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의사소통 목적으로 사용하던 어휘를 다시금 곱씹어 보면, 그 어휘가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이번 경우는 모교가 그랬다. 나에게 ‘모교가 어디인가요’라고 물어보면, 나는 떳떳하게 강릉대학교(2009년 변경된 교명은 강릉원주대학교)라고 대답한다. 전엔 자랑스럽기까지 했는데, 그땐 내가 자랑스러울 게 별로 없던 시절이었고, 이젠 자랑이 미덕이 아님을 안다. 근데 모교란 무엇인가? 우리말 사전엔 자신이 졸업한 학교라 설명되어 있고, 한자문화권인 중국 역시 母校 [mǔxiào]란 어휘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영어로는 라틴어 어원의 alma mater라 하며, 라틴어에선 과거에 다녔던 학교를 의미하지만, 미국에서는 졸업한 학교를 의미한다. 동문회(同門會)를 영어로 alumni association이라 하는데, alumni는 졸업생을 뜻한다. 이로써 우리말 모교가 자신이 졸업한 학교란 의미는 알겠다. 근데 내가 졸업한 학교인데 왜 母를 써서 모교라 했을까. 自校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는 모교와 자교는 동의어로 자기가 다니거나 졸업한 학교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나의 자교는 강릉대학교 치과대학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혼란도 존재할 것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님께서는 “당신은 어린 시절 어렵게 자라 표정이 너무 딱딱해 직장 생활(민원 담당 공무원)을 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으셨단다. 그래서 부드러운 인상을 만들기 위해 거울을 보며 웃는 표정을 연습하셨고 그 후로는 민원인에게 인상이 좋다며 칭찬을 받았다”고 하셨다. 아들인 내 얼굴도 표정이 없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으니 당신처럼 거울을 보고 연습을 하라고 하신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주위에 절친한 친구들이 있어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인상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를 처음 떠나 서울에서 재수를 하게 되었다. 같은 반에 중학교 친구가 있어 초기 학원 생활을 하는 데는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6월 월례고사를 보고 친구가 다른 반으로 이동을 하였다. 친구가 떠난 후 붙임성이 없고, 표정이 없는 나는 외톨이가 되어갔다. 아침에 학원에 가고 저녁에 하숙집에 들어가는 일상생활은 감정을 무디게 만들었다. 문득 아버님 말씀이 생각나서 버스 안의 거울을 보며 다양한 표정들을 지어 보았다. 가족과 살며 즐거웠던 때, 친구들과 즐거웠던 순간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항상 긍정적인 표정을 지으려
2020년 6월 7일. 사랑하는 딸 민희가 사위 김병관을 만나 결혼하는 날이다. 작년 겨울에 날을 잡아 놓았는데, 코로나로 인하여 많이 불안하다. 1월 중순에 상견례를 할 때만 하여도 사돈댁인 대구에 코로나가 발생하지 않아서 즐겁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1주일 뒤부터 대구에서 계속 확진자가 많이 발생하였다. 3월에 결혼식을 하려 했던 필자의 고교 친구 2명의 자녀는 결혼식을 연기하였다. 5월에는 구로 콜센터,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 환자가 너무 많이 늘었다. 코로나가 심상치 않다. 결혼식 전날에는 결혼식장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 확진자가 다녀가서 백화점이 폐쇄되기까지 했다. 수백 명의 하객이 모여 결혼식을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과연 괜찮을까? 심하게 고민이 되었던지 필자의 몸무게가 5㎏이나 줄었다. 3년 전 아들이 결혼할 때 하객이 너무 많이 오셔서 전부 다 수용을 할 수가 없어서 너무나 죄송한 경험이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결혼식을 연락하기도 안 하기도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예식홀이 좀 작아서 고민하던 중 4월에 초등, 고등 친구들이 예식장에서 10분 떨어진 가락회센터에서 편안하게 친구들끼리 술도 마실 수 있는 200명의 피로연 자리를 제안하
우리는 종종 화를 낸다. 얽혀 살다 보면 어찌 기분 좋은 일만 있겠는가 하며, 화를 가라앉혀보려 노력하거나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려보거나, 그도 쉽지 않으면 화가 난 일 자체를 잊어버리려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화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반응은 분명 화가 난다는 것이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절대 이로울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리라. ‘화가 날 때가 가장 조심해야 할 때’라는 옛 말씀도 살아볼수록 참으로 귀중한 교훈인지라 필자도 화가 날 땐 이 말씀을 꼭 기억하려 늘 노력하는데 정작 화가 날 땐 도통 기억이 안 난다. 베트남의 승려인 평화주의자 틱낫한은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평화로운 마음가짐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화를 내는 것이니 당연히 그의 저술들에는 ‘화’에 대해 여러 면에서 깊이 생각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그가 쓴 책들 중에는 아예 ‘화’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그 책에서 화를 자주 내는 것이 왜 좋지 않은 지를 ‘집 지하실에 사는 사나운 괴물’의 예를 들어 흥미롭게 충고한다. 요컨대 화가 나고, 화를 낸다는 건 마치 우리의 마음이라는 집 지하실에서 ‘화’라는 괴물이 문을 열고 올라 나와서 마구 날뛰는 것과 같은
