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치과의사입니까? 환자와 국민들이 생각하는 우리 치과의사들은 어떤 수식어가 붙어 있을까요? -떼돈 버는 치과의사 OO들-환자의 지갑을 최대한 털어보려는 치과의사 OO들-지들끼리 더 벌겠다고 끝없는 가격경쟁으로 치고받는 OO같은 치과의사 OO들-치과의사는 장사꾼~ 내가 생선을 팔아도 저런 광고는…좀…?안타깝께도 목욕탕 탈의실에서, 소극장 연극대사에서, 인터넷에 올라있는 글에서 실제로 보고 들었던 표현들입니다. 일부(?) 치과의사에게 해당되는 극단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우리 치과의사들의 끝없는 욕심으로 자초한 결과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빠가 어떤 치과의사이기를 바라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혹여 우리 아이가 치과의사가 된다면 어떤 치과의사가 되기를 기대할까 생각해 봅니다.-아픈 치아를 정성껏 잘 치료해주어 환자들로부터 존경받는 고마운 치과의사-환자에게 꼭 필요한 치료는 아무리 값싼 치료라 하더라도 짜증내지 않고 따뜻한 마음으로 성의껏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치과의사-기본진료에 충실하고 진심으로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를 성의껏 해나가며 쌓
대믈리에의 축재(蓄財) (하) 다른 아이들은 딱지치기, 다마(玉 구슬)치기를 해서 나름대로 부를 축적하는 방법을 배웠다. 난 딱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딱지는 집에 있는 종이로 얼마든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돈을 마구 마구 찍어대는 나라의 화폐는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구슬은 좀 갖고 싶었으나 사고 싶진 않았다. 더구나 내기를 해서 구슬을 잃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집에 딱지나 구슬을 쌓아 놓고 뻐기고 있어도 그다지 부러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어쨌든 보고 싶은 만화도 안보고 먹고 싶은 과자도 참아내고 하기 싫은 아르바이트도 견뎌 내며 모은 돈이 그 때 돈으로 거금 2만원. 이제 부피가 커져 더 이상 그 돈을 저장할 공간도 없고 도난의 우려도 커져 몇날 몇밤을 고민하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말씀드려 땅을 좀 사달라 할까? 아니면 주식을 좀 사 놓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찾아간 곳이 앞집 상업은행이었다. 그리고 지점장의 환대 속에 VIP룸에 들어가 정기 예금을 하고… 라는 것은 여러분이 이미 짐작하신대로 뻥이다.그 대신 나는 엄마와 상의를 했다.“엄마, 내가 아무도 몰래 돈을 좀 모아 두었는데…?"“몰래
대믈리에의 축재(蓄財) (상) “제가 2만원을 모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디다 투자를 해야 할지 방법 좀 알려주세요."난 은행지점장에게 진심 어린 말로 이렇게 물어 보았다.“정기 예금을 하지. 복리 15%를 쳐 줄 테니 우리 상업은행에 맡기라구." 그는 이런 뻔한 대답으로 날 실망시켰지만 별 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 그 돈을 바로 은행에 예치했다.대전 상업은행 바로 뒤에서 살았지만 실은 은행 지점장을 찾아가기 전까지만 해도 난 은행거래를 할 줄 몰랐다. 돈이 생기면 그냥 땅에 모아 두었다. 긴긴 겨울밤을 위해 다람쥐가 도토리 물어다 감추듯이 땅을 파고 숨겨 두었던 것이다. 마침 이웃집이 양옥으로 영국식 빨간 벽돌 담벼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담벼락이 가장 안전할 것 같아 담 밑을 파고 돈을 파묻었다. 도둑이 담을 넘어 가는 것은 봤어도 담벼락 밑을 파간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기에…. 지금도 정확히 생각나는데 돈을 잘 접어 비닐에 싼 후 깡통 속에 차곡차곡 넣어 두었다. 빗물이 흘러내리는 우수관(雨水管)을 피해 내 딴에는 숨긴 장소를 잊지 않으려고 관으로부터 몇 번째 벽돌을 기억하고는 그 밑에 묻었다. 물론 일정 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고약한 놈 패스워드
꽃동네에서의 해프닝 (하)<지난호에 이어 계속> 친구 ‘허"와 나는 1시간 정도 꽃동네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적지 않게 땀을 흘리며 우리가 타고 온 승용차에 다다랐다. 친구 ‘황"은 승용차 에어컨을 의지해 독서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황"의 이러한 모습은 예(禮)를 크게 벗어나 우리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세 사람이 다시 승차한 자리는 괜히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다. 가이드 역할을 한 ‘허’는 현지 친척 집으로 들어가고 두 사람만 귀경길에 올랐다. 