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신문과 비교우위는 치과정책 보도 <5면에 이어 계속> 50대 이하와 60대 이상으로 나눠서 분석한 결과, 치의신보 발행주기에 대한 인지도는 60대 이상이 50대 이하보다 훨씬 높았다. 60대 이상 회원의 95%가 주2회를 인지하고 있는 반면 50대 이하는 76%가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꼼꼼히 읽는 회원은 15% 차지 치의신보의 열독률에 대한 질문과 관련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는다는 응답이 66%로 가장 높았으며, 제목정도만 훑어서 읽는다는 응답이 16%, 전체 내용을 꼼꼼히 읽는다는 응답이 15%로 나타났으며, 2%의 회원은 전혀 안본다고 응답했다. 열독여부와 치의신보의 발행주기에 대한 인지도 관계를 분석한 결과, 역시 열독할수록 치의신보의 발행주기를 정확히 인지하는 비율이 높았다. 꼼꼼히 본다고 응답한 회원의 88%가 주2회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필요한 부분만 본다고 응답한 회원의 81%가 주2회 발행되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본지 최고 장점은 ‘치과 정책’ 치의신보의 가장 큰 장점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48%의 회원이 치과 관
“치과의사 삶은 네버엔딩스토리” - 치과계에서 치과의사 함병도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글쎄. 내가 치과대학이라는 이름이 붙는 기관에 돈을 내고 살았던 기간이 16년이다. 개인적인 명예를 위한 것은 아니었고 이런 삶이 결코 행복했던 것도 아니다. 집요하게 공부했다. 그런 노력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 있지 않았을까?” - 학부생 때도 그렇게 학구적이었나. 함 원장은 75년에 입학해서 81년 졸업했다. “아니다. 예과 때는 낙제를 겨우 면한 수준. 입학하고 한 달만에 3선 반대시위로 학교가 서너달 휴교된 적도 있었다. 본과 때도 기초과학은 재미가 없었는데, 그래도 해부학은 흥미가 있었다. 당시 해부학교실 조교로 있던 허택 선생에게 달라붙어 카데바를 많이 헤집었었다. 임상과목은 재미는 있었는데 나이드신 교수님들이 많았고 제대로 배우는 것 같지 않다는 불만이 있었다. 당시 치과학에 대한 이해가 그 정도였지만.” - 졸업 후 치과대학에서 치주를 전공했다(81~84년). 특별한 이유라도. “학부생 때 당시 치주과 손성희 교수님 강의 시간에 치주과의 비전이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국민들
본지 인식도 설문조사 (치과의사 표본 500명 추출) 가장 선호하는 전문지치의신보 1위 5명중 4명꼴 본지 주2회 발행 인식66%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는다”“심층취재·기획기사가 좋다” 28% 치협 기관지인 본지가 치과 관련 정책 보도 측면에서 가장 후한 점수를 받았다. 또 본지가 치과계 전문지 중에서 가장 선호하는 전문지 ‘1위’로 선정됐다. 2012년 임진년 새해 1월 9일자로 지령 2000호를 맞게 된 역사적인 시점에서 본지는 지난 11월 14일부터 30일까지 본지에 대한 인식도에 대해 설문조사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치의신보를 구독하고 있는 1만7972명으로부터 표본 500명을 추출했으며, 표본 500명 중 170명이 설문조사에 응답했다. 설문조사 결과, 본지의 가장 큰 장점으로 회원의 절반 가량이 치과 관련 정책 보도라고 응답해 회원들은 본지를 치과 관련 정책을 습득하는데 용이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치과 관련 정책 보도와 함께 치협 정책에 대한 비판 기사를 원하는 회원도 절반 가량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회원들은 정책에 대한 올바른 보도와 함께 비판적 시각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치과제품 및 세미나 정보를 습
"치과라는 학문은 넓고 깊고 높아평생 걸쳐 서서히 완성돼 가는것돼지뼈 이용 임상실습 국내 보급시작하면 새벽까지 열정 강의 소문" 함 원장은 군복무를 마치고 작은 종합병원에서 치과과장으로 짧게 있다가 88년 초 잠실에서 개업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치주를 전공해도 일반치료를 주로 하면서 사는 치주과의사들이 대부분이다. 당시는 더 했을덴데. 왜 이 사람은 특별한 길을 갔을까. 수술을 연습하기 위한 방법으로 돼지턱뼈를 이용하는 공부방법을 국내에 실질적으로 보급한 것도 이 사람이다. - 개업은 어땠나. 89년 거품경제가 시작되고 전국민 의료보험이 되면서 치과에 환자가 넘치는 때였다. 그래도 나는 치주과의사로서의 identity가 있었다. 수술에 대한 실습을 해보고 싶었는데 방법이 없었다. 원숭이가 제일 좋겠지만 너무 비싸고 구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에게서 돼지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어 도축장이 있다는 마장동과 가락동을 찾아간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단골 정육점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내 얘기를 듣고는 도와주겠다고 하더라. 그 사람이 구해온 돼지머리를 퇴근 후 정육점에서 함께 해부했다. 아래턱뼈만 떼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중에