온통 세상이 코로나 이야기이다.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아 어쩔 수 없지만 여러 기관에서 열리는 토론회(대부분 비대면으로 개최된다)의 주제도 교육학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 경제학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 사회학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사회 문제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노말(뉴노말)을 이야기하고 걱정하고 흥분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새로운 워딩을 이야기하지만 그 내용은 구체화 되어 있지 않고 이 문제가 지나가고 나면 우리는 어떤 실제 모습을 하고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생물학 분야와 제약 분야에 최고의 과학과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지만 아직 이 분야에서의 우리나라 기술력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가기관과 산업계의 연구력이 코로나 이슈에 집중되는 현상을 볼 수 있지만 이 상황이 지나가고 또 다른 새로운 이슈가 나타나면 우리는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1년 전만 하더라도 미세먼지 문제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였고 국가기관과 산업계의 연구력이 미세먼지 문제에 집중되는 현상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 학회에서 개최하는 비대면 웹
세상이 혼란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혼란스러움이 어제오늘의 일인가? 아니다, 몇 년 전부터도 아니고, 몇십 년 전부터도 아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혼란하지 않았던 날은 하루도 없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뇌는 우리 몸이 소비하고 있는 에너지의 70% 이상인가를 소비하고 있는 구조물이다. 그래서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제거하고 있는데, 과거가 지금보다 나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뇌가 과거 고통의 기억을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늘 혼란스러웠고, 절망적일 때가 많았지만,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마음 속에 늘 긍정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에게는 항상 발전된 미래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들이 유튜브 등의 매체에서 많이 거론되고 있는 지금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AI 예측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비대면의 비즈니스가 발전할 것이고, 혼밥, 혼술, 방콕을 겨냥한 비즈니스가 앞으로 유리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인 ‘안전’+’게으름’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비즈니스의 대세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매일 반복되는 뉴스 속의 ‘코로나19 오늘의 발생 현황’은 어느덧 무덤덤한 일상 중의 하나로 되어 버렸습니다. 초기 코로나 양성 확진자가 발표되었을 당시 확진자의 모든 동선을 비롯하여 심하다 할 만큼의 과민 반응을 보였다면 처음과 달리 이제는 주변서 발생한 ‘코로나 확진자’에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합니다. 오히려 경기가 어렵다는 점이나 병원 내원 환자수가 떨어지고 있는 현실적인 경제 고민 등이 코로나19와 관련되어 나타났을 때 비로소 다시 코로나19를 생각하게 됩니다. 정부에서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국민 행동 수칙을 발표하였습니다. 과거와 달리 주변의 모든 행인이 얼굴을 가리고 마스크로 무장하고 다니는 것이 이제는 익숙한 거리 풍경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코로나19는 우리의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라 합니다. 마치 온갖 부끄러움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고 앞으로는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말고 얼굴에서 마스크를 벗고 가리지 않을 때를 준비 시킵니다. 국민 행동 수칙 중 또 다른 하나는 자주 물과 비누로 손을 꼼꼼하게 씻으라 강조합니다. 마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이제 그만 ‘손을 씻으라’고 강권하는 듯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오래전 조직학 강의시간이었던 기억이다. 트레이라고도 했고 캐러셀이라고도 부르던 둥그런 슬라이드 케이스를 하나도 모자라 두 세 개씩 들고 들어오시던 교수님께서는 마치 ‘치아와 치주조직이 찍힌 이 세상의 모든 광학현미경 사진은 물론 전자현미경 사진까지 너희들에게 모두 보여주마!’라는 기세로 한 학기 내내 그 기원과 조성과 구조를 부족함 없이 가르쳐주셨던 것 같다. 