도중에 우리 둘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안전운행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며칠 뒤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이며 친구 ‘허’는 “황이 지나치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으니 술자리를 마련하여 풀어버리도록 해보자”는 제의를 해와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또 ‘황’에게 각 위인들의 책자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주어 독서 자체를 인격과 직결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방향으로 유도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좁은 소견대로 처신하는 경우, 친구 간 의절까지로 발전될 수 있는 위기가 봄눈 녹듯이 해소되며 보이지 않는 교훈을 주고받는 두 친구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렇게 조
꽃동네에서의 해프닝 (상) 나에게는 오랜 벗 두 사람이 있다. 한사람은 ‘황"이라는 친구요, 다른 하나 ‘허"라는 친구이다. 우선, 친구 ‘황"은 방송인으로서 어디를 가든 누구에게나 쉽게 말을 트고 상대방의 마음을 터놓게 한다. 그래서 금방 사람들과 친해질 만큼 친화력이 뛰어나고 입담이 좋아 봄날 물고가 터지듯 술술술 풀어내는 재치에 듣는 사람들이 빠져들 때가 많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고 술자리가 무르익어 갈 때라도 가고 싶으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다. 평생을 공무원으로 지내고 정년퇴임한 다른 친구 ‘허"는 언뜻 보면 대쪽 같아 보여 누구나 쉽게 말을 걸지 못한다. 어디를 가든지 개인적 이익보다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고 판단하며 일단 결심을 하게 되면 거침없이 밀어 붙이며 이를 실천해 부실한 현실을 온전하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성품이다. 사회나 국가의 이익, 즉 공익을 우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정반대의 성품을 가진 친구들과 40여년을 함께 지내다 보니 사뭇 특별한 경험을 할 때가 종종 생긴다. 작년 뜨거운 여름날 ‘허"의 주선으로 충북 음성군 ‘꽃동네"를 방문 했을 때의 일이다. 그 친구는 승용차로 꽃동네 곳곳을 안내하며 한국에서 가장 불
아프니까 군인이다 Episode 1진료실 컴퓨터 책상에 앉아 있노라면 매일 아침 비슷한 시트콤이 제작되는 현장을 볼 수 있다.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이 우렁찬 경례소리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온다. 의무병들이 자리를 지정해주며 “저기로 가서 앉으세요” 라면 바짝 얼어있는 그 이등병은 유니트체어가 아닌 스툴에 가서 각잡고 앉아 있는다. 이건 수련할 때 70대 이상 할머니들이 자주 하시던 건데 군대에서 또 본다. 답답한 의무병이 “어이 아저씨(병사들끼리의 비공식적인 호칭), 거기 말고 옆에 긴 의자에 앉으세요” 그러면 그 이등병은 당황해서 일어나다가 체어라이트에 부딪히고… 이제는 매일 봐서 웃기지도 앉은 장면이다. 내가 다가가면 안그래도 바짝 얼어있던 그 이등병은 다이아 셋 계급장이 다가오자 더 긴장한다. 군의관 어디가 불편해서 왔니?이등병 (두리번 거리다) …잘…못들었습니다?군의관 휴우,,, 어디가 불편해서 왔냐구?이등병 이,,, 이빨이 아파서 왔습니다. 군의관 (파노라마 스캔 후) 여기 충치가 엄청 심하거든이등병 그렇습니다. (보통이라면 “네”라고 대답하는 상황이다)군의관 신
아버지의 등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던 너무나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이 너무나 다른 의미로 다가 오는 그런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의 경험이 인생의 큰 방향을 결정짓기도 한다. 어릴 적의 나는 하고 싶은 일도 되고 싶은 일도 많은 꿈 많은 소년이었다. 당시 또래라면 습관적으로 이야기하곤 했던 장래 희망 과학자와 대통령 뿐 아니라 소설가나 기자도 되고 싶었고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 같은 멋진 고고학자 역시 되고 싶었다. 하지만 되고 싶은 것이 많았던 만큼 실제 진로를 결정할 때의 혼란스러움 역시 남들 보다 더 했었다. 인디아나 존스는 영화 속의 주인공일 뿐 실제 고고학자는 아니라는 식의 현실을 알려주는 주변의 충고 역시 그 혼란을 더하게 만들었다. 장래에 대한 결정을 위해 고민하던 와중에 그 날 왜 아버지의 병원을 찾아갔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날의 그 광경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병원 문을 들어서고 병원 간호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여느 때와 같이 진료실을 가로질러 원장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진료를 하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이었다. 어릴 적부터 수 없이 봐왔던 진료하시는 아
