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제1737번째 나의 이중생활? 치과의사면허를 따고 치과의사로서 20년차, 단독개원의로서 18년차인 40대 중반의 한 남자.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규정을 하는 나의 정체성이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원래 물리학자의 꿈을 꾸고 물리학과를 지망했지만, 안타깝게 1지망에서 떨어지고 생각지도 않았던 치의예과에 입학하였다. 재수를 고민하다가 당시 활발하던 학생운동에 발을 걸치게 되면서 학교를 그냥 다니게 되었다. 학업에는 그다지 뜻도 없고 적성도 맞지 않아, 당시의 많은 운동권 학생들이 가던 길처럼 투쟁 중에 구속되고 휴학이나 퇴학당하고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는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 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되었지만, 치과의사로서의 삶이 계속 나의 길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치과의사를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게 해준 것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약칭 건치)’였다. 치과의사로서 사회의 진보적인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수돗물 불소화사업 같은 구강보건사업을 힘있게 추진하는 것을 보면서 치과의사로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결심하고 학생 때 제대로 못한 공부를 뒤늦
Relay Essay제1736번째 친구 아들 “아빠 또 보고 오면 저도 좋아요.” 작년 여름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투병기간 동안 가끔 전화로 위로와 추억을 주고 받았지만, 막상 친구의 소천 소식에는 그저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불과 넉 달 전 나의 둘째 딸 결혼식에 불편한 몸으로 애써 참석해 축하해 주던 모습이 흐르는 눈물에 희미해질 뿐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었다. 금년 3월 휴일에 미루던 숙제인 친구 묘소에 다녀왔다. 정확한 묘소 위치를 몰라서 친구의 아들과 연락을 주고받던 중 “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니 묘소 위치와 번호만 알려주면 찾아 가겠다”고 해도 굳이 자기가 묘소를 안내하겠다고 하면서 보낸 문자가 앞에 있는 글이다. 친구는 양지 바른 언덕에 먼저 돌아가신 부모님과 큰 형님 발치에서 편안히 쉬고 있었다. 아직 큰 누님과 세 형님은 잘 지내시건만, 막내인 친구는 어찌 그리 서둘러 갔는지…. “얼마 전 아버지 묘소에 다녀오면서 엄마와 대화중에 김 선생님 얘기를 했었는데, 오늘 선생님께서 아버지 묘소에 가신다고 연락 주셔서 놀랐습니다. 아마 하늘에 계신 아빠께서 우리들 마음을 다 알고 계신 듯 합니다” 이런 얘기를 시작으로 우린 봄볕 가득히 쏟아
Relay Essay제1735번째 내가 사랑한 ‘세 여자’ 이런 제목을 달고 수필을 쓰려고 하니, 마치 인터넷에서 올라온 기사성 글귀에 현혹되어 클릭하다, 요즘 하는 말로 낚였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지천명(知天命)을 앞에 두고 세 여자에 대한 관심, 사랑,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여자는 다름 아닌 어머니, 아내, 딸입니다. 누군가 남자는 철이 늦게 든다 라고 하는데 결혼을 해서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서야 철이 든 느낌입니다. 어린 시절 힘들고 괴로울 때면 항상 옆에서 격려의 말씀과 더불어 자신감을 주셨던 어머니가 칠순(七旬)을 넘어 아직도 이 철부지 아들을 멀리서 못내 그리워하며 염려하고 계시는 것을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말씀은 자주 안하시지만 고향에 내려가거나 전화를 드릴 때 늘 하시는 말씀은 항상 “몸 건강해라”라고 말씀하시며 집에서 기른 농작물이나 당신께서 직접 손수 담근 김치며, 여러 가지 반찬을 꼭 손에 쥐어 주시곤 하십니다. 결혼을 하고나서 이제 그러실 필요가 없고, 가져가기도 번거롭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오히려 택배로 보내시는 방법까지 터득하셔서 보내주시는 어머님의 자식에
Relay Essay제1734번째 큐슈대 치대생 부산대 치전원 방문 지난 3월 14일 큐슈대학교 치과대학 교수 2명, 행정실 직원 1명, 학생들 12명이 부산김해국제공항으로 입국하였다. 이번 행사는 지난 1988년 치과대학 때부터 시작된 부산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의 국제교류프로그램으로 3월 14일부터 16일까지 총 3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첫째날, 큐슈대학교 일행들은 부산대학교 치과병원 및 치의학전문대학원을 견학하였다. 대학원 세미나실에서 환영인사를 하고 양교 학생들은 자기소개 인사를 하였다. 자기소개 후 한국 학생들은 준비한 선물을 일본 학생들에게 전달해주었다. 작은 선물이었지만 일본 학생들은 뜻밖의 선물에 감동하였다. 부산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앞에서 단체사진 촬영 이후 부산으로 이동해서 해운대 웨스턴 조선비치 호텔에서 정두윤 부산대학교 치과대학 및 치의학전문대학원 동창회장 주관으로 만찬을 가졌다. 이번 국제교류프로그램을 진행한 박봉수 교수(구강해부학교실)를 비롯해 정태성 치의학전문대학원장, 박혜련 부원장, 안용우 학과장 그리고 여러 교수, 교직원들이 자리를 빛내주었다. 환영 만찬 이후 양교 학생들은 서면으로 이동해서 친목의 자리를 가졌다. 막걸리와
