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실 隨想 (하) <1895호에 이어 계속> 나는 평소 종합건강진단을 기피해 왔다. 검사하다보면 어디엔가 무슨 병이 발칵 될 것 같은 불안과 걱정이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큰 맘 먹고 종합검진을 받았다. 검진발표를 기다리는 마음은 무슨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것 같이 가슴이 두근거린다.의사들은 참 야속하다. 의사들이 진짜 야속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고 기대를 갖는 환자의 마음이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담당의사와 짧은 면담을 하고, 나는 너무 미흡하고 섭섭하다보니 야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꼭 물어보고 싶은 한 마디를 그냥 막아버리는 것이다. 물론 짧은 시간에 수 많은 환자를 소화해야 하는 의사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웃기는 얘기다. 나는 어떤가? 무뚝뚝하기로 소문났다는 나는 환자한테 얼마나 친절했느냐를 생각하면 이런 말을 하는 내가 뻔뻔한 생각이 든다. 한번 한 얘기를 또 하고, 저만치 나가다 들어와서 또 하고, 심지어 문밖에 나가 한참 가다가 돌아와서 또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다. 환자나 의사나 경우와 정도의 문제라고 본다. 서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을 때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
제1602번째 입원실 隨想 (상)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다. 벌써 가을이다.입원실 창가에서도 가을이 보인다.멀리 보이는 산과 하늘, 흘러가는 구름, 아파트, 고층빌딩, 타워 크레인 같은 건축 장비들, 그리고 도심을 가로 지르는 순환도로…. 서울의 살아있는 모습이다. 무엇인가 생명의 흐름이 있는, 활기찬 움직임이 보이는 시가지를 바라보면서 마음 한쪽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 어찌할가? 이 광명이 암흑으로 변한다? 바로 삶과 죽음에 대한 번뜩이는 생각이다. 종합병원을 방문하다보면 환자대기실, 입원실, 복도, 모두가 붐빈다. 웬 환자가 이렇게 많은가? 그때는 남의 일이니까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다. 입원실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말 그대로 쓸쓸하다. 특정 상황밖에서 그 상황을 바라다보면 그저 그렇겠지 하는 관망의 정도지만 그 상황 안에 있는 사람은 절실한 자기의 현실 인 것이다.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가? 생과 사의 갈림길, 저만치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한, 욕망과 집착을 갖고 열심히 살았던 지난 시간들, 마시고 또 마시며 방황하고 낭비한 시간들, 가슴에 꽂힌 그리움 때문에 저미는 가슴을
초보치의 학술대회에 도전하다 螳螂拒轍(당랑거철)평택의 한적한 시골 지소에 공중보건의로 발령 받은 지 두 달 남짓 지난 2009년 6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어버린 아낙네처럼 하염없이 환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료한 마음에 인터넷 웹서핑으로 시간을 보내다 우연히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이하 대공협) 홈페이지에 접속하게 되었다. 홈페이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학술게시판에 올라온 흥미로운 글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제4회 공중보건의사 심미수복학술대회’ 공고문이었다. 심미수복 관련 강연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특전을 제공함과 동시에 발표만 해도 상품을 준다는 사실이 내 구미를 당겼다. 결국 잿밥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참가신청을 하고 말았다. 주최 측에서 마련한 강연을 수강하고 그곳에서 습득한 지식과 술기를 기반으로 임상증례를 준비했다. 많이 부족한 실력을 가지고 나름 열심히 준비한 발표 자료를 주최 측에 제출했다. 운 좋게 예심을 통과했고 학술대회 당일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윽고 학술대회가 개최되는 날이 되었다. 첫 번째 순서로 발표를 한 나는 나머지 11명 참가자들의
큰 아들 셋 군대보내기 큰 아이가 군대를 간다며 학교를 휴학한지가 꽤 되었다. 단짝친구 세 녀석 중 둘이 함께 휴학을 하고 이리저리 밤낮없이 몰려다니는 게 보기 싫어서, 본인들이야 서운하건 말건, 너희 나이의 하루 한 달이 얼마나 귀한지 지금은 모른다며 아까운 시간들을 그저 흘려보내지 말라고, 기왕 다녀올 거 얼른 가라고…하나마나한 잔소리를 거듭하였다. 중학교 1학년 때 한 반에서 만나 각기 다른 특목고를 지원했다가 나란히 고배를 마신 녀석들. 일반고 전형에서도 1차 지망 학교에 배정되지 못하고 운명처럼 한 학교에 모이더니 3년을 내리 세 쌍둥이처럼 움직이던 녀석들이다. 셋이 어울리는 시간이 많은데다 하나같이 친구들의 일이라면 자기 일보다 더 나서곤 하니 이래저래 공부할 시간을 뺏기는 것 같아 엄마들은 고까와 할 수가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학갈 땐 한 녀석도 그 엄마를 흡족하게 만들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말았다. 엄마의 기대를 채우지는 못하였어도 스스로 만족할 정도는 해낸, 주변에선 칭찬일색인 큰 아이의 궤적을 교훈삼으며 이제 세상의 잣대로만 아이들을 바라보고 채근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였지만 간혹 치미는 미련까지는 스스로도 어쩔
