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인문학, 병원을 만나다>저자 치과의사는 손끝으로 일하지만, 마음으로 환자를 만나는 직업입니다. 정밀한 술식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불안한 마음을 이해하는 공감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임상의의 길을 걷는 우리에게 ‘인문학’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문학은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학문입니다. 철학은 생각을, 문학은 감정을, 역사와 사회학은 인간과 공동체를 이해하는 길을 제시합니다. 이런 지적 소양은 진료실 안에서 환자와의 소통에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말투 하나, 설명 방식 하나가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을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학문적 과정이 아닌, 책 읽기라는 일상 속의 실천으로 충분히 인문학을 삶 속에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책은 언제나 조용히 말을 걸고, 생각할 시간을 건네며, 어느새 나의 시선을 바꾸어 놓습니다. 바쁜 진료 속에서 책을 읽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필자가 어린 시절(초등학교~고등학교)에는 아파트가 아닌 주택가에 살았었습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동네 분위기와 똑같았습니다. 촘촘히 사방팔방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골목길, 그 골목길 안에 다양한 색깔의 철대문들, 그리고 각 집 담벼락 앞에 있는 쓰레기통 옆에 다 타서 내버려진 연탄들... 지금 떠올려보면 정감 어린 추억의 장면입니다. 학교를 갈 때에, 그리고 방과 후에 집에 올 때에도 항상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지냈습니다. 그러면 골목길에서 어른들을 마주치기 일쑤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다른 친구들 보다 먼저 한걸음에 달려가서 그분들에게 “안녕하세요”하고 크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른들께서는 “아이구 그 녀석 인사성도 밝네” 하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칭찬을 해주시곤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기분이 더 좋아져서 정말 더욱 열심히 인사를 했습니다. 물론 어른들을 공경하는 마음은 기본이었구요. 그 습관이 지금 환갑이 된 나이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치과병원에 방문한 환자 아이들이나 보호자분들께는 물론이고, 건물의 청소 주임님, 경비 주임님들에게도 출퇴근하면서 마주칠 때마다 밝게 웃으며 큰 소리로 인사를 드립니다. 그러면 그분들도 힘든
두바이쫀득쿠키가 대유행이다. 유행인지 몰랐다면 MZ와는 거리가 있는 것인데, 나도 트렌드에 편승하고자 하나 먹어보았다. 바삭바삭하고 쫀득한게 안성재도 합격을 주지 않고는 못배길 맛이었다. 두바이초콜릿도 한물갔고 쫀득쿠키는 유행이라 할 것도 없이 묻혔는데, 그 두 가지가 합쳐져 두바이쫀득쿠키(심지어 쿠키도 아니다!)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전국 카페는 물론이고 국밥집에서까지 팔고있는 걸 보면 참 기이한 노릇이다. 두바이쫀득쿠키의 레시피를 보면 얇은 면같은 카다이프와 피스타치오, 마시멜로 등이 들어간다. 기존의 맛에 더해 소비자가 식감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소비자들에게 신선하고 효과적으로 전달된 것 같다. 대중에게 유행하는 치과 술식들인 미니쉬나 제로네이트와 술식도 이와 유사하게 느껴졌다. 교과서적인 올세라믹 크라운이나 세라믹 베니어를 기반으로 해서 약간의 변형과 특장점을 더해 두바이쫀득쿠키처럼 고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소구한 것이다. 해당 술식의 채택과 적용이 꼭 필요한지에 대해선 의견이 나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고객들이 직접적으로 원하는 이름이 알려진 술식이라는 점에서 대중화에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참 사소하지만 유난히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는 순간들이 있다. 초등학생 때 계곡에 놀러가면 입술이 파랗게 질릴 때까지 계곡물을 바라보곤 했었다. 햇빛을 머금은 물방울의 반짝임은 어린 나에게 보석 그 이상이었다. 살갗을 스치는 차가운 물의 촉감도 너무 좋아서 가족들과 하염없이 물속을 떠다녔었다. 나른한 봄, 친구 집에서 ‘뿌셔뿌셔’를 나눠 먹으며 게임에 전념하던 어느 오후도 선명하다. 모니터 너머 상대에게 우리는 스무 살 대학생이라고, 수능 점수는 98점이라고 당당히 허풍을 떨곤 했다. 이렇게 내 어린시절 기억은 사소하고 따뜻한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 놀이터의 흙먼지, 태권도장의 기합소리, 피아노 선율. 휴대전화도, 학원도 남들보다 늦었지만, 그런 것들은 상관없었다. 무엇인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 없이, 그저 목적 없는 과정을 즐기던 시절. 그때 내 눈은 확실히 반짝거렸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아직도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진다. 하지만 가끔은 그 반짝임으로부터 너무 빠르게 멀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치대라는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를 쌓아 올린 학창시절을 지나, 요즘은 과제와 시험의 파도 속에 떠밀려 사는 중이다. 분명 반짝이던 ‘생태’였던 내가 엊
