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삽시간에 더워졌다. 며칠 전 시골의 어머니께서 인편에 나물을 보내주셨는데, 잠시 집을 비워야 해서 당장 먹지 못하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집에 돌아와 혹시나 하고 냉장고를 들여다보니, 정성스레 싸 주신 나물이 이미 물러 향이 변해버렸다. 냉장고 안에서도 굳세게 자란 미생물 때문이다. 외부 기온이 올라가면 냉장고 안이라도 영향을 받는 법인데, 그간 서늘했던 터라 온도 셋팅을 낮춰 놓지 못한 탓도 있다. 그렇지만 열흘도 더 전에 시골에서 직접 가져와서 냉장고에 넣어둔 열무김치는 알맞게 익어 새콤한 냄새를 내뿜고 있었다. 같은 냉장고 안에서도 사정이 다름은 나물은 부패하고 열무김치는 발효되었기 때문이다. 발효와 부패는 둘 다 미생물에 의해 유기물이 작은 분자로 분해되는 작용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썩는 것이다. 썩는 작용은 물질의 성상을 바꾸고 나쁜 냄새나 유독성 물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음식이라면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것이 부패(腐敗)이다. 부패를 언중이 어찌나 나쁘게 생각하는지, 국어사전에서 부패를 찾으면 유기물의 분해보다 정치, 사상, 의식의 타락이라는 뜻이 앞서 나오고 부정(不正)을 동반해 부정부패라는 성어가 먼저 검색된다. 발효
지난 2025년 1월 31일, 대한노년치의학회 주관으로 일본 후쿠오카대학교 치과병원을 방문했다. 초고령 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의 치과의료 시스템, 특히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방문 치과 진료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이번 워크숍은 ▲병원 견학 ▲구강연하(삼킴) 클리닉 ▲고령자 요양시설 탐방 ▲방문 치과 진료 참관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중 필자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관찰했던 부분은 방문 치과 진료였다. 후쿠오카대학교 치과병원은 1972년 ‘후쿠오카치과진료소’로 시작해 1973년 부속병원으로 전환되었고, 1974년 내과, 1975년 외과를 병설하면서 ‘구강 건강을 통해 전신 건강을 지킨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치과 중심의 통합형 의료기관으로 발전해왔다. 이 병원에는 ‘노인치과(Geriatric Dentistry)’와 ‘방문치과(Visiting Dentistry)’가 각각 독립된 진료과와 센터로 운영되고 있으며, 인근에는 개호노인보건시설 ‘선샤인시티’, 요양원 ‘선샤인플라자’ 등이 위치해 실질적인 의료-복지 연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방문 치과는 병원 방문이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의료진이 자택이나 요양시설, 혹은 치과가 없는 병원에
▶▶▶이용권 원장(청주 서울좋은치과병원 임플란트센터장)이 본지 3036호부터 치과의사의 희로애락을 담은 ‘털보의사의 치과 엿보기!’ 만화를 연재한다. 이 원장은 서울치대를 나온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로 앞서 본지에 ‘만화로 보는 항생제’를 연재한 바 있다. ■ 이미지 클릭 후 드래그하면 고해상도 보기 가능합니다.
