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장거리 출장길에 올랐다. 이른 아침 7시부터 집을 나선다. 인천 내항기가 아직 재개통되지 않아 김포로 먼저 간다. 김해공항에서 김포행으로 오랜만에 짐을 부쳤더니 수하물이 탑재되었다는 알림이 폰으로 온다. 원래부터 있던 서비스인가 싶기도한데 사소하지만 신기함을 느끼게 된다. 워낙 오랜만에 수하물을 보내면서 국적항공사의 ‘배려’에 고마움까지 든다. 사람도 아닌 프로그램의 ‘배려’에 감동까지 할일인가 싶기도하다. 이륙 전에 잠들고 착륙 ‘쿵’에 눈뜬 오랜만의 비행은 기억이 없다. 김포에서 인천공항까지 공항철도를 타고 큰 케리어를 모셔가는 것도 일이다. 평소엔 그냥그냥 억지스럽게 투덜거리며 구르던 바퀴들이 어찌나 잘도 도는지 정차역마다 내 손길을 필요로 한다. 김포에서 인천까지 스루보딩이 되었던 것이 코로나로 서비스가 없어지니 그땐 당연하던 것이 고객 ’배려’ 서비스였구나 싶다. 인천공항에는 무인화시스템의 급속 증가에 따라 체크인 키오스크와 함께 ‘식당로봇의 사촌’들이 제법 돌아다니고 있다. 내 스타일이 아니라 딱히 말을 걸어보고싶지는 않다. 체크인 키오스크 앞에서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여권을 스켄하는데 ‘배려’심 그득한 항공사 직원이 ‘시력약한 흰머리’를
메타버스(Metaverse)는 30년 전인 1992년에 출간된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소설 <스노우 크래쉬>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과 용어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 메타버스는 고글과 이어폰 같은 시청각 출력장치를 이용하여 기술적 접근을 하는 가상세계로 규정됩니다. 메타버스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표현한 실존하지 않는 세계로 현실세계와 달리 물리 법칙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대표적인 메타버스의 유형에는 가상세계와 증강현실이 있습니다. 이러한 메타버스는 사람들의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메타버스 속에서도 경제사회 활동은 현실세계와 흡사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코인,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NFT(Non 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 암호화폐 등을 이용해 새로운 세계에 발빠르게 움직인 자들은 디지털 자산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들이 세계적 부자 반열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메타’(meta)라는 단어는 참 흥미롭습니다. 메타는 영어에서 전치사로도 쓰이고 부사로도 쓰이는데, 전치사는 ‘~와 함께’, ‘~에 관하여’라는 의미이고, 부사는 ‘~를 너머’, ‘~후에’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우리가
우식경험영구치아수(DMFT)는 개인의 우식경험을 나타내는 지표로 우식(Decayed) 치아수, 우식으로 인한 상실(Missing) 치아수, 치과에서 우식치료를 받아 충전 또는 크라운을 씌운(Filled) 치아수를 모두 합한 값을 의미하며, 0부터 최대 28까지의 값(사랑니 제외)을 가질 수 있다. 한 집단의 DMFT는 그 집단 전체의 개인당 DMFT의 평균값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보건복지부 아동구강건강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2세의 DMFT는 1.84로 나타났으며, 12세까지 영구치 WHO Oral Health Country/Area Profile Project 홈페이지(https://capp.mau.se)를 통해 각 나라의 DMFT를 확인할 수 있다. 이웃한 나라인 북한(1991년 기준), 일본(2016년 기준), 중국(2015년 기준)의 12세 DMFT는 각각 3.00, 0.80. 0.88이며, 덴마크(2014년 기준)는 0.40으로 매우 낮음을 알 수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발행한 2021년 구강보건사업 안내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DMFT 평균 1.2개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며, 영구치 우식증은 만 6세부터 증가
지난 2020년 초 중국 우한 발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지도 어언 2년이 지나 3년차로 접어들고 있다. 당시 마치 영화처럼 정체 모를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마구 죽어가고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지나치게 고려하던 초기의 느슨한 방역 정책으로 우리나라도 중국에 이어 코로나 감염의 2차 주요 감염지가 되었다. 우선 대구에서 난리가 났고, 마스크며 방호복이 부족하여 나라 전체가 뒤숭숭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후 중국과 같은 재앙적 상황이 될 거라는 세계의 예상과 다르게 위기마다 늘 그래왔듯이 빛나는 우리 국민의 자발적인 방역 노력으로 이태리, 미국 등에서 악화된 상황에 비하면 역시 대한민국다운 멋진 방역 성과를 이루었다. 정치인들은 K-방역이니 뭐니 자화자찬을 했지만 정치인들에 휘둘렸을 정부의 초기 대응 상황을 명확히 기억하는 필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다만 질병관리청의 많은 직원들의 노고는 인정해야 되겠지. 이후 세계적으로는 좀 늦었지만 백신도 수입이 되고 현재 국민 대부분은 2차 접종을 마친 상태라고 하고 의료인의 경우 아마 3차 접종이 다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m-RNA백신을 구할 수 없어 몇 개국에서는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아스트라제네카사의 백신