대한민국 개원가에 K자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일부 기업형 사무장 치과는 초저가 덤핑으로 호황을 누리는 반면, 대다수 동네 치과는 환자 감소와 경영난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 기형적인 양극화의 주범은 단연 임플란트 덤핑이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을 미끼로 던지는 그들의 행태는 의료를 인술이 아닌 최저가 입찰 상품으로 전락시켰다. 가격 파괴는 필연적으로 의료의 공장화를 부른다. 최근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모 임플란트 치과 사망 사건은 공장형 진료 시스템이 낳은 예고된 비극이었다. 박리다매를 위해 환자를 컨베이어 벨트 위 부품처럼 취급하고, 무리한 스케줄을 강행하는 도떼기시장 같은 환경에서 환자의 안전은 설 자리가 없었다. 덤핑은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가 된 것이다. 덤핑의 끝은 결국 먹튀라는 파국이다. 소위 돌려막기식 운영이 한계에 봉착하면 치과는 문을 닫고, 치료가 중단된 환자들의 고통과 불신은 고스란히 선량한 동네 치과들이 떠안게 된다. 독일과 프랑스 등 의료 선진국들이 적정 수가를 법으로 보장하고 저가 유인 행위를 엄벌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지나친 저수가는 곧 의료 질 하락과 환자 피해로 직
2024년 12월 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생명표’에 따르면 2023년 출생아(0세) 기대수명이 전년 대비 0.8년 늘어 83.5년에 도달했다. 출생아가 80살까지 살 확률은 남성 63.6%, 여성 81.8%였지만 100살까지 생존할 확률은 남성 1.0%, 여성 4.6%에 불과해 ‘100세 시대’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실상을 보여줬다.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얼마나 건강하게 사는가 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처럼 남의 도움 없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만 있다면 여든이건 아흔이건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평균수명과는 다른 건강수명이라는 개념이 별도로 존재한다. 건강수명이란 말 그대로 타인의 도움 없이 자립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삶의 질이 보장된 상태로 살 수 있는 생존 기간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이 평균 83.5세라고 했을 때 건강수명 평균은 73.1살로 10년 정도 짧고 여자 74.7살, 남자 71.3살로 여자가 3.4년 더 길다. 이 말은 평균적으로 생의 마지막 10여 년을 누군가의 지원이나 돌봄 속에서 살아
작년 연말에 반가운 e-mail을 받았다. 메일을 보고, 예전 미국 미시간 앤아버에서 지낸 2년간의 추억이 다시 떠올랐다. 미시간에서 연구년을 시작한 2007년, 지역 센터(community center)의 소개로 자원봉사로 영어 대화 파트너(conversation partner)를 해 줄 수 있다는 학생과 연결이 되었다. 이후 미시간 공대 2학년 학생 John과 만나 영어회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John과 나는 기말고사 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빠짐없이 매주 한 번씩 캠퍼스에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덕분에 미국 사회의 경제, 정치, 종교 현황, 미국 대학생의 일상, 가치관 등에 대하여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폭설로 우리 아이들의 학교도 휴교하던 어느 날, John이 약속 시간보다 한참 늦었다. 눈 때문에 버스가 잘 오지 않아서 아침에 한 시간을 걸어서 도착한 north campus의 공대에서 실험하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또 한 시간을 걸어서 치대가 위치한 central campus에 도착한 것이었다. 3학년이 되자 John은 의대에 가고 싶다면서 본격적인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John은 주말에 미시간대학 어린이병원(Children’