전라남도 신안군 장산면 장산도. 들어본 적도, 미디어에서 접한 적도 없던 이름이었다. 지도 어딘가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던, 나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섬이었다. 직전 근무지는 같은 신안군의 안좌도였다. 목포에서 대교 4개를 건너야 닿는 연륙도. 섬이긴 했지만 도로가 이어져 있었고 택배도 가능했다. 이삿짐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는 일도 없었다. 불편함은 있지만 불가능은 없던 곳. 그래서였을까? 장산도로 향하던 날 나는 ‘배만 타고 들어가면 비슷하겠지’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큰 오산이었다. 이삿짐센터 차량이 섬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처음, ‘들어간다’라는 말의 무게를 실감했다. 그렇게 목포에서 카니발 차량을 빌려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침대, 책상, 컴퓨터, TV 등 큰 짐과 함께 왕복 여러 번의 이사를 시작했다. 하루에 세 번뿐인 배편에 맞춰 차를 실어 날랐고, 섬과 육지를 오가는 이사는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그렇게 치과의사 한 명, 의사 두 명, 한의사 한 명의 장산도 생활이 시작되었다. 총 네 명이 조용한 섬마을의 유일한 의료인이었다. 장산도에는 병원도, 약국도, 심지어 편의점 하나조차 없었다. 전국 어느 읍내에나 있는 것들이
시집 ‘그림 위에 앉은 시’를 출간한 이후 간간이 써 두었던 짧은 글을 정리하며 재밋거리로 읽을 만한 산문집 ‘꿈을 꾸는 수달이’란 제목으로 5집을 엮었다. 시론의 집필위원이 된지 5년이 다 되어 간다. 여전히 아쉬움을 느끼지만 격려해 주는 동료가 있어 힘이 된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에 남는 한 줄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일기가 수필이 되고 축약하면 시가 된다는 필자의 생각을 표현하기도 했다. 날로 갈수록 종이책을 읽기가 어려워지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임팩트 있는 내용을 위해 여러 종류의 글을 담았다. 치의신보의 ‘시론’에 게재했던 글을 중심으로 약간의 수정을 거쳐 완성하였다. 대부분 체험을 통한 시와 글이지만 재미를 위해 수필,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산문과 예전에 써둔 단편소설을 몇 편 수록했다. 누군가가 작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내놓는 것이라고 하였다. 비록 무명작가이긴 하지만 드물게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원고 청탁도 받게 되니까 더욱 신중해진다. 필자가 올린 글 중에는 처음부터 산문으로 쓴 글도 있지만, 시를 완성하고 난 후 그 시를 토대로 산문을 쓴 글이 대부분이다. 필자의 지도 선생님께서 시인은 시를 쓰지만 산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중년의 여환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주기적으로 구강관리를 받던 분이었고, 구강건강 상태나 자가관리가 양호하여 1년 간격 내원을 권유하여도 굳이 6개월 방문을 희망하는 분이었는데 어느 순간 내원이 끊겼습니다. 오랜만의 재회가 마냥 달갑지만 않았던 것은, 이동식 산소공급기와 휠체어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폐 섬유증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고작 몇 문장을 구사하는 데에도 숨이 가쁘게 차오르는 아내를 보며, 보호자인 남편은 이 상황에 스케일링이 중요하냐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구강관리를 진행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됩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환자는 그조차 무리가 되었는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목소리로 이제 진료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무조건 돌려보내야지, 확신으로 돌아서려는 순간입니다. ‘선생님, 제가, 이전에, 받던, 만큼은, 아니더라도, 개운하게, 꼭, 받고, 싶어요.’ 숨 가쁜 목소리에 힘이라고는 없지만, 전달되는 의미만큼은 명료합니다. 오늘 진료 VIP는 이 분이구나, 확신이 다시 돌아섭니다. 휠체어 상태 그대로 전문가 잇솔질을 진행합니다. 두 줄 모 칫솔을 이용한 소위 ‘와타나베’ 방법을 그
AI의 발전은 2022년 말 ChatGPT 출현 이후 급격히 가속화되었다. ChatGPT는 자연어 처리(NLP)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오며, 대화형 AI의 새로운 기준을 설정했다. 이 모델은 단순한 대화형 챗봇을 넘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맥락에 맞는 대화를 생성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발전은, 출시 후 불과 몇 주 만에 사용자 수가 1억 명을 돌파하며, AI 기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AI 기술의 상업화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의 응용을 촉진했다. AI 기술은 이제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 음성, 동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멀티 모달(Multi-Modal) AI로 발전하고 있다. 인간의 지능이 텍스트를 통해서만 개발되는 것이 아니고, 오감을 통해서 다양하게 들어오는 모든 정보에 의해 개발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AI도 다양한 데이터 활용의 극대화와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인공 일반 지능)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멀티 모달이 필요하다.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는 클라우드 기반의 AI에서 벗어나 개인의 기기에서 직접 작동하는 AI를 의미한다