용띠인 나, 힘차게 솟아 오르리라 나의 청춘이 살아 움직였던 곳! 지금의 나를 키워준 곳! 나의 모교인 원광 보건대학교를 갈 때마다 가슴 속 깊이 용솟음치는 무언가가 있다. 생기발랄한 후배들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그 나이가 되어 강의실, 운동장, 벤치를 거닐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15년 전에는 없던 멋스러운 ‘테레사9’ 카페테리아에 앉아서 잠시 흘러간 시간들을 느낀다. 아메리카노가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임상가 치과위생사로서 1주일에 2번은 학생이 되어 그 시절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 속에서 나를 재발견하고 있다. 원광대학교 보건환경대학원 구강보건전공을 하고 있는 내가 수업받기 전 잠시 들렀다가는 나의 모교, 때론 교수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때론 과사무실 후배 조교선생님들을 보기도 하고 아참, 우리 조교선생님들은 연차 높은 선배가 오는게 좋지만은 않겠구나! 살짝 소심한 생각도 해본다. 낭만의 계절 가을이 가고 국가고시로 열심히 공부하는 후배들의 숨결로 가득한 도서관을 지나 오늘도 나는 대학원으로 발을 옮기고 있다. 정형화된 건물들, 앙상한 나무들도 그대로 있는데, 유리창에 비친 나는 어느덧 서른이 훌쩍 넘은 여성이 되어 있다. 마음만은 20대 발랄한
값진 경험, 그리고 새로운 시작-제13회 전국 치대·치전원 학생학술경연대회에 참가하며 2010년 8월, 선배의 권유로 제37회 APDSA(Asia Pacific Dental Students Association)에 참가하게 되었다. APDSA는 아태지역 치과대학생들의 학술·문화교류의 장이자 38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제적인 친목도모 행사로, 37회는 일본에서 개최되었다. 국제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부푼 가슴을 안고 선배들과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APDSA에는 City Tour, Cultural Night 등 여러 행사가 있지만, 메인 프로그램 중 하나는 바로 SRC(Scientific Research Competition)이다. 당시 본과 3학년이었던 이주호 선배가 한국 대표팀 중 하나로 참가했고, 3rd prize를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처음엔 정확히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 잘 몰랐지만, 실험과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를 발표하는 대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에 흥미가 생겼다. 행사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후에 연구를 시작하고 싶어서 학생 연구활동에 대해 더 알아보았다. 그렇게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 막막
나의 모짜르트 음악 10선 (하)(201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우수논문상 수여작) <1998호에 이어 계속> 4. 나의 모짜르트 음악 10선얼마 전 지인들의 모임에서 내가 모짜르트만 주로 듣는다는 것을 알고 어떤 곡을 들어야 하느냐고 문의가 와서 10곡을 선정해 보았다. 비교적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곡들을 골라보았다. 하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과 개인적인 선호에 의해서 정하였다는 것을 고백한다.<Piano Concerto>K 466 Piano Concert in D minor (No 20) 퀘헬 1번 <피아노를 위한 안단테>를 작곡한 5살 이전부터 모짜르트는 피아노를 끼고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곡들이 피아노 협주곡에 몰려있는 것 같다. 단조의 어두움을 그대로 나타내며 장중하면서도 힘있게 시작되는 1악장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죽어가는 모짜르트를 향해 집을 나갔던 부인이 황급히 돌아가는 마차 장면에서 쓰였다. 특히 ‘Romance로 연주하게 되어 있는 2악장의 단순하면서도 주옥 같은 피아노 선율은 압권이다. K 467 Piano Concerto in C
나의 모짜르트 음악 10선 (상)(201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우수논문상 수여작) 1. 모짜르트를 통해서 천재의 머리 속을 엿보다노벨상을 받은 천재과학자들의 연구나 필즈상을 받은 수학자의 이론을 우리 범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인 E=mc2 조차도 일반인들은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채널을 통하면 평범한 사람들도 천재들의 작품을 통해서 소통할 수 있을 것 같다. 모짜르트를 특히 좋아하는 나는 몇 년전 모짜르트가 5세때 작곡한 퀘휄번호 1번 <피아노를 위한 안단테>로부터 35세때 작곡한 퀘휄 626번 <라퀴엠> 까지 전곡을 한 CD점에 부탁해 구입한 적이 있다. CD를 쌓아놓으면 약 2m 정도가 되는 분량이었다. 구입하고 나서 처음에는 그 반이 미사곡과 오페라인 것을 알고는 크게 후회했다. 하지만 한번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희귀 오페라를 들어 보고 나서는 후회가 감사로 바뀌게 되었다. 난생 처음 들어 보는 모짜르트의 희귀 음악조차도 하나같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35년 밖에 안 되는 모짜르트의 삶 (Jan 27th1756~Dec5th1791)중에 이렇게 방대하고도 감동을 주는 작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