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관계는 어느 사회나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질서다. 연인 관계나 가족 관계에서도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그 관계가 자리잡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관계는 신기하면서도 오묘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아무도 ‘을’이 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치과라는 환경에서도 치과의사는 자연스럽게 ‘갑’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치과의사는 환자에게 치료를 제공하는 ‘전문가’로서, 치료 과정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환자는 그 결정을 따르게 된다. 그런 이유로 치과에서의 갑을 관계는 쉽게 자리잡을 수 있다. 그런데 아직 사회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내가 느끼기에, 그런 관계의 근본에는 때때로 자만이 숨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자만이라는 것은 정말 교묘하다. 우리가 ‘전문가’로서 권위 있는 자리에 있을 때, 자칫 그것을 당연시하게 여기고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자만은 강한 상대가 등장하면 그때서야 그 본모습을 드러낸다. 더 강한 권력자가 나타나면 자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때서야 우리는 ‘을’처럼 변하기도 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나 권위를 가진 환자 앞에서 ‘갑’의 자리를 내놓고 ‘을’처럼 행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치과의사로 일하다 보면 매일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변화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환자의 기대는 점점 더 섬세해지며, 병원의 운영 방식도 끊임없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긴 어렵습니다. 오히려 책 속에서 미래의 단서들을 찾게 됩니다. 한 발 앞서 고민한 사람들의 생각, 이미 다른 분야에서 벌어진 변화, 그리고 시대를 꿰뚫는 통찰은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리의 시야를 넓혀줍니다. 눈앞의 일에 치여 막연하게 미래를 불안해하기보다, 책을 통해 구조적으로 사고하고, 방향을 잡고, 대비하는 것이 더 현명한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책은 예언서가 아닙니다. 하지만 읽다 보면 나와 병원의 5년, 10년 후를 그려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오히려 책 속 문장에서 우리는 뜻밖의 확신과 위안을 얻게 됩니다. 앞을 알 수 없기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어로 “귀족의 의무”를 의미하며, 권력이나 부를 가진 자가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한다는 사상을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부나 선행의 차원을 넘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적인 특권을 절제하고 공동체에 헌신해야 한다는 철학이다. 역사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은 정치와 사회를 이끄는 엘리트 집단의 책임 윤리로 작용해 왔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자원입대해 생명을 걸고 전투에 임했고,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 복무를 통해 조국에 봉사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권력을 가진 이들이 말뿐이 아닌 실천으로 공공의 책임을 다한 전형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치권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여전히 낯선 단어로 남아 있다. 지난해 12.3 계엄으로 내란 수괴의 우두머리를 구속하고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는 법적 판단 이외에 국민들의 관심사를 집중시킨 일련의 일들이 아직까지도 메인 뉴스를 장식하고 있지만 전직 대통령의 정당치 못한 계엄으로 온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그를 심판하기 위한 특검의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보인 그의 행동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보건의료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인력수급추계위와 ‘보건의료인력 업무조정위법’은 의대정원 2000명 증원후 계속된 의정갈등을 풀기위한 성격이 강하나 의료인 적정인력과 현장의 오랜 숙원이었던 직역 간 업무 범위 명확화와 갈등 조정이라는 중요한 목표를 담고 있다. 진료지원인력(PA) 등 업무 범위가 불분명해 야기되는 혼란을 해소하고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취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보건의료인력 업무조정위원회’를 신설하여 보건의료인력의 구체적인 업무 범위와 협업 방안 등을 심의하도록 한 것이 이 법안의 핵심이다. 즉 바이탈과의 만성적인 인력부족을 메우기 위해 PA에게 법적 안정성과 범위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 핵심으로 보인다. 가장 큰 걱정은 위원회 구성의 전문성 문제다. 50명에서 100명에 달하는 위원회에 보건의료인력 대표 단체 외에도 노동·시민·소비자 단체, 정부 공무원 등이 대거 포함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과연 의료 현장의 복잡하고 전문적인 업무를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자칫 비전문가 중심의 논의가 의료 현장의 효율적인 역할 분담을 저해하고, 기존 개별법상 의료인의 자격과 업무 범위를 무시하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그래도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셨잖아요. 워낙 하는 일도 많으시고.” “다른 분들은 제가 뭘 하는지 잘 모르셔요. 아무래도 교실이 치의학교육학교실로 되어 있으니 교육학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많은 것 같고요.” “아, 옛날에 저희 의료윤리 교수님들과 똑같은 상황이시네요. 그래도 이쪽에선 거의 선구자인 거잖아요?” “지금까지 그런 이름으