제1599번째 직장에서 재미를 찾자 처음 직장생활을 할 때 한 직장에서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직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대체 왜 그렇게 끈기가 없을까? 옮긴다고 한들 얼마나 더 좋다고…’ 하면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첫 직장을 만 5년 만에 나름대로, 그럴싸한 이유로 그만 둔 이후 새로운 직장에서는 2년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 동호회 사람들과 모여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내게 “너는 왜 그렇게 모르는 게 없냐?” 하고 물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그날 이야기한 주제들이 내가 거쳐 온 직업들과 모두 상관이 있는 것이었다. ‘정말 많이도 옮겨 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정착을 못하는지 비난했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나는 왜 그렇게 여러 가지 직업을 거쳤을까? 요즘 세상이 전문직이 아닌 이상 한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도 하지만 그 때문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 것은 다 참아도 같이 일하는 사람과 마음 안 맞고 힘든 건 견딜 수가 없다고 하는데, 그것 때문도 아니었다. 나 때문이었다. 내 능력에 너무 버겁다고 생각되었거나, 그래서 지레 겁을 먹고 그만두었거나, 너무 수월
피카소와 모던아트 전(展)에 가다 제1598번째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오스트리아 ‘알베르티나’ 미술관 소장품 중 20세기 초 유럽 미술명품 121점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린다고 지면을 통해 알게 됐다. 20세기 유럽 미술계의 흐름을 이번 전시로 그 맥락을 이해하는데 좋은 기회인데 오늘에야 시간을 내어 혼자 덕수궁을 찾았다. 남들은 팔자 좋아 가을 단풍 구경으로 전국 명산을 누비는데 서울 살면서 몇 시간이면 볼 수 있는 미술전에 오늘에야 큰마음 먹고 나오면서 단풍이야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가슴속에 담을 수 있고 꼭 명산에 가야 하랴하는 자위를 해본다. 시내 곳곳 가로수가 가을 풍으로 절정을 이루고 덕수궁 돌담길과 궁 안에 흐르는 가을 정취를 보는 이로 하여금 얼마든지 마음속에 담아 갈 수 있다. 가을은 느끼는 자만의 것이 아닌가. 경로는 5000원, 주일이라 전시장은 비교적 많은 관람객으로 붐빈다. 오스트리아 알베르티나 미술관은 나에게는 생소하나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미켈란젤로 같은 르네상스 작가뿐만 아니라 야수파를 비롯해 무려 100만점의 방대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합스부르크 공국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女帝)의 사위인 알베르트
내 삶의 활력소 2001년 6월. 드디어 큰 포부를 갖고 개원준비에 들어갔다. 여러 가지 준비 끝에 개원은 성공적으로 시작했지만, 개원직후에 남아있는 건 다양한 부채뿐… 천천히 해결해 나가야 할 부분이었지만, 개원초기엔 상당한 부담감이 있는 건 사실이지 않은가. 그러한 부담감으로 목 부위와 허리 쪽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었다. 머리도 돌리기 힘들었고 허리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이러다간 조기사망 하겠구나’ 하는 또 다른 불안감이 다가왔고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운동이었다. 개원이후 처음 시작한 운동은 수영이었다. 수영강습의 단계는 기초반,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 그리고 연수반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 수영복 하나만 챙겨서 수영장으로 향했다. 강습 첫날 수영모자를 지참하지 못하고 가서 코치님께 꾸중들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50cm 깊이의 유아풀에서 시작된 기초반에서는 호흡법을 배웠고, 초급반으로 올라가서는 발차기를 배웠다. 중급반으로 올라가서는 영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고급반에서는 4가지 영법으로 운동량을 올렸으며, 연수반에서는 강습시간 내내 25미터풀을 쉴새없이 돌린다. 수영시작 당시엔 치과에 출근