그토록 정교한 발생과 분화의 과정을 거쳐서 성장을 마친 완성품인 치아가 쓰다 보면 망가져서 못쓰게 되면 ‘여러분들’ -조직학 교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너희들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셨다- 이 환자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정성껏 잘 치료하여 더 오래 쓰게 고쳐줘야 하는 거라고 하시면서, 기초과목 중에 임상과목의 중요함을 일깨우셨다. 비록 냉·난방이 부실하고 하나의 긴 널판으로 된 등받이도 없는 장의자에 대여섯 명씩 앉아 듣던 30여 년 전 구식 강의실이었지만, 그곳에 앉아있던 우리들에겐 구형 프로젝터에서 뿜는 전구의 열기와 냉각팬의 회전음을 배경으로 찰카닥 소리가 나며 나타나는 생전 처음 보는 영상들은 공부를 떠나 호기심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그토록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롭고 재미있던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딸 민희가 결혼하게 되면서 딸에게도 필자에게도 추억이 되는,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깊이 했다. 그러던 중 절친인 서강대 경제학과 김영익 교수가 몇 년 전에 일반인도 보고 전문가도 보는 경제 서적을 낸 일을 떠올렸다. 김 교수처럼 일반인과 전문가에 도움이 되는 치아 교합에 관한 저서를 만들고 싶었던 필자가 작년 11월에 김 교수가 추천한 출판사로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자료를 보냈더니 정리가 덜 되어 어렵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고심하던 차에 2015년에 세계보철학회에서 ‘CBK(cranial balancing key) splint and anti aging effects’를 발표할 때 설문지 제작을 도와주신 천봉기 교장 선생께서 올해 2월에 스케일링 진료를 받으러 오셨다. 필자가 도움을 청하니 자료를 보내달라셨고, 천 교장 선생은 그 후 며칠을 밤을 새우면서 자료를 다섯 개의 챕터로 분리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 주셨다. 필자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해 주신 천 교장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덕분에 ‘CBK 스플린트 전신 건강을 지킨다’는 제목의 책이 인쇄에 들어가 사랑하는 딸 민희의 혼사 날인 6월 7일에 맞춰 세상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 속 거리두기를 통해 예전과 달라진 일상 속에서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다 재미난 기사를 찾았습니다. 몇 해 전인 2017년 6월 29일자 눈에 들어온 인터넷 기사 제목은 ‘일본 한 식당의 이상한 주문법이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였습니다. 내용인즉, 일본 도쿄시 도요스에 2017년 6월 3일 문을 연 겉보기에는 다른 식당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 그런 평범한 식당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식당이 특별한 이유는 손님이 주문한 음식이 제대로 나올 지 아니면 다른 메뉴로 바뀌어 나올지를 알 수 없는 ‘주문 실수’가 이 식당의 테마이기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이곳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여섯 명은 모두 치매 환자로 주문 실수는 물론, 주문을 받는 것조차 잊어버리곤 하는 문제가 있는 식당이었습니다. 라면을 시켰는데 우동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햄버거를 시켰는데 만두가 나왔습니다. 이럴 때 문득 주문을 잘못 넣었는지 한번은 의심하게 되는데 나오는 음식마다 매번 다른 음식이 나오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주문 실수가 넘치는 식당’이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엉뚱한 메뉴를 가져다줘도 화내는 손님은 한 명도 없습니
삼국시대에 제갈량이 죽으면서 유비의 아들인 유선에게 읽도록 했다는 책은 ‘동양의 제왕학 교과서’라고 불리는 “한비자”였다. “이 글을 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중국을 통일해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한 진시황이 법가인 한비자를 두고 한 말이다. 한비자는 음모에 휘말려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법가는 이후 중국 고대 국가의 기틀을 잡는 데 핵심 사상이 되었다. 당대에는 핍박과 위협을 받았을지 몰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시대의 발전은 이러한 원칙주의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시대를 앞서가는 원칙을 정하고 실천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역시 모든 역사적 사실이 보여주고 있다. 한비자가 말하는 군주에게 꼭 필요한 세 가지 통치 기재는 법(法)과 술(術) 그리고 세(勢)이다. 법(法)은 정치를 하는데 필요한 공정하면서도 엄격한 원칙을 말한다. 감정과 개인적인 판단이 아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원칙을 그 기준으로 삼는 것이 리더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성경 구절이 있다. 리더는 논리적이고 공정한 잣대를 가지고 사사로운 친분이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