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시설이 갖추어진 병원에서는 의료의 오류가 생길 리 없으며 의사의 숙련도가 더해지면 치료 결과에 결코 실패가 없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 이 때문에 의료사고는 완벽해야 할 의료 행위에 완벽하지 않은 의사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의사도 인간이므로 의료 행위 도중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부작용이 생기지 않았거나, 이와 반대로 명백한 오류가 없었다 해도 부작용이 초래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항생제 전 투약을 하지 않고 발치했으나 술후 심내막염이 생기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임플란트를 잘 식립하였으나 골유합에 실패한 경우도 있다. 우리가 자주 마주치는 수술 후유증이나 의료 사고는 이 두 가지 사이 어딘가에 있다. 여성 환자가 하악전돌증으로 어느 병원에서 통상적인 악교정 수술(하악지 시상골절단술)을 받았다. 수술 직후 한쪽의 입술 감각이 좀 더 둔하였고,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점차 돌아오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입술 감각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다. 환자가 인터넷에 검색하여 보니 그것이 하치조 신경 손상이라는 것으로 알게 되었다. 수술 후 1년이 경과한 후, 환자는 다른 병원에서 구강안면통증 검사,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 현대와 같은 고도의 분업화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의 하루를 돌아보면, 아침에 눈을 떠서 잠이 들 때까지 너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아니 잠이 든 순간에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의 도움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살지만, 실제로 그 사람들을 다 만나서 교류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살아간다. 특히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만나는 사람의 수와 종류는 더욱더 줄어든다. 40대 치과의사로서 나는 매일 루틴한 생활을 보내면서, 거의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접하고 느끼는 세상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는 누구나 그렇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나의 세상의 제한성은 더 커지고, 그래서 일반적으로 다른 세상에 대한 관용성도 매우 줄어든다. 의정사태를 겪으면서 의료인이 아닌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답답함을 느낀 적이 많다. 내 생각에는 설명하면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할 거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는 전혀 통하지 않았고, 급기야는 다툼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그들의 세상에서 본 의사들
어느덧 봉직의 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이 흘렀다. 동기들과 간간이 주고받는 근황 속에는 “누구는 벌써 어떤 술식을 했다더라”, “누구는 어디에서 얼마를 받는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섞여든다. 다른 동기의 빠른 임상 속도나 높은 급여 이야기에 스스로 조급해지기보다는, 이러한 상황이 묘하게 익숙하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또래 친구들과 다른 속도로 살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부분의 친구들이 수능 성적에 맞춰 바로 대학에 진학할 때, 나는 N수의 길을 선택했다. 20대 초·중반에 또래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있을 때, 나는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현역병으로 입대했다. 치과대학 학부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시 필기를 준비하던 시기에 누구는 벌써 2회독을 끝냈다는 말이 돌았고, 원내생 실습을 돌 때는 누군가 특정 과의 정해진 점수를 훨씬 상회하는 정도로 채웠다고 하는 식이었다. 그때도 나는 동기들보다 한 템포 늦은 위치에 있었지만, 초조하다거나 다급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태 살아오면서 남들과 같은 속도로 갈 수 있었던 몇 번의 분기점이 있었다. 수능 재수를 마치고 정시 지원했던 학교로부터 합격증