직원을 시작으로 지인과 주변 사람들이 코로나19로 확진되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우리 막내 녀석도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유치원에서 친구에게 옮아 온 모양이었다. 나는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근처의 처갓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막내는 39도의 고열을 넘나들며 하루 종일 힘들었을 텐데, 자기 전에 우리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는 이제 샤워하고 이 닦고 해서 입에 있는 바이러스가 좀 빠져 나가서 앞으로 여섯 밤만 더 자면, 다 나아서 우리를 만나러 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녀석은 할머니에게도 여섯 밤만 참으라고 쿨 하게 말했다. 나는 집 떠나 지내야 하는 소소한 불편 때문에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나 막막했는데, 녀석은 씩씩하게 자기 전 안부 전화를 하는 모습에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며칠 후 막내를 돌보던 아내도 자연스럽게 감염되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과 미국 하와이대 연구진은 최근 100년간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따른 기후변화로 중국 남부와 라오스, 미얀마 지역이 박쥐가 서식하기 좋은 식생으로 바뀌면서 이번 코로나19의 발원지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환경생태 분야의 국제학술지 <종합 환경 과학: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
지난 3월 12일 오스템 덴올(Denall) 스튜디오에서 “고령과 장애에도 건강한 구강”을 주제로 고령사회 치과의료포럼이 열렸다. 이번 포럼은 치과의사협회와 치의학회의 후원 하에 5개 분과 학회(노인의학회, 여성치과의사회, 예방치학구강보건학회, 장애인치의학회, 치과보험학회)가 연합하여 각 학회 연자들의 일목요연한 강의 내용과 1시간에 걸친 심도 있는 패널 토의로 진행되었다. 오스템 덴올 사이트로 실시간 약 2,200명이 참여한 것으로 보아 이번 포럼이 고령자와 장애자에 대한 치과계의 미래 담론을 이끌어내는 마중물(priming water)이자 머릿돌(cornerstone)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에 필자는 이번 포럼의 강의 내용과 패널 토의를 종합하여 마련한 “지역사회 구강돌봄진료 제도(草案)”를 중심으로 ‘구강돌봄진료’라는 용어 정의와 제도의 제안 배경 및 도입 필요성을 약술(略述)하고자 한다. 먼저 ‘구강돌봄진료’라는 용어의 정의이다. 미국 노인치의학을 개척해 온 Ettinger 교수(1984년)는 노인을 단지 65세 이상이라는 나이가 아닌 신체 기능성(functionality)을 토대로 자립적 노인(the independent elderly)과 의존적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보다 보니 평창 올림픽이 떠오른다. 베이징 올림픽이 논란도 많고 언짢은 장면들로 인해 많이 비교되었지만 그중에서도 평창에서의 드론 공연은 특별하게 황홀했던 기억이 난다. 오래 전 초등학교시절부터 조립품을 만들거나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며 은근히 으스대기도 하고 환심을 사곤 했다. 쓸 데 없는 곳에 용돈 써가며 동전 모으기, 미니장난감, 여행 뺏지 등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들을 온 방 가득 채우느라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혼도 많이 났다. 나이가 들면서 취미도 점차 업그레이드 되어 대학 다닐 때는 성인용 레고에 흠뻑 빠져 레고 쌓기를 하면서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외에는 크게 말썽부리는 거 없이 치과대학을 갔으니 부모님은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신 듯하다. 여행을 다니다가 높은 산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지상에서 보는 세계와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세계가 많이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때는 ‘나도 날고 싶다.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적도 있었다. 뭔가를 하고 싶기는 한데 떠오를 듯 떠오를 듯하면서 혼란스럽기만 했던 그 무렵, 평소 잡다한 도구나 기계를 이용해서 공작물을 제작하는 취미가 있던 나
아내가 핸드백을 하나 들고 나와 필자에게 어떠냐고 묻는다. 괜찮아 보인다고 하자 시집간 딸이 엄마에게 보낸 선물이라고 한다. 딸이 갑자기 친정어머니에게 선물을 한 이유는 자신은 ‘명품’ bag을 선물로도 받는데, 치과의사의 부인인 친정어머니는 그 흔한 ‘명품’ bag도 변변히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는 선물 받은 bag을 들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 것 같다. 금년 겨울은 추위와 미세먼지가 번갈아 나타나는 날씨를 보여주어, 평소에도 목감기가 잘 걸리곤 하는 필자에게는 마스크와 목도리가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필자의 현재 직장으로 발령을 받은 초창기에 타과 대학원생의 논문을 지도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대학원생이 고마움의 표시로 필자에게 “명품 목도리”를 선물(그 당시는 법에 저촉되지 않았다.)한 적이 있다. 소박하게 사는 필자의 환경에서 ‘명품’을 두르고 다니는 것이 부담스러워 잘 모셔두었는데, 최근 2년간 꺼내 쓰는 일이 많아졌다. 어쩌다 세탁 등의 이유로 다른 목도리를 두르는 날에는 왜 그런지 목 부위가 더 추워지는 느낌이 든다. 학기말이 되면 지난 학기 동안에 필자가 저술한 책의 판매고를 알려주는 이메일이 한 통씩 도착하곤 한다.