Relay Essay제1733번째 UCLA치대 유학을 마치며 치과의사 20년째 되는 2010년 저는 큰 결심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20년 동안 저를 거친 많은 환자분들의 칭찬을 받았고 수많은 큰상을 받았지만 저의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제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부족하기에 포기하거나 실패했던 환자들 앞에서 저는 할 말을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늦은 나이의 유학은 절실함에서 온 결심이었고 큰 도전이었습니다. 미국의 최고의 명문 UCLA치과대학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 공부하는가운데 위로를 받았습니다. 진료실에서 강의실에서 그리고 사람과의 대화에서 진정한 치료는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와 마음으로 하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유학생의 하루 하루는 매일 새로운 각오와 용기로 시작했지만 항상 긴장과 좌충우돌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침 8시에 시작하는 대부분의 수업은 쉬는 시간도 없이 3시간 동안 진행되고, 점심시간을 이용한 외과보철 치주 3과의 공동 임상증례 토론이 이어지면 바로 수술실 참관과 진료 참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말에는 미국 개원 치과의사를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같이 참석해 실습을 했고
Relay Essay제1732번째 봉사의 맛 -제4차 인도네시아 진료 2012년 3월 10일부터 13일까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서남방 78Km 떨어진 곳에서 제4차 해외 진료를 했다. 3월 10일 6시에 일어났다. 이미 비행기에 부칠 수하물을 모두 정리해 놓았는데도 일찍 잠에서 깼다.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마치 처음 떠나는 봉사 같다. 해외 봉사는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한다. 8시 20분에 탑승수속을 했다. 인도네시아 가루다항공이 대한항공보다 운임이 10만원 정도 저렴하다. 자주 해외봉사를 가다 보니 경비가 좀 신경 쓰인다. 지난 12월 제3차 해외진료 때는 성수기여서 요금도 비쌌을 뿐 아니라 수하물을 부치는데도 힘들고 수속이 빡빡했다. 이번은 비수기라 모든 일이 순조롭다. 자리 배정도 편안한 20번대 좌석이다. 만석이 아닌 듯하다. 7시간 이상 비행을 하는 장거리 여행에서 편한 좌석을 얻어 참 다행이다. 자카르타 공항 여권수속이 까다롭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가루다항공을 타니 입국수속을 비행기 안에서 해 편리하다. 3월 11일 아침 4시 이슬람 아잔 기도 소리에 잠을 깼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사원은 우리나라 교회처럼 동네 한 가운데에 있다. 어떤 것은 가정
Relay Essay제1731번째 헤밍웨이 스토킹 (하)- 쿠바 여행기 중에서 발췌 <지난호에 이어 계속> 엘 플로리디타를 나와 보데기타 술집에 가려 했었다. 설마 싶을 정도로 작고 외지고 간판도 얼마나 작은지! 보데기타라는 글자는 거의 손가락 굵기밖에 되지 않았다. 그 앞을 여러 번 지나쳤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다면 영화에서 연인이 아슬아슬하게 어긋나는 짜증나는 시퀀스 같았을 것 아닌가? 그것도 대여섯번 그 앞을 왔다갔다 하면서도 보데기타를 찾지 못하였다! 결국 밤 열시가 다 되어 찾아간 보데기타 앞에서 문을 잠그던 웨이터들이 두 팔목을 교차해가며 ‘엑스!’ 표시를 한다 “끝났소”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날 낮에 다시 갔다. 보데기타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지만 다행히 나 한 사람은 들어갈 자리가 있었다. 역시 이번 여행은 운이 좋다. 원하는 대로 다 된다. 원하는 것이 적으니 원하는 대로 다 된다. 한 다섯 평이나 될까? 작은 가게. 웨이터가 연신 모히또를 만들고 있었다. 한 잔 만드는 데 십초. 먼저 시럽이 들어있는 잔에 박하잎을 넣고 나무 공이로 으깬다. 론을 붓고 얼음을 컵 가득 담고 탄산수를 부어낸다. 한