2025년 9월 7일, 박영국 교수가 세계치과의사연맹(FDI)의 신임 차기 회장으로 당선됐다는 소식은 우리 치과계에 큰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2001년 고(故) 청운 윤흥렬 회장의 차기회장 당선 이후 24년 만이며 125년 FDI 역사상 최초의 단독 후보 당선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국제 치과계의 압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그가 이뤄낸 쾌거는, 개인의 영광을 넘어 대한민국 치의학의 위상을 세계에 공고히 한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고 윤흥렬 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인이 FDI 수장에 오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14년 토선 함석태 선생이 한국 최초의 치과의사 면허 취득 후 1925년 한성치과의사회를 창립하였고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지난 4월에 치협 창립 100주년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바가 있다. 근대치과의 도입기가 토선에 의해 시작되었다면 세계 무대의 데뷔는 청운이 스타트를 끊었다. 즉 박영국 차기 회장의 당선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치과계가 학술적, 기술적으로 쌓아온 역량과, 기업과 선후배들이 국제 무대에서 흘린 땀방울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이제는 국제사회에 우리의 역량을 서브해야 하는 전환기를 맞이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요 며칠 빵값 논란이 뜨겁다. 나 역시 남부럽지 않게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그야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싶은 것은 모든 소비자의 희망이겠다. 그러나 세상에 무조건 싸고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요즘처럼 인건비며 원자재가 비싼 시절에는 마진을 아무리 박하게 잡아도 싸게 팔기 어려울 것이다. 가격을 고려하면 제법 괜찮은 품질이거나, 싸지는 않지만 제 값을 하는 것이 있을 따름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빵집은, 부티끄베이커리처럼 팬시하고 고급스러운 곳이 아니지만 소위 ‘착한’ 가격도 아니다. 건물에 주차도 어렵고, 잠깐 앉을 테이블도 없이 아담한 진열장과 카운터가 전부이다. 크지 않은 가게 공간의 대부분은 조리실이 차지한, 사장님이 맛과 재료에 공을 들이시는구나 싶은 맛이다. 주변에 팬이 많아졌는지, 점심때를 조금 넘기기라도 하면 대부분의 빵이 매진된다. 근처에 단골 카페도 있다. 여기도 크지는 않지만, 어려 보이는 사장님이 단정하고 편안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마음을 많이 쓴 흔적이 역력하다. 점심에 혼자 가서 커피를 마시며 머리를 식히기도 하고, 음료를 포장해 와서 직원들과 나눠 마시기도 한다. 올해는 워낙 무더위가 기승이어서
“여자 치과의사 단체는 왜 따로 있는 건가요?” 필자는 현재 대한여성치과의사회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어느 날 지인인 남성 치과의사분으로부터 위와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분은 “남성 치과의사회는 없지 않느냐”면서, 여성 치과의사들이 굳이 따로 모여 활동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질문을 들었을 때, 남성의 시각에서는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분리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유사한 흐름이 존재한다. 세계치과의사연맹(FDI) 산하에는 Women Dentists Worldwide라는 공식 섹션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여성 치과의사들이 직면할 수 있는 여러 현실과 고민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여성치과의사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그 계기를 되짚어보니, 아마도 결혼과 출산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던 시점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이 칼럼을 쓰면서도, 이 주제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여러 번 고민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특정 성별이 우위에 있다거나, 성 평등의 가치를 논쟁적으로 이야기하고
아침마다 치과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것은 텅 빈 대기실이다. 의자와 유니트 체어는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새벽의 정적 속에서 바라보면 낯설고도 묘한 고요함이 감돈다. 그때 나는 잠시 멈춘 듯한 시간을 즐긴다. 책을 펼치거나 음악을 틀어놓거나, 혹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한다. 마음이 무거울 때면 네덜란드 거리에서 노래하던 마르틴 후르켄스의 You raise me up을 찾아 듣는다. 꾸밈없이 성실하게 불러내는 그의 목소리는 지쳐 있는 영혼을 다독여 준다. “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라는 가사가 흘러나올 때면, 마치 내 지난날과 지금의 삶을 함께 노래하는 듯하다. 책상 위의 화분들은 묵묵히 곁을 지켜준다. 손끝으로 잎을 만지면 물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내 방의 녹보수는 몇 해째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환자들은 신기하다며 비결을 묻지만, 사실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햇살과 흙과 물이 제 몫을 다했을 뿐, 나는 다만 곁에 있어 주었을 뿐이다. 환자와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성껏 살피되,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의사의 몫일 것이다. 