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에 개봉된 “스모크 Smoke(웨인 왕 감독, 폴 오스터 각본)”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를 전공의 말년 차 시절에 보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생각나는 영화이자 어쩌면 나에게 인생 영화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기 렌(Auggie Wren, 하비 카이텔 연기)은 브루클린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작은 담배 가게 주인이다. 소설가 폴(Paul Benjamin)은 임신한 아내가 3년 전 권총 강도의 총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에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저녁 폴이 담배를 사러 갔다가 오기가 11년 동안 매일 아침 8시에 담배 가게 맞은편 코너의 동일한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기는 폴에게 자신이 찍은 4000장이 넘는 사진을 보여준다. 사진첩을 넘기면서 “이거 뭐 똑같은데” 하고 폴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오기는 “모두 똑같아 보이지만 한 장 한 장이 다 다르다, 날씨도, 지나가는 사람도, 옷도 다 다르다. 천천히 봐야 이해할 수 있다(You’re going too fast. You’ll never get it if you don’t slow down)”고 말한다. 그제야 폴은 사진을 한 장씩 자세히 보
독일은 오래전부터 자택 및 요양시설을 대상으로 한 방문치과진료를 시행해 왔다. 초기에는 치과의료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의과 수가체계의 적용으로 제도가 실질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다. 하지만 일련의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노인 및 장애인에 대한 독일 방문치과치료의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즉 2010년 이후에는 법정건강보험(BEMA) 체계 내에서 방문 및 상담 수가의 통합과 정비, 가산 코드의 신설, 요양시설과 치과 간 협력계약의 제도화, 요양·장애·인지저하 등 대상자의 확대, 예방서비스 적용으로 요양등급자에 대한 예방적 구강돌봄 강화 등이다. 본 시론에서는 독일 방문치과진료 제도의 발전과정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한국형 방문치과진료 설계에 필요한 시사점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방문치과진료 개념의 제도화 지속 독일의 법정건강보험 내 치과진료 수가 항목은 구강위생관리능력, 스스로 정기적인 치과방문 가능 여부, 치료 협조능력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는데,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고령자와 장애인을 위해서 AuB-Konzept (Age·Disability Concept)이 도입되었다.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급여 항목의 통합, 정비 및 신설이 제도화되기 시작했
기대 이상의 호의나 대가를 받은 경우엔 사정이 다르겠지만, 의도만 순수하다면 선물자체는 일단 받으면 좋다. 평생 치과진료를 하면서 나를 믿고 찾아오는 단골환자에게 늘 고마움을 갖고 있다. 개원 초엔 달력이나 타월을 선물하기도 했고 수시로 칫솔세트를 선물하기도 했다. 반대로 환자로부터 받은 선물 중에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았다. 여기는 시골이라 5일 장날에 할머니의 계절에 따른 나물이나 과일을 담은 봉지, 간식으로 먹으라며 빵 한 개 우유 한 팩이 정겨웠다. 예전에 가을 무렵 연로하신 할아버지께서 묵직한 감나무 가지를 꺾어 오셨다. 지금 먹으면 떫으니까 벽에 걸어두면 홍시가 된다며 그때 먹으면 된다고 하셨다. 먹기가 아까워서 말려 장식용으로 쓰고 싶었다. 곶감처럼 딱딱해 질 줄 알았는데 물렁하게 익어서 장식용으로 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의 정성을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실물보다 작은 나무지게를 손수 만들어 주신 환자와 같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선물 등이 있었다. 이러한 하나하나가 나중에 생각지도 않았던 글쓰기 소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렇듯 작은 선물의 경우는 인지상정인 것 같다. 개원하고
대한민국은 현재 소버린 AI(Sovereign AI) 구축을 국가 전략으로 공식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AI를 잘 만드는 나라가 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데이터–모델–컴퓨팅 인프라를 국가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전략적 목표입니다. 2023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AI 국가전략 2.0」에서 ‘데이터 주권과 국산 초거대 AI 생태계 구축’이 핵심 과제로 제시되었고, 같은 해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공공 데이터를 국가 내부 클라우드에서만 처리·학습하도록 하는 ‘소버린 AI 인프라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한국은 ChatGPT나 Google의 모델의 단순한 ‘사용자(user)’가 아니라, 자국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시키는 ‘주권자(sovereign)’로 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입니다. 