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제1800번째 “그리운 제자들에게” 창밖 너머 치악산 자락의 하늘이 잔뜩 찌푸린 걸 보니 금세라도 눈발이 날릴 듯하네. 다들 어찌 지내는지 못내 궁금하구나. 학교를 떠나 소식이 채 닿지 않아도 모두가 자신의 터전에서 열심히 일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을 것으로 믿어.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세밑의 감상 탓인지, 불현듯 자네들과 지내온 날들이 떠오르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게 되네. 오늘 모처럼 짬이 나서 보고 싶은 제자에게 그리운 안부를 전한다. 우리 학과가 세워진 지 올해로 벌써 십년이 되었지. 그 생일잔치를 지난 시월 말에 무사히 치렀단다. 다들 친정집에 다녀가고 싶었겠지만 생활에 쫓겨 여념이 없었을 거야. 이날 생각지도 않게 많은 내빈께서 먼 걸음을 해 주셔서 왁자글하게 행사를 잘 마쳤어.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지. 이번에 창립 10주년을 계기로 학과에서는 그간 구상하고 추진했던 몇 가지 일에 작은 매듭을 지었단다. 지난 십년동안 우리가 쌓아온 흔적을 책으로 묶었고, 치위생의 자존을 표상하는 ‘폰스’의 흉상도 우뚝 세웠지. 아울러 그동안 노력해온 지역사회 구강보건사업을 좀 더 조직화하고 체계화하기 위해 ‘연세대학교 구강건강증진센터
Relay Essay제1799번째 나의 신경치료 답사기 오복 중 하나라는 치아 건강의 복이 없었던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치과 출입이 잦았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와 술래잡기를 하다가 넘어져 앞니가 빠져서 치과에 간 적도 있고, 대학생이 된 후에는 충치 치료로 집안 기둥을 두어개 뽑기도 하였다. 앞니가 반쯤 빠져서 피가 뚝뚝 흐를 때도 나는 눈물을 꾹 참고 직접 치아를 도로 집어넣는 용기를 발휘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지만 그 때부터 치과의사가 될 피가 흐르고 있었나 보다. 다음 날 교정치료 중이던 병원을 찾아갔더니 교정 선생님이 나에게 연산동에 있는 병원에 가서 신경치료를 받고 오라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시키는 것이니 먼 곳까지 수 차례 가서 신경치료를 받고 왔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왜 나를 다른 병원에 보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존과를 전공한 선생님께 신경치료를 의뢰했던 것 같다. 어린 내 기억 속에 남은 신경치료는 바늘 같이 생긴 걸로 치아를 몇 번 쑤시기를 반복, 그리고 물 빨아들이는 시끄러운 소리가 몇 번 났던 것 같다. 치과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치과보존과라는 과에서 신경치료와 수복치료
Relay Essay제1798번째 “기름 값이나 되었나요” 오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 나와 아내, 아내의 친구, 처형 네 명의 초보 농사꾼이 이른 새벽 화성 팔탄면에 있는 밭으로 향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수확철이 돌아왔다.아카시꽃이 다 시들었다고 소녀처럼 푸념하던 여인네들이 이른아침 밭 입구에 싱그럽게 달린 아카시꽃을 보고 탄성을 지르던 일…. 아침 참으로 가져간 음식을 밭에서 먹으니 아카시꽃 향기가 봄날의 아침상을 가득 채우고 서해안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온몸이 상쾌했던 기억이 아련하다.나는 밭골을 고르고 농사용 비닐을 펴고 세 사람의 여자 농군들은 고구마는 이렇게 모종을 심어야 한다며 서툰 솜씨지만 열심히 일하였다.모종 값 8만원, 차 기름 값 8만원, 농사용 비닐 값 3만5천원, 간식비 등 대충 계산해도 이번 고구마 농사에 들어간 원가가 시장에서 사먹는 돈보다 많을 것 같다며 웃으면서 가져간 들깨 씨앗도 정성껏 뿌렸다.농부들이야 그해의 농사 계획이 있어서 이것저것 열심히 수지를 맞추어 경영을 하지만 도시 사람들이야 전원생활의 막연한 호기심에 조금만 해보는 일이기에 농사를 해서 이익을 본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Relay Essay제1797번째 트라이앵글에 대한 추억 깊어가는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지난 10월 마지막 주말 오후, 어느 멋진 공연장에서 40여명으로 구성된 모교 브라스 밴드의 연주회가 있었다. 나는 타악기 파트에서 드럼과 작은 북 그리고 연주곡들 중에서 ‘트라이앵글’이 몇 마디 필요한 곡이 있어 같이 맡게 되었는데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이 새삼스러웠다. 이것은 초등학교 시절 조금은 우습게 생각하고 서로 꺼리던 악기가 아니었던가? 일명 짝짝이로 불리던 캐스터네츠와 탬버린 등과 같이…. 하지만 탬버린은 최근 성인들도 자주 사용하는 친숙한 악기가 되어버렸지만 그야말로 존재감이 적은 악기였던 기억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저 가끔 땡땡거리는 쇳덩어리가 아니었다. 부위에 따라 연주법에 따라 여러 가지 색깔의 소리를 낼 수 있으며 조용히 있다가도 꼭 필요할 때 울려주는 트라이앵글의 맑고 순수한 금속성 울림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그 진가를 느끼는데 너무 오래 걸렸지만 말이다. 그 시절엔 음악적 능력이 좀 더 있는 학생들은 실로폰, 피아노나 오르겐, 피리 등 멜로디 파트를 맡았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어린 마음에도 왠지 더욱 화려하고