영국문화협회가 세계 102개국 4만 명을 대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를 묻는 설문 조사를 했더니, 여기서 1위를 차지한 단어는 “Mother(어머니)”였다고 한다. 2위는 Passion(열정), 3위는 Smile(미소)이고, 이어 Love(사랑) Eternity(영원) Fantastic(환상적) Destiny(운명) Freedom(자유) Liberty(자유) Tranquility(평온)가 꼽혔다. Peace(평화)는 11위를 차지했으며 Lollipop(막대사탕)이 42위, Hiccup(딸꾹질) Gum(껌) 등이 63위, 69위를 차지해 눈길을 끌었다. 그렉 셀비 영국문화협회 대변인은 “70개 단어 가운데 사람들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유일한 단어인 ‘어머니’가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흥미롭다”라며 “부정적 단어보다는 자유, 평화, 영원 등 긍정적 단어가 순위 안에 포함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버지(Father)는 ‘어머니’ 다음인 2위도 3위도 아니고 막대사탕이나 껌보다도 순위에 밀려 아쉽지만 70위 안에도 들어가지도 않아 ‘어머니’와 대조를 이뤘다. 가정에서 자녀를 키울 때 부모의 역할은 중요하다. 아버지의 부성은 아기를 몸
74차 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총회 선출, 감사규정 총회 승인 등을 통과시킴으로써 회무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회원들의 민의가 더 구체적으로 반영되었다. 집행부 선거 및 감사 과정에서 불거졌던 갈등이 치협 자체 거버넌스를 왜곡시키고 이로 인한 법무비용 증가는 내부갈등 증폭과 회무 동력 상실을 초래해 치과계 발전을 막는 하나의 고질병이 되었다. 협회 자체의 자율적 결정시스템의 위기와 피로감에서 나온 회원들의 바람이 이번 총회를 통해서 끊어내고자 더 구체화 되었다. 일반적으로 정관 제ㆍ개정은 협회 집행부, 지부 총회에서 상정한 안을 심의 의결하고 규정은 집행부 이사회에서 제ㆍ개정하는게 일반적이나 중요하고 민감한 선거관리규정과 감사규정은 총회에서 심의하고 재무업무 규정은 총회에 보고하게 되어 있다. 정부조직과 비교해보면 총회는 국회와 유사하다. 대의원들은 정관의 제ㆍ개정, 임원 선거, 예ㆍ결산, 사업계획, 이사회에서 부의되는 사항에 덧붙여 선거관리위원장 선출에 관한 사항을 총회의 심의 사항에 추가했다. 즉 정부 구조에서 삼권분립의 사법부가 선거관리 사무를 전임하듯이 집행부가 해 오던 선거관리 대행 사무를 총회(대의원)가 주관하게 되었으니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 중 하나로, 장기 입원 노인 환자의 구강 건강 관리가 필수적인 의료 과제로 대두되었다. 본 견학에서는 후쿠오카 치과대학의 의과·치과 종합병원을 방문하여 일본의 노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구강 건강 관리 체계를 직접 관찰하고, 방문 치과 진료, 연하 기능 평가 및 재활 치료 등의 프로그램을 경험하였으며, 일본의 구강 건강 관리 시스템이 환자의 전신 건강을 고려한 다학제적 접근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노인 치과 의료 시스템을 분석하고, 이를 한국의 임상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보고자 한다. I. 의과·치과 종합병원의 시설 - 노인 환자 케어에 특화된 시스템 일본 후쿠오카 치과대학의 의과·치과종합병원은 단순한 치과병원을 넘어, 노인 환자를 위한 전문적이고 통합적인 의료 시스템을 갖춘 의과·치과 종합병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병원의 이름조차도 후쿠오카 치과대학병원이 아닌 후쿠오카 의과·치과 종합병원이다). (그림 1) 후쿠오카 의과·치과종합병원의 치과 진료 시스템은 한국의 대학병원 구조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는 치과병원이 의과와 분
희망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적인 정서이자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변화의 씨앗입니다. 그것은 단지 기대나 낙관이 아니라, 고통과 불확실성을 통과하면서도 미래를 믿는 의지이며,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한 존재론적 에너지입니다 (그림).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 세상의 고통과 시련은 하나의 상자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바로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인데요, 신들에 의해 흙과 물로 창조된 첫 번째 여인, 판도라는 온갖 아름다움과 재능을 부여 받은 존재였지만, 동시에 인류를 시험하기 위해 선택된 인물이었습니다. 제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를 벌하기 위해, 그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판도라를 아내로 보내며 상자 하나를 함께 건넸습니다. 단, 그 상자는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와 함께였습니다. 그러나 호기심은 신들이 판도라에게 준 또 다른 선물이었고, 그녀는 결국 상자를 열고 맙니다. 그 순간, 그 안에 봉인되어 있던 수많은 재앙들-질병, 슬픔, 죽음, 고통, 증오, 갈등, 탐욕 등이 세상 밖으로 흩어져버리고 맙니다. 인간 세상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고, 판도라는 충격과 공포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