면허취득 10년 미만 세미나 보강해야치과시장·정책·여가정보 강화 원해본지 선호 이유 “명칭 인지도 높아서” <7면에 이어 계속> 50대 이하와 60대 이상으로 나눠서 분석한 결과, 치의신보의 가장 부족한 점으로 60대 이상에서는 다양한 심층취재 및 기획기사가 제일 많았고(31%), 50대 이하에서는 치협 정책에 대한 비판적 기사라는 응답(49%)이 제일 많았다 65% 월요판과 목요판 차이 못느껴 치의신보 목요일판의 특징에 대해 묻는 질문과 관련, 월요일판과의 차이점을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회원들이 65%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 많은 회원들이 월요일판과 목요일판에 대한 차별성이 없다고 인식했다. 그러나 학술관련 정보에 있어서 특징을 보인다고 응답한 회원은 18%, 치과계 사람들 기사에 특징이 있다고 응답한 회원이 12%, 업계 및 신제품에 특징이 있다고 응답한 회원은 5%인 것으로 집계됐다. 50대 이하와 60대 이상으로 나눠서 분석한 결과, 목요일판과 월요일판과 차이점을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50대 이하(68%)가 60대 이상(39%)보다 훨씬 많았다.  
2000에 얽힌 ‘인연들’이 말하는 치의신보 황광세 (황치과의원 원장) 면허번호 2000번 “인연이 깊다” 정책 ‘방향키’ 역할 기대 1972년 서울치대를 졸업하고 1978년 조선치대 치주과 교수로 재직할 때부터 치의신보와 인연을 맺어 오랫동안 꾸준히 보고 있다. 그 당시는 한달에 한번 발간됐고 면수도 얼마되지 않았다. 인쇄 질도 좋지 않았다. 지금은 치의신보가 주2회로 발간돼 볼륨도 커지고 내용이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다른 신문은 다 보지 않더라도 치의신보만큼은 천천히 처음부터 끝까지 관심있는 부분은 거의 다 읽어 보고 있다. 학술부분 뿐만 아니라 광고에 나오는 새로운 재료 등도 신경써서 보고 있다.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대학에 10년이상 근무했었고 청아치과병원에서 10년을 근무하다 개원했기 때문에 개원가 쪽보다 학계나 세미나에 관심이 훨씬 많았다. 치협의 정책적인 방향제시와 함께 치과의사들이 관심이 많은 문제, 전문의 문제, 학제 개편 등 타 전문지에서 다루지 못하는 부분을 더 심층적으로 잘 다루고 있다. 2000호 발간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앞으로도 여타 치과계 전문지와 차별화해 정책적인 부분과 학제개편 등에도 신경을 써주기 바란다. 앞으로 치
모집단을 통해 본 치의신보 독자는 평균 46세개원의 93%50대 이하 89%면허취득 10년 이상 86% 이번 설문조사는 치의신보의 인식도 조사를 위해 치의신보를 구독하고 있는 치과의사 1만7972명을 대상으로 500명의 표본을 추출했다. 500명의 표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70명이 설문조사에 응해 34%의 응답률을 보였다. 최종표본 170명에 대해 성별분포와 평균나이를 비교해 본 결과, 성별분포는 95% 신뢰구간에 포함됐으며, 평균나이도 95% 신뢰구간에 포함돼 최종표본은 모집단을 대표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치의신보 독자에 대해 분석한 결과, 평균 나이는 46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의 평균 나이는 47세, 여성의 평균 나이는 43세인 것으로 분석됐으며, 연령대별로는 40대가 39%로 가장 많았으며, 30대가 26%, 50대가 21%로 그 뒤를 이었다. 60세를 기준으로 분석해보면 60대 이상이 11%, 50대 이하가 89%로 나타났다. 개원 형태별로 분석한 결과, 개원의가 93%로 가장 많았다. 면허취득 연도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면허취득 후 10년 이상된 독자가 86%, 면허취득 후 10년 미만인 독자가 14%인 것으로