Relay Essay제1730번째 헤밍웨이 스토킹 (상)- 쿠바 여행기 중에서 발췌 작년 봄 병원을 옮기면서 오랜 기간 가보고 싶어서 꿈만 꾸었던 쿠바에 약 한 달여 다녀왔다. 겁도 없이 혼자 갔었고 마치 신밧드처럼 많은 모험을 하고 왔다. 그 중에서 일부분을 발췌하여 이 글을 쓴다. 일 년 전이었지만 감회가 새롭다. 쿠바로 여행을 간다고 하니까 감독 ‘리’가 81편의 영화를 가득 넣은 외장하드를 주었다. 영화들의 리스트를 보면 ‘리’가 이 영화를 왜 골랐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재미있으라고 넣은 것들쿠바 가니까 넣은 것들나도 봤으면 싶은 것들 ‘노인과 바다’는 쿠바 가니까 넣은 것이겠지… 그 오래된 영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볼 일 있을까? 지난 밤 그 영화를 보면서 잠이 들었었다. 등장인물 노인, 고기, 소년진짜 등장인물은 남자, 대자연 형용사 또는 부사가 거의 배제된 헤밍웨이의 문체는 힘이 있으면서 시적이다. 우리의 운명을 풀강아지처럼 다뤄버리는 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희망이라는 것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이어서, 잃고 잃고 다 잃어 더 이상 남은 것이 없을 때 그만 죽어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가장 숭고한 자세와 스스로의 존엄성을
Relay Essay제1729번째 최고의 튜닝은? ‘튜닝(tuning)’이라 함은 기성 제품 외관을 바꾸거나 성능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누구나 멋지게 튜닝되어 있는 내 차를 꿈꾼다. 얼마 전 경기도 일산 킨텍스(KINTEX)에서 ‘2012 오토 모티브 위크(Automotive Week 2012)’가 열린다기에 시간을 내 방문했다. 전시장에는 자동차와 관련된 부품 및 용품, 설비 등등이 전시돼 있었다. 특히 튜닝 파츠 및 튜닝 차량들도 전시가 되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발길이 옮겨졌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처음에는 레이싱 모델들을 볼 마음으로, 차량 관람에 긴 시간을 할애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알록달록’, ‘무시무시’하게 튜닝된 차량들 사이를 몇 시간 째 배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튜닝된 차량들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굳이 저럴 필요까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최고의 튜닝은 순정이다”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남들과 다른 나만의 차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의 욕망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 수 백 만원을 넘나드는 최신 오디오 시스템을 보면서 ‘나는 막 귀라 라
Relay Essay제1728번째 change your altitude! 1999년 스위스의 정신과의사이자 열기구 전문가인 버트랜드 피카드 (Bertrand Piccard)는 열기구를 타고 지구횡단비행을 도전하였습니다. 피카드는 3.7톤의 LNG를 탑재한 Breitling Orbiter3 라는 열기구에 몸을 싣고 스위스를 출발하여 단 19일 만에 4만5000km를 비행하여 지구를 한 바퀴 횡단하는데 성공합니다. 열기구를 움직이는 방법은 전적으로 바람의 방향에 달려 있습니다. 바람의 방향을 잘 타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지만,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지구 대기는 서로 각기 다른 바람 층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열기구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려면 고도를 바꿈으로써 가능해 집니다. 열기구는 모래주머니, 물, 필요하지 않은 연료와 장비를 버림으로써 고도의 변화가 간단히 이루어지지만, 일단 버리면 주울 수 없기 때문에 고도를 바꾸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한정된 시간과 연료를 싣고 지구횡단비행을 하고자 하는 큰 목적이 있다면 더욱더 신중을 거듭해야 합니다. 횡단비행도중 연료부족과 실패
Relay Essay제1727번째 시니어 구강관리 전문가 과정 참가 저출산 고령화 시대다. 인구 분포 구조도가 자꾸 역삼각형으로 바뀌고 있다. 사회의 불확정성이 더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잘 나가던 베이붐 세대의 은퇴가 이어지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끝자락에 속하는 필자도 이제 겨우 하늘의 명을 아는 지천명이자, 내 눈만 바라보는 자녀들을 한창 부양해야 할 나이인데 말이다. 사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필자는 이러한 상황을 예감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어릴 때 손바닥만한 절해고도(絶海孤島)에서 자란 필자의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는 입학생이 고작 34명이었다. 한 반에 많게는 70~80명에서 심지어 오전 오후로 나뉘어 2부제 수업을 하던 도시 학급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필자가 입학할 때는 작은 섬마을 치고는 초등학교 신입생 수 가 제일 많은 해였다. 지금 돌이켜 보니 바로 그 학년들이 베이비붐 막차를 탄 애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골 초등학교가 대부분 폐교의 길을 걷고 있고, 혹 잘 풀린 경우 도시 아이들의 농촌체험의 마당(?)으로 변모하였다. 그래도 서울에서의 입학식이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아들