의료·행정·교육 등 핵심 분야에서도 국가 주도의 AI 플랫폼을 구축하며, 우리의 데이터를 우리가 통제하고, 우리의 AI를 우리가 만든다는 디지털 주권 국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우려에서 기인합니다. 하나는 국가 핵심 데이터(주민등록, 의료 보험, 의료 영상, 공공행정 데이터 등)가 해외 상업 모델의 학습 재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최근 국회에서 발의한 의료기사법 개정안이 치과계 내외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개정안은 의료기사 업무의 전제를 기존 치과의사의 “지도(supervision)하”라는 조항을 “지도 또는 처방, 의뢰(prescription/referral)”로 변경해 의료기사에게 좀 더 독립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겉으로는 간단한 문구 손질처럼 보여도 향후 임상 현장의 지휘와 책임 체계, 나아가 의료전달체계 전반에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에 그 영향을 한번 고민해 보았다. 먼저 의료기사 업무의 전제를 “지도”에서 “처방, 의뢰”까지 넓히면 무엇이 달라질까? 법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도”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 관리 감독의 의미를 내포하는 동시에 “지도”하는 자의 책임을 보다 명확히 한다. 전공의가 수련병원에서 교수의 “지도”하에 수술하는 경우 환자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교수가 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에 반해 “처방, 의뢰”는 보다 분업적 의미가 강하고, 혹자는 이러한 경우도 치과의사의 판단에 의한 처방 혹은 의뢰에 한정하여 진료를 수행하는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두 주인공의 이름이 주는 은율과 대조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서로의 삶이 겹쳐지며 만들어낸 수많은 장면들,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난 복잡한 감정들… 어떨 때에는 갈등이었고, 어떤 순간에는 애틋한 사랑이었으며,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미움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 모든 감정이 결국 한 자리에 모여, 더 깊고 고요한 감정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진심, 그리고 삶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은은한 울림 말입니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문득 저는 또 다른 두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당연’과 ‘감사’였습니다. 우리는 일상속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아무 의심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숨 쉬는 것, 걸을 수 있는 것, 따뜻한 밥을 먹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바람이기도 합니다. 당연함은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지만, 그 순간 속에는 종종 감사라는 감정이 조용히 뒤로 밀려나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멈춰보거나 잃어보는 순간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 모든 것이 본래부터 주어진 것
2005년 임신한 Leilani Schweitzer는 네바다의 한 지역병원에서 아기가 태어나도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다음 해 아들을 무사히 낳았다. 하지만 아기는 생후 4개월이 되어 수두증(hydrocephalus)으로 진단받아 두개강 내압을 감소시키려고 뇌실에서 복강으로 뇌척수액을 배액하는 시술을 받았다. 아이는 급속도로 좋아졌고 잘 자랐다. 생후 20개월이 된 어느 날, 아이는 장염 비슷한 증세로 같은 병원에 입원하였으나 실제로는 수두증과 관련된 문제였으며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하였다.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는 그 지역병원에서 스탠퍼드 대학병원으로 전원 되었다. 스탠퍼드 대학병원에 입원하자 안심이 되었고, 엄마나 아이나 며칠간 밤잠을 자지 못한 관계로 병동 간호사는 병상 앞의 모니터 음을 소거하여 잠을 잘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 간호사가 지친 엄마를 너무나 배려한 나머지, 병실 모니터뿐만 아니라 간호사실을 비롯한 모든 곳의 기기 경보음을 무음으로 해 놓았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결국 한밤중에 아이의 심장이 멈췄을 때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Leilani의 어린 아들은 스탠퍼드 대학병원에 입원한