Relay Essay제1796번째 칭찬합시다 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의 성공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신부가 결혼 앨범 제작자를 고소한 사건으로 “얼굴을 괴물로 만들어 단 한 번인 결혼, 아니 일생을 망쳤으니, 정신적인 위자료까지 물어내라”는 주장이다. 반대로 피고는 “지독하게 까칠한 고객을 만나 앨범을 세 번 만들어도 만족하지 못하니, 두 손 다 들었다”며, 돈이 더 들더라도 빨리 끝내만 달라고 한다. 착한 신랑이 신부를 달래어, 앨범을 한 번 더 만들고 약간의 위자료를 받는 조건으로 조정이 성립, 2년 만에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발표 뒤에 만찬 건배사에서 필자는 짧은 강평을 곁들였다. 이 사건의 주범은 바로 신랑이라고. 앨범을 처음 펼친 순간 신랑이 “뷰티풀! 웬 선녀?”했다면 분쟁도, 재판 동안 신랑 신부 간에 금슬의 훼손도 없었으리라. 짐작하건대 신랑은 귀여운 신부를 놀리려고“이거 당신 얼굴 맞아?”또는“웬 화장빨!”했거나, 아니면 트집 잡기 좋아하는 친구의 험담을 꾸짖지 않고 맞장구 쳤을 수 있다.이런 농담은 신부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영화 ‘A Face in the Crowd’(2011)는‘안면인식장애’라는 조금 생소한 정신질환
Relay Essay제1795번째 외국인환자 상담 두려움에서 자신감으로! 입사 2일 만에 데스크에서 만난 외국인. 머리가 노랗고 파란 눈을 가진 누군가가 다가와 “excuse me” 하며 다가왔다. 겁에 질린 나는 눈만 멀뚱멀뚱 뜨고 서있을 뿐이고 외국인이 “Can you speak english?” 라고 말을 듣는 순간 말을 알아듣고 No!! I can’t speak english라고 영어로 하면서도 못한다고 말하는 나… 참 외국인한테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일 것이다. 벌써 6년 전 이야기다. 어느덧 치과위생사로서의 일을 시작한지 6년차. 일을 배우기 시작한 이곳 인하대병원 공항의료센터에서 지금까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매일 오고 가는 인천 국제공항에서 영어를 못하는 직원이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외국인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을 때 말 못한다며 외면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 나였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일하는 곳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7년 연속 세계 서비스 1위 공항인데 직원으로서 영어를 못하는 것이 너무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시작한 영어 공부였다. 어찌 보면 영어공부를 한다는 명목 하
Relay Essay제1794번째 겨울 풍경화 속의 거리와 추억 퇴근 교통 혼잡을 피하기 위해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의 손길은 빨라지지만 치과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거리의 풍경이 어느 때보다 스산해 보인다. 가을이구나 싶었는데 벌써 겨울을 재촉하는 겨울비가 내리고 동지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시계바늘이 6시를 넘자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켜지고 벌써 어두워졌다. 겨울비가 내려서 나무에 매달렸던 단풍들은 힘없이 떨어지고 더욱 거리의 풍경은 을씨년스럽다. 바쁘게 살고 나이가 한살 한살 먹다 보니 계절이 바뀌는 것을 입고 있는 옷 두께로 알아차릴 정도로 감성이 메말랐다는 걸 오늘 문득 느꼈다. 아름다운 옛 추억까지 잊어버리고 산건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오랜만에 겨울비 내리는 거리를 창문을 통해 바라보니 가슴 속에 묻어둔 메마른 감성이 다시 살아나는 것일까? 평소 같으면 무심히 창문 밖을 보고 하던 일을 계속 했을텐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좀 감성적이고 싶은 때다. 라디오 DJ가 내 마음을 알고 있었는지 겨울을 알리는 노래를 연달아 들려준다. 겨울 노래다. 크리스마스 캐롤, 유명한 팝부터 가요들이다. 피곤하지만 커피
