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치과의료인들 즉, 학생들이 치과대학에서 받게 되는 이론 교육이 치과의사로서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익히는 내용 위주라면 개념화된 지식을 체화하여 습득하는 것은 치과병원에서의 임상 실습 중에 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치과대학과 치과병원에서 받게 되는 다양한 이론 및 실습 교육 과정은 치과의사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과 기능적 능력을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래 치과 의료인으로서의 철학과 사회 속에서의 역할 인식을 결정짓는 중요한 과정이자 경험이다. 따라서 치과대학 4년 동안 보고 듣게 되는 내용들은 치과의사로서의 자화상의 재료가 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전문 의료인으로서의 역량과 기능에 대한 인식을 스스로 확립하게 되며 사회 속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므로 그 영향이 주위로 전파되어 거꾸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시선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호작용은 국민들의 치과의사에 대한 인식 즉, 치과의사에게 기대하는 전문적 역량과 기능 범위에 대한 이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물론 우리 스스로 치과의사의 전문 의료인으로서의 역할과 기능 범위를 정의할 수 있으나 사회적 동의나 인식이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실체가 없는 치과의사들만의
1. 체력이 있어야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다 우리 학교(서울대 치의학대학원)의 경우 보통 국시 필기 D-100쯤부터 국시실에 하나둘씩 모여 공부했던 것 같다. 100일, 약 3달이라는 기간은 생각보다 짧은 것 같지만, 4년간의 치대 생활 동안 겪었던 여러 시험을 생각하면 꽤 긴 기간이다. 수능 이후로 이렇게 긴 페이스가 필요한 시험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지치지 않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체력 관리는 필수다. 시험 2주 전까지는 일주일에 3번 이상 러닝·헬스 등 운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체력도 쌓았던게 시험 직전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2. 한 달 단위로 계획 짜기 4년 동안 촘촘히 싸인 시간표대로 생활하다가 국시를 앞두고 온전히 주어진 24시간이 조금은 낯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의 페이스로 계획표를 짜는 것이 꼭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 MBTI로 말하면 파워 J형이기 때문에, 달력 형태의 플래너를 구매해 한 달 단위로 계획을 짰다. 한 달 단위로 계획을 세우면 근 며칠간 어떤 과목들을 공부했는지 흐름을 파악할 수 있어서 여러 과목을 골고루 균형감 있게 둘러볼 수 있다. 이때 너무 타이트한 계획도 경계해야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오래 간직하고 싶은 좋은 기억도, 지워버렸으면 하는 부끄러운 기억도 있고, 가슴 저린 아련한 기억도 있을 수 있지요. 필자는 73년 경희치대를 졸업하고, 3년의 조교생활을 거친 뒤, 76년 3월 군의학교에 입교했습니다. 그곳에서 군 후보생 교육을 받고 치과 군의관 대위로 임관해 서부전선 최전방인 어느 육군 보병사단에 배치받고 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필자가 근무하던 사단은 한국전쟁 때 미군과 경쟁하면서도 평양에 최우선으로 입성해서 세계 전쟁 역사에도 기록된 최정예 사단으로 유명했습니다. 압록강 물을 담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바친 전설적인 부대였고, 국군 창군 시 모태가 된 부대이기도 해서 역대 군 고위 지휘관들이 대부분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아무튼 몇 주간의 군사 훈련을 받자마자 대위 계급을 달고, 사단 사령부 의무대 치과 반장으로 근무하게 되다보니 급격히 변한 환경에 어리둥절할 뿐이었습니다. 대학이라는 온실에서 자라던 화초였다고 할까요. 그럭저럭 군 생활에 적응할 즈음,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판문점 안 남측지역에 있는 미루나무가 무성하게 자라서 북측의 움직임을 잘 관찰할
“대표원장 대신 OO씨를 수술한 것은 치과의사였습니다.” “치과의사가 성형수술을 해요?” “자기가 받은 면허 외의 다른 치료를 했다. 그것도 무면허에요.” 지난해 MBN에서 방영된 한 프로그램은 지난 30년 동안의 나의 기록을 무면허 돌팔이 의료행위로 결론지어 주었다. ‘대학병원 구강외과는 양악전문이 아닙니다.’ ‘충치치료와 양악수술을 함께 하는 의사. 정말 괜찮으신가요?’ 모 성형외과의 광고 카피다. 이런 모욕을 받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져야 하나? 학창시절 존경하던 은사님의 강의 중에 보게 된 잔인한 슬라이드 몇 장은 나의 피를 끓게 하였고 결국 구강악안면외과를 전공하고 이 분야만을 진료하는 인생을 살게 해주었다. 치과의사가 턱수술을 한다는 다소 의아스러운 개원을 한지 이제 20년 째…세상은 변했고 양악수술이 치과의 구강악안면외과의 영역 임은 이제 거의 대부분의 일반인에게 인식이 되었다. 그 길을 함께 했던 동료, 선후배 선생님들이 2004년에 함께 모여 만들었던 대한악안면성형구강외과 개원의협의회는 턱수술을 기본으로 하는 구강악안면외과 개원의들과 사랑니 발치 등 우리 분야의 진료만을 특성화 한 개원의들의 모임으로 정기적으로 학술집담회를 개최하고 우리의 영역