후기 노인(75세 이상)의 약 40%는 이동 제한, 만성질환, 인지 저하로 치과 내원이 어렵다. 문제는 이들의 구강문제가 단지 구강을 넘어 흡인성 폐렴의 발생 등 전신건강과 생존에 직결되어 있고, 또 부천, 천안, 전남 광주 등 일부 지역사회 통합돌봄 시범사업에서 치과가 참여하여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방문치과진료’와 ‘방문구강관리’가 돌봄통합지원법에 명문화되었으며, 이제는 국가적 아젠다로서 더 이상 미루거나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번 시론에서는 일본의 앞선 방문치과진료 실태를 대략 살펴보아 국내에서 곧 진행되어야 할 방문치과진료 시범사업과 이어지는 한국형 방문치과진료 체계 구축에 대한 방향 설정에 도움을 얻고자 하였다. 일본 방문치과진료 도입 배경과 효과 일본의 방문치과진료는 통원 치료가 곤란한 노인의 자택, 요양시설, 병원, 또는 기타 거주지에 치과의사, 치과위생사 및 보조(행정)인력으로 구성된 치과의료팀이 직접 방문하여 진료하는 제도이다. 이의 시작은 2000년대 초반 일본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응책의 하나로 방문치과진료가 포함된 장기요양보험(Kaigo Hoken)의 시행이었다. 물론 이
일상생활 속에서 뇌리에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고 칭찬할 수 있을 땐 참 기분이 좋다. 그 친구의 내면까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극히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필자에겐 너무나 모범적이고 귀감이 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 앞에만 서면 허튼 마음을 먹을 수 없다. 60대를 달리고 있는 필자의 나이가 되면 산전수전 다 겪어서 그런 사람을 만나긴 쉽지가 않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바른생활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사람이다 보니 실수도 하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평생 죄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본의 아니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생활환경이 다르다보니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그 친구가 일상생활에서 예사로 쓰는 저속한 표현이나 욕을 하는 것을 한번이라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어려운 이를 위해 주저 없이 돕고, 각종 봉사활동에 몸을 아끼지 않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졸업 후 동문행사 때나 사회활동을 하면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가 생각한 그대로의 모습이라 속으로 존경의 마음을 갖기도 했다. 기독교 신자 유무를 떠나서 혼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현재, 영국 옥스퍼드대 진화생물학자)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는 1976년에 처음 출간된 이래 전 세계적으로 큰 파급력을 끼쳤습니다. 이 책은 진화론을 “유전자 중심 관점(gene-centered view of evolution)”에서 바라보며, 기존의 다윈주의를 새롭게 해석한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특히 밈(meme)이라는 문화적 전파 단위를 소개한 것도 이 책의 중요한 기여입니다. 책의 제목만큼이나 그 내용도 도발적입니다. 유전자는 단순히 생물학적·화학적 정보를 담은 분자 단위에 불과하지만, 도킨스는 여기에 인간적인 가치판단이 담긴 “이기적(selfish)”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인간의 몸은 결국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지기 위해 활용하는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일 뿐이며, 인간의 행동 또한 궁극적으로는 유전자의 보존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이 책을 접한 저는, 인간이 바이러스나 세균, 혹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고차원적인 존엄성을 지닌 존재라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 역시 단순히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
최근 지방행사 참석차 KTX를 타러 서울역에 간 적이 있었다. 아니 웬걸 이게 우리나라 역인지, 외국역인지 모를 정도로 외국인 관광객이 역사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타고 가는 좌석 앞뒤 옆자리 모두 외국인 일색이었다. 뒤에서는 러시아말도 들리고, 옆에서는 영어, 기타 정체불명의 언어도 들린다. 부산행 열차이고 필자는 경주에 내리는데, 경주역에서 새로 탑승하는 사람의 대부분도 외국인인 듯 싶었다. 아마 서울을 거쳐 경주를 여행하고 부산으로 향하는 길 이었으리라. 필자 기억상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외국인이 넘쳐나는 풍경은 거의 처음인 듯 하였다. 이는 최근 십 수년간 K-culture유행을 필두로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좋아진 탓도 있지만 최근의 급격한 해외 관광객수의 증가는 분명히 연일 해외 가요계와 영화계의 모든 기록을 경신중인 글로벌 메가히트 Neflix 애니메이션 “케데헌” 때문인 듯 하다. 필자도 이게 왜 그리 인기가 있나 싶어 늦게나마 보았는데, OST도 빌보드 차트를 휩쓸고 있는 곡들 답게 중독성도 있고, 스토리와도 잘 어울렸으며, 영화의 메시지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우리 한국의 전통을 거부감 없이 적절히 융합하였고, 외국인들의 관점에서 매력적으로 느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