Relay Essay제1793번째 탈북 강아지 우선 제목부터가 신기하다. 탈북 강아지라 하면 강아지가 북한을 탈출해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것 아닌가? 요새 탈북한 새터민이 2만5천명이 넘는다고 하니 그 중에는 사람 뿐 아니라 강아지며 돼지며 송아지도 올 법도 하다. 그래도 그렇지 한 사람이 탈북하는데 엄청난 큰 돈이 들고, 목숨을 걸다시피 해 탈북을 한다는데 세상물정 하나도 모르고 돈 한 푼 없는 맹랑한 강아지가 탈북을 했다니 이해가 안가고 의아스럽다. 이 기이한 이야기는 이러하다.동해안 어느 한적한 마을에 일가족 한 무리가 남쪽으로 탈출을 하기 위해 여러 날을 노심초사하며 날을 잡아가고 있었다.드디어 그 날이 왔다. 칠흑 같이 깜깜한 밤이다. 행여 들킬까 봐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정해진 해변가로 갔다. 대 절명의 순간이다. 잘못되면 온 식구가 몰살을 당할 판이다.그 순간 어디선가 킹킹킹 하는 강아지 우는 소리가 들렸다.화들짝 놀라 그쪽을 보니 ‘멍구’란 놈이 숨죽이고 살살 기면서 쫓아오고 있다.모두 돌을 던지며 ‘멍구’란 놈을 쫓으려고 애를 썼다.그러나 ‘멍구’는 막무가내다. 좀 뒤로 갔다가 다시 오고 하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시간이 없는데 무작정 ‘멍구
Relay Essay제1792번째 가을, 연민 그리고 영화… 가을은 나에게 영화의 계절이다. 그리고 가을은 닥쳐올 추위를 걱정하고 그 추위에 떨고 있을 사람들을 걱정하는 연민의 계절이다. 이렇게 차가운 비가 오는 날은 그 연민이 더한다. 결혼 전 필자는 주말이면 이틀 밤을 꼬박 밤새워 영화를 즐겼었다. 결혼 8년차, 가족을 이룬 지금은 그나마 가끔 아내와 함께 늦은 밤 나란히 누워 영화를 즐기는 낙이 전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때와는 다르게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이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재미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다 라는 지론을 가진 필자는 재미 있을 것 같은 영화는 가리지 않고 즐긴다. 전쟁, 액션, SF, 공포, 멜로, 컬트 등등… 모든 장르의 영화들이 다 제각각의 색깔이 있고 재미가 담겨있다. 내가 보았던 수 많은 영화들 중 이 연민의 계절에 어울리기도 하고 나에게 연민의 감정을 가르쳐 준 31년 전에 보았던 영화 한편을 이야기 하고 싶다. 고백하자면 영화의 모든 내용이 완벽하게 기억나지 않아서 인터넷의 도움을 성실히 받았다. 이탈리아의 영화거장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가 감독한 ‘길’(La Strada)은 그의 아내인
Relay Essay제1791번째 20대 마지막에 떠난 캄보디아 여행 건기가 반 우기가 반이라는데 알고 보니 아주 더울 때 캄보디아에 다녀왔다. 앙코르 문명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대해 더 많이 느끼고 왔다. 혼자 하는 여행은 외로운 만큼 여행지에 기대고 관찰하는 마음이 커진다. 가난한 나라 캄보디아. 주로 이용하는 교통 수단은 오토바이, 자전거 등이고 아직 도로에 차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이동할 때 평균 속력을 보니 20~30킬로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교통 신호도 딱히 없고, 중앙선이라는 개념도 없고, 보행 신호등은 3박 4일 동안 본 적이 없다. 도로 위에 그려진 횡단보도가 고마울 뿐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신호가 없는 길을 건너려니 여간 번거로운게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는 오토바이가 무용지물인데 이곳 사람들은 그 더운데 헬멧까지 쓰고 잘 다닌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여자들도 상당히 많고, 한 오토바이에 2명은 기본, 온 가족이 타고 다니는 것도 봤다. 캄보디아의 모습은 이렇게 복잡한 거리 풍경으로 남아있다. 생각지도 못한 캄보디아에 대한 깊은 인상은 조금이나마 한국말을 할 줄 아는
Relay Essay제1790번째 DOWNGRADE… 이번에 그동안 타던 외제 승용차를 팔고, 국산 디젤차로 바꾸었다. 외제차는 고장 나기 시작하여 몇번 수리를 하니 금새 수리비가 국산 소형차 값이 나온다. 그래서 헐값에 팔았는데 팔고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대용으로, 국산 SUV 디젤차를 샀는데 A/S 좋고, 연비 좋고, 운전석이 높아 운전 중 시야가 좋아 매우 맘에 든다. 하긴 평소에 나는 BMW( bus,metro, walking)를 타고 다니니 별로 차가 필요 없는데, 어쨌든 차를 downgrade시키니 마음 편하고 좋다. 그동안 모든 면에서 나를 upgrade시키려고 노력을 했다. 대학에서 대학원으로, 차도 점점 큰 차로, 집도 점점 큰집으로 늘리고, 병원도 점점 규모를 늘리며 확장하고, 사회적으로도 지역 치과의사회의 이사에서, 부회장, 회장으로 고교 동창회장, 서울치대 동창회 부회장, 대한치과의사협회 부회장을 두 번이나 하고 한때는 나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치협 회장을 하려고 선거판에 잠시 참여한 적도 있다. 모든 면에서 사회적으로 더 성공하고 명예도 더 추구하고 돈도 더 벌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던 나에게 인생의 downgr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