시간관리를 어떻게 할지는 모든이들의 고민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미라클모닝도 어찌 보면 시간관리의 일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일이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일들을 계획하고 실천해 간다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훌륭하고 숭고한 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새벽부터 일어나는 것 자체가 매우 도전적이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미라클모닝을 실천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려고 노력해 보았다. 그러나 아침 5시에 일어나는 것이 나의 생체시계에는 맞지 않았는지, 하루의 일의 효율이 그리 좋지 못함을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영어공부를 하는데, 한시간동안 비몽사몽 정신이 없이 지나가서 도저히 머리에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운동을 하려고 했지만, 운동도 오전에는 효율이 완전히 떨어져서 제대로 된 근육 펌핑이 되질 않고, 유산소도 형편없는 기록이 나왔다. 초반에는 시행착오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여러번 시도를 해 보았지만, 여전히 효율은 좋지 못하였다. 아침에 일어나라는 신호 코로티졸이 분비
몇주전 휴일 골프 라운딩이 있어 운전하고 가다가,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주문을 하기 위해 키오스크로 갔는데 60대로 보이는 두 분이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하다가 제가 오니까 자리를 비켜주더군요. 두 분들께 먼저 하시라 하니, 저보고 먼저 하라고 해서, 제가 먼저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화면이 된장찌개를 주문하다 중간에 멈춰져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걸 주문하려고 이전 화살표를 누르고 제가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였습니다. 헌데 제가 주문하는 도중에 뒤를 힐끗 보니 아까 주문하려던 두 60대 분들이 제가 주문하는 과정을 마치 열심히 배우려는 학생같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걸 느꼈습니다. 더 이상 설명 안 드려도 어떤 상황인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디지털을 모르면 햄버거 하나 주문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변화는 이제 미래로 진입하기 위해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가 돼버렸습니다. 유명한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변화란 미래가 현재에 침투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변화가 없다면 미래도 없다는 뜻이지요. 지키려는 마음이 강할수록 변화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득권층에 있는 사람들이 변화가 아닌 안주와 안정을 찾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JYP로 유명한 박진영은 사진첩이 없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 2년여 시간 동안 여행을 마음껏 다니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여행하기를 무척 좋아했는데 낯선 곳에 가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자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서였다. 코로나 시즌에 감사하게도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모임이나 회식도 거의 없었던 이 기간을 지나 지금까지도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나의 위치를 지구상의 어딘가로 잠시 이동시켰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여행이라면 육아는 그와는 반대로 나의 위치는 같지만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세상에 극적인 변화가 생긴다. 어디론가 떠나지는 않았지만 나의 세상이 바뀌었으니 여행 중인 상태다. 그것도 세상에 없었던 사람이 등장해 인원이 한 명 더 늘어난 놀라운 여행이다. 육아 때문에 직장과 집을 왔다갔다 반복하는 것이 나의 일상의 거의 전부이지만 이것이 신비로운 여행이라고 느끼는 순간부터 내적으로 전보다 더욱 자유로움을 느낀다. 자유로움은 물리학이 아니라 생화학이다. 신혼여행으로 갔던 세이셸이라는 섬나라가 떠오른다. 에티오피아까지 가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갈 수 있는 곳인데 평소에 무척 가보고 싶었다. 실제로 가 보니 정말 놀라운 휴양지였다. 누군가가 엄청난 글 솜씨로 그
