나 급속하게 변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인간이 빠르게 성장하
이제는 유투브의 시대입니다. 책과 신문 등 지금까지 문자 위주의 정보가 주를 이루었던 시대가 지나가고 영상이 정보의 중심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책은 독자의 상상력을 이끌어 창의력과 사고력을 향상시키지만 영상은 구체적이며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들이 존재하는 사건들도 단편적으로 압축하고 단순화하여 때로 잘못된 길로 시청자를 이끌어 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영상들을 비판적 사고 없이 바라본다면 편향되고 왜곡된 시각을 가진 존재가 되어 버릴 가능성이 매우 큰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본질을 파악하는 역량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능력에 의존합니다. ‘검색보다 사색’이란 말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그 정보를 판단하는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말에 ‘보다’는 영어와 한자에는 각기 다른 여러 단어가 존재합니다. SEE는 구체적인 목적이나 의도가 없이 그저 눈에 들어오는 상태를 말합니다. 한자로는 “見”입니다. 길을 걸어가며 간판을 보거나(간판이 보이거나) 지나가는 사람을 보는 것은 신체적 감각기관인 눈으로 들어오는 시각정보인 SEE, 見 입니다. 멈춰 서서 그 간판을 유심히 바라보거나 그 사람을 쳐다보는 것은
며칠 전 읽은 인도 우화집 ‘신이 숨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라는 ‘류시화’님의 글 중에 ‘목발 없이 걷기’라는 단편을 읽고 요즘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하여 씁쓸한 웃음이 나오기에 소개하려 합니다. 〔옛날 인도의 이야기입니다. 숲으로 사냥을 나간 왕이 말에서 떨어지는 낙상 사고로 한쪽 다리를 못 쓰는 큰 부상을 당하여 왕명으로 자신의 불구를 인정할 수 없어 시민들에게 ‘모든 국민은 목발을 짚고 다니고 이를 어기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라는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곳에서 왕명에 대한 불만으로 목발을 거부하였으나 경찰과 군부대의 강권으로 차츰 모든 국민이 목발을 당연히 받아드리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다리를 다친 왕이 죽은 후에도 모든 국민은 목발로 생활을 하였습니다. 재미있게도 어려서부터 목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두 다리로 걸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죽음과 함께 강제 법령이 자연히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목발에 의존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망상으로 비난 받았습니다. 한편 왕명에 의한 목발의 부당성과 어리석음을 깨닫고 숲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현인이 있었는데 그는 가난하고 위험한 생활이었지만 목발에 의존하지 않
참으로 의미 있는 시기를 우리는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이 시대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대를 돌아 보면서 “참 그때가 좋았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대부분이 아닐까? 그런데, 그때 뭐가 좋았나를 생각해 보면, 솔직히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다. 내 생각에는 지금의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비교급으로 생각이 나는 것이, 경험한 과거의 기억이기 때문인 것 같다. 오래 전에 읽은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필립 얀시가 쓴 책인데, 사람은 고통을 받았다는 것은 기억을 하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정도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래서 과거의 고통을 잊었기 때문에 현재가 고통스럽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가 지금보다 좋았던 점들이 있다. 일반대중의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지금보다 좋았다는 사실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명분이 없으면 뒤로 물러나고, 나누는 마음을 미덕으로 생각하던 시대였다.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탐욕 때문이 아닐까. 인간의 본성에 가득 차 있는 이 탐욕 때문에 항상 요동을 치면서 역사가 지속되어 온 것
2014년 당시 내 치과는 2차로에 접해 있으면서 주차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치과 맞은편에 있는 앞뜰이 있는 1층짜리 연립 주택을 구매하여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3년여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관리 사무소에서 갑자기 주차장 입구를 펜스로 막아버리는 것이었다. 주공아파트 관리 사무소에 가서 문제를 제기하니 연립주택 주민 중 한 분이 공유지를 치과 단독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때 유용하게 활용하는 책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소개할 책은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이다. 책의 저자인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Stuart Diamond)는 와튼스쿨 MBA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다. 뉴욕타임스 기자로 일할 당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승승장구했지만 곧 변호사와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협상 전문가로 더 큰 명성을 얻었다. 현재는 모교인 와튼스쿨에서 협상 코스를 강의하고 있다. 그의 협상 코스는 와튼스쿨에서 20년 연속 최고 인기 강의로 선정되었으며, 학생들이 경쟁을 통해 들을 정도로 명성이 높다.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목표
이언 플레밍 원작의 영화 007시리즈의 1964년 ‘Goldfinger’(United Artist pictures inc.)에는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와 주연 악당 골드핑거보다 인상적인 조연 악당 ‘오드잡’이 등장한다. 해롤드 사카타(Harold Sakata)라는 일본계 미국 배우가 연기한 ‘오드잡’은 주연 악당인 Mr. 골드핑거의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인데 1960년대의 서양 대중문화가 어떤 시각으로 동양인을 바라보는가를 엿보게 한다. 골드핑거와 제임스 본드가 서로 초반 탐색전을 벌이는 골프장 장면에서 골드핑거는 라운딩 시작 전 “내가 부리는 이 친구(오드잡)는 말도 못하고 캐디 노릇도 제대로 못하는데... 하기사 골프야 아직 동양의 스포츠가 아니니...”라고 그의 보디가드를 제임스 본드에게 소개하며 너스레를 떤다(자막에서 ‘동양의 스포츠’가 ‘한국의 스포츠’로 나오는 자막 버전도 있다). 게다가 골드핑거는 제임스 본드와의 골프라운딩 중 비겁한 사기행각을 벌이는데, 오드잡은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동양인이란 소개가 무색하게 사기 골프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고, 그 이후 이어지는 여러 장면들에서도 잔인한 미소를 머금고 사람들의 목숨을 쉽게 빼앗는 악의 화신으로 묘
진료실에서 일어나는 난제에 질문을 던지고 그 해결책을 위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임상연구자의 업무이다. 일반적으로 그 질문이 근본적일수록, 기존 지식에 대한 의심이 클수록 중요한 질문이다. 다음으로는 질문을 더욱 구체화하고 기존 지식과 대비해 보면서 논리적 공백을 찾고 이를 메울 수 있는 가설을 만들어 본다. 가설을 여기저기 뜯어보고 다시 맞추어 보고 그림을 그려 본 다음에도 좋아 보이면, 거창하게 말하면 인류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 일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금상첨화이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소위 인류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머리에서 맴돌지만 대부분 좋은 가설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머리에서 맴도는 생각을 좋은 가설에 기초한 일로 만들려면 몸이 고달프기 때문이다. 대부분 몸만 고달프고 마음껏 안 될 때가 더 많다. “이제는 체력이 전 같지가 않아서” 혹은 “다른 중요한 업무로 시간이 없어서”라는 핑계를 댈 수 있지만 실은 공부가 부족하고 머리가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가 부족한데 나에게만 특별히 좋은 일이 생길 수가 없다. 때로는 그 일이 “하고 싶은 일”이라서 전력을 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