매일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정밀함과 싸우는 우리 치과의사들에게 완벽함이란 끝없는 숙제와도 같습니다. 진료실 안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임상 전문가이지만, 가운을 벗고 원장실로 들어서는 순간, 인사 관리부터 마케팅, 세무, 환자 컴플레인까지 책임져야 하는 고독한 경영자(CEO)가 됩니다. 20여 년 전 전자차트와 디지털 엑스레이가 도입되던 시기를 기억하십니까? 그때의 변화가 지금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다시 우리 앞에 섰습니다. 많은 원장님께서 AI를 먼 미래의 기술이나 나의 진료를 위협하는 대체재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AI는 우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반복 업무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고 진료의 가치를 높여줄 가장 현명한 임상 파트너(Clinical Co-pilot)라는 사실입니다. 우선 임상 영역에서의 변화는 이미 피부로 와 닿고 있습니다. 파노라마 영상을 판독할 때, 피로도가 쌓이면 간혹 인접면 우식이나 미세한 치근단 병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이때 AI는 우리의 제2의 눈이 되어줍니다. 최근 도입된 영상 진단 AI들은 최대 93.3%의 정확도로 병소를 탐지하여 진단의 일관성을 유지해 줍니
요즘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퇴근길에 우회전을 하면 신호 타이밍이 잘 맞는 사거리가 있다. 그날도 평소처럼 바로 우회전을 해서 지나가려던 참이었는데, 사거리를 천천히 건너고 계신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도 춥고, ‘그냥 다음 신호에 건너지 뭐’라는 생각으로 잠시 기다렸다가 사거리로 향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우회전을 해서 사거리에 도착했을 때, 사고가 나 있었다. 신호를 마지막으로 건너던 내 앞 차와 예측 출발을 한 오토바이가 부딪힌 사고였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오토바이 운전자는 너무 놀랐는지 길 한가운데 주저앉아 있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만약 우회전을 조금만 더 일찍 했더라면, 그 어르신들을 기다리지 않았더라면, 사고의 당사자가 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어르신들을 배려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오히려 그분들이 나를 도와주신 셈이었다. 배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consideration”이라는 단어를 흔히 사용하지만, 뉘앙스로는 “solicitude”가 배려의 의미에 조금
2026년 3월 27일. 우리 앞에 놓인 이 날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대한민국 치과 의료의 패러다임이 ‘내원 진료’에서 ‘방문 진료’로 확장되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돌봄통합지원법)이 본격 시행되는 분기점이다. 특히 법 제15조는 치과의사에 의한 ‘방문구강관리’를 명시하고 있으며, 정부는 당장 올해부터 보건소를 거점으로 한 시범사업을 예고했고 이미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바야흐로 ‘찾아가는 치과’ 시대의 개막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치과계의 분위기는 차갑다 못해 고요하다. 이 기이한 침묵의 원인은 명확하다. 현재 치과계가 직무 집행 정지와 선거라는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네거티브 공방과 법적 다툼이라는 ‘블랙홀’이 정작 회원들의 미래 먹거리가 될 민생 현안을 모두 빨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유한하고 민생은 영원하다. 우리가 내부 권력 다툼에 매몰되어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사이 제도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시행될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방문 진료는 개원가에 ‘새로운 기회’가 아닌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해외 사례를 넘어 ‘한국형 방문치과 모델의 제안을
앞으로 몇 달 후면 지방선거를 한다. 치과계도 이제 1달 이후이면 선거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선거를 매번 치르면서 ‘이번만큼은’ 하는 기대를 한다. 깨끗한 선거, 공정한 선거, 정의로운 선거, 아름다운 선거. 그러나 우리는 매번 실망한다. 혼탁한 선거, 마타도어가 극을 달리는 선거, 거짓과 허위로 투표권자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선거, 심지어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선거라고 말하며 개탄해 한다. 정치권이야 워낙 그런 세상이다 보니 그런가 보다 한다. 이제 국민들은 그러려니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높은 벼슬아치들의 싸움이겠거니 하며 국민들 시선에서는 못마땅해도 변하지 않는 그들만의 정치세계와 우리의 팍팍한 삶 간의 차이에서 괴리감마저 느끼게 되어 체념하고 산다. 그러나 막상 우리와 가장 끈끈한 동지애적 사명을 가지고 있는 단체의 선거에서는 그런 생각보다 어떻게든 정치권과는 차별이 되는 가장 신선하고 깨끗한 선거를 원하고 이를 포기하지 않고 매번 기대한다. 바로 우리 치과계의 삶이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며 우리 치과계의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제발 이번만큼은 잡음 없는 선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실 매번 선거운동철이 오면 실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