어느덧 초록빛이 점점 진해져 가는 5월에 접어들고 이번 학기도 어느새 반을 넘어 달려가고 있다. 영광스럽게도 이 글을 쓸 기회를 준 나의 2022 KDSA 총대표라는 자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면서, 대표라는 이름으로서 필요한 자세와 그동안의 원내생 실습생활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동기들에게 또 곧 이 실습생활을 시작할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본과 4학년이 되면서 졸업준비위원회 대표, 소위 총대표라 부르는 자리를 맡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항상 어떤 대표가 될 것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물론 예과 1학년때부터 지금까지 4번이나 학번의 과대표를 맡아 일해왔지만, 사실 그 직책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모두가 처음 만난 첫 학기부터 과대표를 맡다 보니 그저 대다수 인원이 즐거울 수 있는 생활이면 그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총대표가 되면서 원광대학교 치과대학 익산본원의 피성희 병원장님께서 조언해주신 말이 깊이 각인되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교수님께서는 대표로서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동기들과의 병원생활을 만들어 나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갤럽 조사에 따르면 MZ세대가 리더에게 기대하는 5가지 리더십 유형 중 1순위는 업무 전문성이라고 한다. 이는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리더로부터 찾고자 하는 심리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리더는 업무 전문성을 이용해 직원을 성장시켜야 하는 책임을 안고 있다 말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리더는 직원을 어떻게 성장시켜야 하는지 다음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목적을 두고 일 할 수 있도록 하고 지속적으로 상기시켜라. 직원의 입장에서 병원은 단순히 돈을 버는 곳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래서 어떠한 연습이나 행위를 할 때, 목적은 생각지 않고 기계적인 행위에만 집중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기에(돈을 버는 곳이기에) 같은 시간을 일 할 것이라면 더 많이 버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예를 들어, 1년차 교육 중 구내 포토 촬영 연습을 10회 해오라는 과제가 있었다면 10회 촬영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처음 촬영 시보다 연습 후 얼마나 발전하게 될 것인가에 목표를 두고 연습에 임한다면 어떨까? 성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한 방식으로 목적을 생각하고 일하는 직원과 아닌 직원의 발전 속도는 차이가 생길 수밖에
필자는 울산대학교 의과대학을 1998년에 입학해 2001년 1월에 중퇴를 하고, 2001년 3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부에 재입학한 특이한 경력으로 학창 생활을 시작하였다. 의대에서 전공을 바꾸기로 결심한 것은 2000년 의약분업이라는 사태가 있었지만, 항상 공학에 대한 미련이 있었던 나를 생각해보면 아마도 언젠가는 그만두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필자는 2001년도 수학능력 시험을 보고 서울대에 입학하고 그해 군대에 입대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07년에 학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이후 미국으로 박사 유학을 떠나 2014년에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전기컴퓨터 공학박사를 받았다. 이후 삼성, 씨젠에서 직장 경험을 쌓은 후 2019년 항상 가슴속에 꿈꾸던 창업을 하여 지금은 스타트업의 대표가 되었다. 다이나믹한 삶이었다. 필자의 의사친구들은 이미 전문의를 취득한 지 10년이 지나 각 분야에서 대학병원 교수 및 개원의로 활발하게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의사친구 네트워크로 창업 초기 많은 도움(재무, 기술자문)을 받게 되었고, 사업을 통해 다시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지난 3년간 의사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알게 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얼마 전 여수에 다녀왔다. 새벽 6시부터 일어나 무거운 몸을 이끌며 짐을 꾸리고 차량에 몸을 맡겼는데 이 만큼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그간 바빴던 일상을 내려놓고 훌쩍 떠나는 여행은 이렇게나 행복하구나 싶었다. 힐링이란 이런 것일까? 인터넷을 통해서나, 또는 말로만 듣던 여수 밤바다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에 아침부터 들떠있었다. 문득 어릴 적 들었던 ‘초록바다’의 노래 중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이라는 구절이 떠올랐는데, 사실 이 노래는 나 같은 ‘어른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노래가 아니었나 싶었다. 여수는 집에서 의외로 멀었다. 6시간이나 걸렸는데, 가는 길 중간마다 창밖에 비춰진 하늘을 보기도 하고 잠이 쏟아진 탓에 쪽잠을 자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는 길마다 펼쳐진 풍경들을 내 눈에 조금이나마 더 담아둘걸 하는 아쉬움도 있다. 일상으로 돌아오니, 마치 구운몽을 겪은 것 마냥 한 순간 꿈이었던 느낌이 들고 있어서다. 여수로 가는 도중엔 옆으로 갈라진 산을 지나가며 봄의 느낌을 완전히 몸으로 받았다. 멀리서 보이는 새싹 하나부터 그득한 나무들까지 봄의 양기가 느껴져 기분마저 상쾌해졌다. 절로 휘파람이 나오니 너무 좋은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