2000에 얽힌 ‘인연들’이 말하는 치의신보 홍관석 (미소담치과의원 원장) 2000년 개원 “열심히 본다”개원가 시각 객관화 바람 “개원 후 치의신보는 빼놓지 않고 가장 열심히 보는 신문입니다.” 홍관석 원장(미소담치과)은 지난 2000년 4월, 당시 한창 붐이 일던 공동개원으로 첫 개원을 시작한 후 5년 뒤 단독개원으로 전환한 케이스다. 개원 후 치과계 돌아가는 상황이나 기타 정보를 얻기위해 가장 정보가 풍부하다고 판단되는 치의신보를 열독해 왔다는 그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보는 면은 ‘국제 뉴스’면이다. 홍 원장은 “국제 뉴스면의 경우 스크랩을 해 둘 정도로 상당히 즐겨 보는 편인데 환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줄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치의신보에 다소 아쉬운 점도 있다. 치의신보가 기관지이다 보니 집행부에 친화적인 기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개원가의 시각을 보다 열린 시각으로 객관화해 담아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그는 한편 “지난해 뜨거운 감자였던 유디치과 등 피라미드치과 문제와 관련해서 치과계 오랜 관행들의 종합선물세트로 만든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자칫 치
인터뷰본지 인식도 설문조사 주관 최용근원장(고려대 임치원 통계학 겸임교수) " 설문조사 신뢰도 95% 객관성·대표성 확보" “이번 통계는 첨단 통계 프로그램을 활용해 객관성과 대표성을 확보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종표본도 모집단에 대한 대표성을 갖고 있고, 설문조사에 대한 결과는 신뢰도가 95%로 믿을 수 있는 결과입니다.” 본지는 이번 설문조사에 대해 보다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통계 전문가’인 최용근 원장(EB치과의원)에게 설문조사 및 결과분석을 의뢰했다. 최 원장은 현재 고려대 임상치의학전문대학원에서 생물통계학 강의를 하고 있으며, 데이터 솔루션(www.datasolution. me)이라는 통계분석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통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최 원장은 “이번 설문조사는 통계 프로그램을 접목해 설문조사의 모집단(1만7972명)을 바탕으로 무작위 표본추출 방식으로 표본 500명을 설정했다. 답변을 해온 최종 표본 170명에 대한 성별분포와 평균나이를 비교해본 결과 신뢰도가 95%로서 최종표본은 모집단을 대표할 수 있으므로 최종표본이 모집단에 대한 대표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표본 응답률이 34%로 나왔는데 이는 높게 나온 것이다. 표본
2000에 얽힌 ‘인연들’이 말하는 치의신보 오석민 (평창다인치과의원 원장) 2000년 치대입학 “믿음이 간다”치과계 흐름파악 큰 도움 지난 2000년에 치과대학에 입학해 2000학번인 오석민 원장(평창다인치과의원)이 지령 2000호를 맞은 치의신보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개원해 현재까지 4년 정도 치과를 운영해오고 있는 오 원장은 개원한 지역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마친 지역 토박이다. 그래서 환자들 중에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꽤 된다고. 오 원장은 “하다 보니 뒤늦게 치과대학을 들어가고 치과 개원도 어릴 때부터 살던 동네에서 하게 됐다”며 “말 그대로 동네 주치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75년생인 오 원장은 대학 동기들에 비해 대여섯 살이 많은 늦깎이 치과의사다. 원래 오 원장은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그러다 대학재학 중간에 군에 입대하고 제대하면서 진로를 바꿔 다시 치과대학에 입학했다. 끝으로 오 원장은 치의신보 지령 2000호 발간에 대해서도 축하와 함께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오 원장은 “최근에 치과계 전문지가 많이 늘어 일일이 보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제일 믿음이 가는
치의신보 시대별 ‘얼굴’“1면 이렇게 진화했어요” 이 지면의 주인공은 치의신보가 만들어냈던 1면 그 자체다. 본지가 선보였던 2000번의 1면은 지난 45년 1개월여 동안 회원독자들과 동고동락해 왔다. 지령 2000호 특집호를 맞아 치의신보가 써 왔던 1면의 ‘미학’을 연대별로 살펴봤다.<편집자 주> 치의신보 지령 제1호의 1면은 새 출발의 설렘과 다짐을 동시에 담고 있다. 1966년 12월 15일에 창간된 ‘칫과월보’는 제1호 1면 ‘알림’란을 통해 ‘대한치과의사협회의 기관지로서 치과의학의 향상발전과 전국회원의 친목을 도모함에 그 목적이 있다’고 정체성을 규정했다. 1호의 1면 톱기사는 당시 최대의 관심사였던 ‘치무과 부활, 추진위원회 구성’ 기사였으며, 이어 ▲이유경 당시 협회장의 창간사 ▲치과전문의제도 적극 추진 ▲경희대 치의학과 신설 및 학생모집 등의 뉴스가 함께 실려 있다<사진 1>. #보건의료계 기관지 중 최초 ‘가로쓰기’ 1967년 1월 15일자로 발행된 제2호에서는 1면 제호를 ‘齒科月報’로 변경했다. 이어 1967년 4월 치과계 최초의 대규모 국제행사였던 제5회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