당나라의 문장가 한유(韓愈)는 인재를 육성하는 안목의 중요성을 천리마를 키우는데 빗대어 다음과 같이 글을 남겼다. “천리마는 항상 있는 것이지만 그를 알아보는 백락(伯樂,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말감별사)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千里馬常有 白樂不常有, 천리마상유 백락불상유). 그러므로 비록 명마가 있다 하여도 백락이 없으면, 명마가 하찮은 말들 틈에 섞여 아랫것들의 손에 의해 길러져 마구간을 배회하다가 죽게 될 뿐, 결코 천리마의 이름을 얻지 못하게 된다. 하루 천리를 달리는 말은 한 끼에 곡식 한섬을 다 먹는데, 그 말을 먹이는 사람이 천리마를 못 알아보고 보통 말을 먹이듯이 하니, 그 말이 비록 하루에 천리를 내닫는 능력이 있어도 먹는 것이 변변치 못하여 힘이 부족하니 어찌 재능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천리마가 서럽게 울며 자신의 뜻을 전하려 해도 주인이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고작 한다는 소리가 ‘천하에 좋은 말이 없도다’ 하니, 오 슬프다. 세상에 천리마가 없는가 아니면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이 없는 것인가?” - 고문진보 후집, 문편, 잡설 雜說. 요즈음 우리는 적재적소에 필요한 사람이 없다, 인재가 없어서 미래가 어둡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
나의 유년기 어느 날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치과에 들어섰다. 치과 원장님과 같은 교회에 다니시는 아버지는 원장님을 보자마자 원장님의 두 손을 꼬옥 잡았다. 원장님은 아버지와의 짧은 인사 후에 나를 진찰하셨다. 내 입 안에는 우식이 많았다. 원장님은 하악 대구치 네 개에 아말감을, 상악 대구치와 소구치에는 실런트를 하셨다. 치료 비용은 건강 보험 덕분에 저렴했다. 그 때의 수복물들은 지금까지 건재하다. 그 때는 다들 생활이 어려웠다. 교정 장치는 부끄러워 숨길 물건이 아니라 자랑할 만한 부의 상징이었다. 건강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치과 치료는 서민들에게는 많이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건강보험은 대부분의 국민이 가난 시절, 서민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부유해지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다니고, 내돈내산 후기라는 말이 유행하는 지금, 건강보험이 변함없이 온 국민이 건강하게 사는 데 지속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지를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이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건강보험 재정이 건전하지 않다는 말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고, 의사분들 사이에서는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되어 의료민영화의 시대가
건강보험 현지조사에 따른 행정처분 중에서 가장 가혹한 것은 ‘치과의사 면허정지처분’이다. 최장 10개월까지 가능한 면허정지는 치과의사 자격이 일시 정지되기 때문에 진료는 당연히 금지(진료시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되어 면허취소처분이 나옴)되고 개설된 의원도 개설자를 변경·양도하거나 폐업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특히, 비급여진료가 많은 치과 병·의원의 경우에는 비급여진료를 실시한 후 건강보험을 청구하는 비급여 이중청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서 각별한 주의와 대책이 요구된다. 최근 임플란트 가격을 경쟁적으로 낮추어서 환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임플란트를 시술하는 환자에게 비급여비용만 수납하고 건강보험급여를 청구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건강보험진료비는 보험청구만 하고 보험급여 본인부담금은 비급여비용에서 차감하는 형식을 취하면 된다는 잘못된 정보에 그 원인이 있다. 현재 심평원의 입장은 건강보험급여의 본인부담금을 비급여비용에서 차감하여 받지 않으면서 건강보험 급여청구만 한 진료를 허위청구로 판단하여 현지조사에서 행정처분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심평원은 “치과분야에서 교정이나 보철 등 비급여 대상 진료는 개별진료행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치
▶▶▶이용권 원장(청주 서울좋은치과병원 임플란트센터장)이 본지 3036호부터 치과의사의 희로애락을 담은 ‘털보의사의 치과 엿보기!’ 만화를 연재한다. 이 원장은 서울치대를 나온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로 앞서 본지에 ‘만화로 보는 항생제’를 연재한 바 있다. ■ 이미지 클릭 후 드래그하면 고해상도 보기 가능합니다.
‘보스턴’ 이라는 도시를 떠올렸을 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각자 다를 것이다. MIT, 보스턴대학교, 하버드와 같은 명문대의 도시, 랍스터, 굴 등 해산물이 유명한 도시…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필자는 보스턴을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학문, 여행 그리고 설렘이 함께한 특별한 여정이었다. 뜻밖의 기회로 ISPRD(International Symposium on Prosthetics and Restorative Dentistry)에 참석할 수 있었다. ISPRD는 매 3년마다 Quintesence Publishing 에서 주최하는 국제 학회이다. 세계 각국의 치과의사들이 보스턴으로 이맘때쯤 모여드는 것이, 메리어트 호텔 로비에서 보고 있노라면 일본, 이탈리아, 멕시코 등등 전세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이 작은 지구촌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학회이다 보니, 의외로 한국 치과의사들은 생각보다 수가 적었다. 등록 줄에 서있을 때, 뒤에서 유럽 치과의사들이 지르코니아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엿들으며, ‘내가 정말 먼 곳을 왔구나!‘ 싶음을 느꼈다. 학회의 주제는 임플란트를 중심으로 하지만, 이름에서도 알다시피 보존,
모처럼 가는 대전예술의전당후원회 문화기행이지만, 아직은 시원치 않은 건강에 편도 세 시간 버스여행이 유럽 코치투어(Coach Tour)처럼 미덥지가 않아서,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통영은 노산이 몽매에도 가고파하던 예향 ‘내 고향 남쪽바다’ 아닌가? 막상 특급 버스를 타보니까 허리에 부담이 거의 없어서, 과연 대한민국의 자동차산업이 세계 첨단급임을 실감하였다. 물론 1970년대 초 해군 시절이나 공연관람 등 몇 차례 익숙해진 곳이다. 기행의 주제는 2025 통영국제음악제의 피날레,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브리튼 전쟁 레퀴엠(Britten; War Requiem) 연주’였다. 오가는 길에 들른 맛집 기행과 남강 상류 함양의 거연정·동호정 등을 지나는 ‘Drive-Thru Tour’는 덤이었다. 시내에 들어서기 2Km 쯤 전방부터 부처님 오신 날 연등처럼 오색풍선이 연도에서 반기고 있어, 통영시청이 이번 행사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은 아담한 언덕에 자리 잡아, 계단을 올라서자마자 항구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이다. 육백 여석의 아늑한 아래층 오른편 좌석에 앉아, 3월 28일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으로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