방송에서 오징어게임 패러디를 하여 설탕과자 오려내기, 뽑기로 ‘선택 2022’의 선거 참여 홍보를 하고 있다. 물론 투표 표기마크가 부러진 연예인들도 설탕과자 뽑기보다는 더 신중하게 투표를 할 것이라 기대한다. 전 국민이 하나의 선택을 앞에 두고 어쩌면 만(萬)가지 생각과 고민을 하는 시기이고, 이 글이 게재되어 있을 즈음에는 그 결과도 알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라는 선택은 자주 있는 선택 기회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일상 생활 속에서 아주 잦게, 특히 치과인으로서는 실제 진료과정에서 매 초마다 선택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판단을 하게 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자주 듣는 말이 있고, 영어 알파벳 B-C-D 순서대로 Birth(출생)과 Death(죽음) 사이에는 Choice(선택)으로 채워진다는 말이 참으로 그럴듯하다. 어떤 선택은 돌이킬수 있는 선택이기도 하지만 번복하거나 되돌릴수 없는 비가역적 선택인 경우도 있다. 수 초만에 이루어지는 선택도 있고 수 개월에 걸친 고민으로 이루어지는 선택도 있다. 어떤 선택은 나를 위한 것도 있고 가족을 위한 것도 있고 크게는 조직을 위한 것 그리고 나라를 위한 선택도 있다. 수 초만에 한 선택이 수 개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강화할까요? 철학자의 어깨 위에서 함께 고찰해 볼까 합니다. 20세기 러시아 출신 철학자 아인 랜드(Ayn Rand, 1905-1982)는 모든 인간은 타인이 세운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이기주의(利己主義, egoism)를 옹호합니다. 이기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다소 부정적으로 교육되어져 왔지만, 이는 휴머니즘(humanism)에 기반한 개념입니다. 휴머니즘은 철학적 사유의 근원으로서 인간내에 실재하는데, 각 인간이 가진 능력과 성품을 존중하고 인간이 가진 현재의 소망과 행복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이 자기를 우선적으로 챙기는 것은 자연스럽고 이성적입니다. ‘이성적 이기주의’의 렌즈를 거치면, 모든 행동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따라 평가됩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점은 어려움에 처한 타인이나 동물을 도우려는 도덕적 충동을 전혀 느끼지 않으면 ‘사이코패스’라는 것입니다. 또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 BC428- BC348)의 말처럼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작은 폭군’이 숨어 있어 바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나를 살펴보는 타인의 존재, 사회적 비판이 필요하다고
새 학년을 앞둔 2월이면, 으레히 2학년 총대? 학생이 찾아와 면담을 요청한다. 새 학기 수업에 필요한 교재와 준비물, 전달 사항을 미리 확인하려는 것이다. 어떤 분들에겐 총대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릴 수 있겠다. 필자의 출신 대학에서는 과대(과 대표의 줄임말)라고 했고, 학기별로 선출했으나, 필자가 근무하는 이곳 대학에서는 총대라 부르며, 임기는 해당 학년 전체 기간이다. 총대라는 말이 총 대표의 줄임말로 추측되지만, 개신교 각 교단의 총회의 대의원을 일컬을 때도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2학년 총대가 찾아왔고 1학기 예방치과학 강의 및 실습 수업 계획과 교재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총대에겐 긴장된 첫 만남이겠지만, 매년 새로운 총대를 만나는 필자에겐 또 다른 인연의 첫 만남인 것이다. 총대를 처음 만나면 항상 묻는 질문이 있다. 왜 총대를 멨는가? 이 말 뜻 그대로, 아무도 나서서 맡기를 꺼리는 공동의 일을 대표로 맡은 이유를 물은 것이다. 필자도 대학생 시절 2학년 1학기 과대를 맡은 적이 있지만, 지금 그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면, 할려는 사람이 딱히 없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학창시절 반장 한번 못해본 아쉬움의 발로였다. 이 질문에 총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