요즘 후배들이 종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사람은 누구나 편안함을 추구합니다. 편한 옷, 편한 관계, 편한 일상, 그리고 가능한 한 불편한 순간은 피하고 싶어 하죠. 하지만 가끔은 그 편안함이 우리를 점점 더 얕고 약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곤 합니다. 예전엔 퇴근길에 작은 책방에 들렀습니다. 종이책 특유의 냄새를 맡고, 무겁고 투박한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표지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던 시간. 어떤 책을 고를까 망설이던 그 짧은 불편함이 어쩌면 나를 깊이 있는 세계로 이끌어주던 출입구였는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다릅니다. 원하는 책 제목을 검색하고, 몇 번의 터치만으로 그 책은 내 손에 쥐어집니다. 심지어 요약본이나 서평을 보며 “굳이 다 읽지 않아도 되겠네”라고 생각하게 되죠. 더 나아가 책 자체를 읽는 대신, 짧고 자극적인 릴스나 영상에서 지식을 얻습니다. 빠르고 간편하고, 심지어 재밌기까지 하니까요. 하지만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편해
1983년 3월에 국립중앙박물관의 박물관회에서 운영하는 박물관대학(박물관 특설강좌)에 7기로 입학했다(올해 48기 입학). 역사학, 인류학, 고고학, 미술사, 사상사, 과학사 등 50여 개 과목을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을 강사로 초빙해 강의를 하는 주 4시간씩 10개월간의 알찬 수업이었다. 한 강사분이 한중일 삼국의 문화특징을 단적으로 이야기 하는데, 한국은 술문화, 중국은 음식문화, 일본은 목욕문화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음주가무가 끊이지 않는 민족이라고 하면서 미구에 세계의 연예계를 이끌 것이라고 예언했다. 40여 년 전 당시의 우리나라 영화계, 가요계, TV 및 라디오 연예 프로그램 등의 상황을 볼 때 ‘과연 그럴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그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전거를 보았을 때 ‘일말의 희망을 가져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원 전후, 우리 조상에 관한 기록은 중국의 사서(史書)를 참조하는 경우가 많고, ‘이십사사(二十四史; 중국 역대 왕조에서 공인된 정사 24권)’ 중 특히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三國志 魏書 烏丸鮮卑東夷傳)>이나, <후한서 동이열전(後漢書 東夷列傳)을 많이 참조하게 된다. 삼국지는
기존의 치과진료가 대부분 구강의 국소적 병인에 대한 반응적(reactive)·환원적(reductive) 치료에 머물렀다면, 초고령화사회의 도래로 개인과 지역사회의 구강 및 전신 건강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전인적(holistic)·다학제적(multidisciplinary) 치과진료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는 치아 우식, 치주염, 임플란트 주위염 등 구강질환이 구강에 국한된 요인만이 아닌 전신질환(당뇨, 심혈관질환 등), 생활양식(lifestyle) 등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기에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치과질환도 보다 근원적, 전인적 및 다학제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해야 하는 비전염성질환(NCDs, non-communicable diseases)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관점에서 내원 및 방문 치과진료의 자연스러운 연계는 물론 장기적으로 구강 및 전신 건강의 개선과 유지가 가능한 ‘생활양식치의학 진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약술해보고자 한다. 라포(Rapport) 기반한 근원적 진료 ‘생활양식치의학 진료’란 구강 내 증상에 대해 그들의 전신병력과 약물복용, 생활양식(식이, 수면, 스트레스, 흡연과 음주 등), 심리사회적 요인, 직업적 요
제목은 원래 건축학개론 영화 포스터의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를 조금 변형해보았습니다. 건축학개론 같은 영화든 히어로가 나오는 영화든 주인공은 모두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런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의 시점에서 힘든 감정을 느끼나 내가 실제 주인공이 아니기에 관객의 시점에서 그 감정을 이입해서 봅니다. 그래서 그 무서운 슬래셔 무비와 같은 공포영화를 봐도 우리가 패닉에 빠지지 않는 것은 우리는 실제 그 주인공이 아니라 관객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나는 내 육신 그 자체가 아니라 외계생명체인데 우연히 기억을 잃고 떨어져서 지구상을 헤매다가 우연히 기억을 잃은 채 지금의 이 육신에 깃든 존재라는 설정입니다. 마치 ‘별에서 온 그대’의 김수현과 같이 태곳적 오래부터 살아왔고 언젠가 다시 고향인 우주로 돌아가야 하나 그러한 기억이 없고 이 육신에 잠시 머무는 존재라고 합시다. 고향인 우주는 기억이 안나나 내가 실제 내가 아니고 이 육신도 내가 잠시 빌려 쓰는 존재이면 나는 현재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요? 마치 제 두 눈의 안구에 맺히는 스크린을 보는 관객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칼럼을 쓰기 전에 고민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