외로움의 극복 점심시간에 맛 집이라고 알려진 기사식당에 밥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주차장에는 택시들로 차있고 식당 안에는 택시기사 분들이 한사람씩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다. 일반 식당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였다. 나도 주문을 하고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외로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구나… 대형병원에서 단체생활을 해보지 않은 우리 일반 구멍가게이자 가내수공업인 작은 치과의원 원장들만 외로운 게 아니구나…. 혼자서 밥 먹기가 싫어 주위 원장님들과 같이 식사도 해보고, 직원들과도 먹어보고, 도시락도 들고 다녀보고… 치과의사 생활이 3개월 후면 19년이 되어가지만 지금도 점심시간이 되면 누굴 꼬셔 같이 밥을 먹나 고민한다. 점심시간만 외로운 것이 아니다. 진료실 골방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환자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져 가는 요즘에는 외로움을 뛰어넘어 해탈의 경지에 이를 지경이 되었다. 그래도 주위 선배, 후배님들 중에는 항상 웃고 다니시고 즐겁게 사시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을 보면 그분 나름대로의 인생 즐기는 방법이 있다. 어느 나라 속담에 ‘인생에서 가장 재밌는 것을 직업으로 갖지 말라’는 말이 있다. 가장 재밌는 것은 취미로 즐기라는 뜻
사과향기 그득한 문경에서의 하루-서여치 가을기행을 다녀와서-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나도 아이들도 ‘제발 비가 안와야 할텐데’라고 기도하던 날 ; 바로 서울여자치과의사회(서여치)에서 가을기행을 가는 날이다. 준비하고 신청받고 하면서 기대반 걱정반이었던 10월, 막상 전날 밤에 내일 아침 6시로 알람을 맞추면서 초등학교 때 소풍가기 전날처럼 오랜만에 가슴이 콩닥거려서 괜스레 7살짜리 막내한테 슬그머니 부끄러워지고…. 새벽부터 식구들을 일제히 깨워 세수시키고, 오늘 기행을 위해 전날 밤을 우리집에 와서 보낸 큰아이 친구까지 함께 출발장소로 향했다. 평상시엔 똥침을 예닐곱번 날려도 일어나지 않던 애들이 가을기행 늦는다는 소리 한마디에 부스스 각자 방에서 나오는걸 보고 가끔 써먹어야겠다는 얕은 웃음으로 그날 아침 나의 가을기행은 시작되었다. 이른 출발시간이라 혹시라도 늦게 오시는 분이 있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모든 회원들이 정시에 다 도착하셔서 역시 치과의사들의 높은 교양수준이 입증되었고 오랜만에 만나 함께 여행가는 10년지기 20년지기 동창들의 정겨움이 두 버스를 가득 채웠다. 이른 아침 오시느라 혹시라도 허기졌을까
마지막 남은 고귀한 아날로그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의 강의실. 한 교수님께서 도화지만한 누런 갱지의 강의록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강의에 열중하고 계신다. 잇따라 들리는 소리, “다음 슬라이드, 철커덕…, 다음 슬라이드, 철커덕…” 강의 도중에 슬라이드가 프로젝터에 끼었나보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조교가 트레이 속을 긴 자로 쑤셔대고 있다. 늦은 밤, 같은 대학 부속병원의 텅 빈 치과진료실. 그 교수님께서 치과유닛의 브래킷을 책상 삼아 치과조명 등을 밝혀놓고 논문을 열심히 쓰고 계신다. 집게로 물린 이면지에다 지우개가 달린 나무연필로 말이다. 이 상황은 과거의 회상이 아니라 2010년 현재이다. 필자가 유 교수님과 지금의 대학에서 함께 일하기 시작한 것은 8년 전이다. 처음 한동안 나는 이 분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송구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속 터지는 심정이었다. 이 분이 정년퇴임을 목전에 둔 백발성성한 원로 교수가 아니셨기에 더욱 그랬다. 이 분에게는 컴퓨터라는 게 아예 없었다(물론 지금도 없지만). 따라서 파워포인트 파일로 작성한 강의록은 말할 것도 없고, 이메일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주위의 간곡한 권유와 성화를 뿌리치고
소화제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 해왔었다는 편이 정확한 표현이다. 평소에 양식당을 자주 이용해왔고 이왕이면 낯선 이국(異國) 식당을 찾던 호기심 많은 나 이기에….여행을 하면서 현지 음식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은 내 사전에는 없었다. 평소 식사시에도 김치와 된장을 거의 먹지 않는 나 아니었던가! 비행기에서 제공되는 음식도 한식(韓食)보다는 양식만을 골라 먹었다. 이태리 음식이면 이태리 음식, 프랑스 음식이면 프랑스 음식 모두 다 - 음 모두 다 라는 것은 어폐가 있지만 -알려고 노력하고 친해지려고 애써왔기에 양식을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으리라 생각해왔다. 적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작년 여름 이탈리아의 안코나안코나는 이태리 중동부의 항구도시로 한반도의 원산 정도 위치로 보면 된다근처 시골 작은 동네에 약 2주간 머무를 기회가 있었다. 당시 파스타의 나라, 피자의 나라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리조토를 또한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들떠 있었다. 스트로우처럼 속이 빈 국수 마카로니, 만두피처럼 넓적한 국수 라자네, 마카로니를 잘라 만든 펜네, 우리가 파스타의 전부인 것처럼 알고 좋아하는 길고 가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